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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Jan 08. 2024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2007)

- 인간이 매력을 느끼는 지점은 무엇인가

감독 : 앤드류 도미닉

출연 : 브래드 피트, 케이시 애플렉, 더스틴 볼링거, 샘 락웰


BBC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92위에 랭크된 앤드류 도미닉 감독의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을 보았다. 이 영화를 끝으로 이 리스트에 있는 볼 수 있는 영화(구하지 못한 8편 제외)를 다 보았다. 영화 초반 집중이 잘 안돼 세 번만에 완주했지만 마지막 볼 때는 왜 집중하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재미있게,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하며 잘 봤다. 영화의 제목처럼 결국에는 로버트 포드(케이시 에플렉)제시 제임스(브래드 피트)를 암살하는 내용이지만 이 과정, 그리고 결과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를 통해 깊이 생각해볼만한 지점들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잘만든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배경은 남북전쟁 언저리의 미국 남부로 추정이 된다. 영화는 '그는 끝나지 않은 내전의 남부측 지지자이자 게릴라라고 자신을 생각했다' 라고 '제시 제임스'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시 제임스는 형 프랭크, 또 몇몇과 함께 기차를 세워 강도짓을 벌이는 갱단의 실질적 리더이다. 로버트 포드는 프랭크에게 자신도 이 갱단에 끼워달라고 하지만 가차없이 거절당한다. 포기하지 않고 제시에게 자신을 어필한 로버트는 제시의 암묵적인 허락하에 기차 강도짓에 동참한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런 삶에 회의를 느낀 프랭크는 제시를 떠나고 제시는 오랫동안 함께 했던 우드(제레미 레너)딕(폴 슈나이더)에게 짐을 싸라고 하고선, 로버트는 남긴다.  아직 스무살도 되지 않은 로버트는 제시와 함께 지내며 그를 동경하는 동시에 두려워하면서 맹목적으로 그를 흉내낸다. 그리고 어떤 징후도 없이 그 역시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진다.



로버트의 누나는 하숙집(?)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는데, 나쁜 짓을 하고 보안관(경찰)의 눈을 피해 도망다니는 나쁜 놈들의 피난처를 제공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로버트가 돌아왔을 때는 먼저 쫓겨난 우드와 딕이 이미 있었고, 쫓겨났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별로 없는 그들은 자주 부딪히는데 결정적으로 우드의 집에 갔다가 딕이 우드의 젊은 새엄마, 그러니까 아버지가 얼마전부터 같이 살고 있는 여자를 꼬드겨 선을 넘자 우드는 꼭지가 돌아버린다. 도망친 딕을 찾아 로버트의 집으로 온 우드. 살기가 등등해 총을 들고 딕을 죽이겠다고 난리는 피우는데, 한동안 같이 지내며 딕에게 동정심을 느낀 로버트는 우드를 총으로 쏴 죽인다. 

늘 자신을 쫓는 수사망을 피해 요리조리 옮겨 다니며 자신과 가족을 건사해온 제시는 어떻게인지 알 수 없지만 우드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우드는 제시의 사촌이다) 범인을 찾기 위해 로버트의 집으로 온다. 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제시가 이 곳에 올 것이라는 것을. 우드를 아껴서가 아니라 그는 원래 이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돌변해 누굴 죽일지 모를, 모든 것을 자기가 원하는대로 해버리는 사람 말이다. 

제시는 서서히 이들의 숨통을 조인다. 표정으로, 어떤 말과 행동으로, 때로는 웃다가 정색을 하고 친밀하게 굴다가도 맹수처럼 돌변하면서 로버트와 찰리의 목을 조인다. 

두려움 속에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것에 지친 그에게 미주리주 주지사는 어떤 제안을 한다. '제시 제임스가 나를 죽이겠다는 협박 편지를 보내왔다고, 그의 불법 행위를 더 이상 봐줄 수 없노라고.'



주지사와의 짦은 대화 속에서 제시가 왜 이런 극악무도한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전쟁 중에 그의 가족이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에게 (아내와 아이들) 아주 잘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자주 표정을 잃고 우울하게 로버트를 바라본다. 우울증과 정신착란 증세를 그런 식으로 위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시는 로버트와 찰리의 주변에 맴돌면서 죽이지는 않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언제라도 죽일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면서도 장난을 치고 애정을 표현한다. 주지사에게 제안도 받고 자신 역시 계속 이렇게 사는 것이 너무 싫지만 그래도 제시가 자신을 죽이지는 않고, 그가 종종 보여주는 따뜻함 때문에 로버트는 그를 죽이겠다고 분명하게 결심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만우절에 제시로부터 받은 선물 상자 안에 놓여 있는 좋은 권총 한 자루가 그의 갈등에 종지부를 찍는다.


이쯤되면 제시는 로버트가 자신을 죽여주기를 바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숨통을 조이며 맴도는 것도 그가 자신을 죽이길 결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닌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로버트를 궁지에 몰아넣으면서도 자신은 무장하지 않고 뒷통수를 그에게 내보임으로 자신의 운명을 그에게 맡긴다. 그리고 로버트 포드는 무장하지 않은 제시 제임스의 뒷통수에 총알을 박음으로써 주지사와의 거래를 훌륭하게 성사시키고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갱의 리더, 지역사회에 위협적인 존재였던 제시 제임스를 제거하는 데 성공함과 동시에 '비겁한 로버트 포드'가 된다.



사람들은 죽은 '제시 제임스'를 여기 저기에서 전시하며 그와 그의 가족들을 조롱한다. 로버트 포드와 찰리는 제시를 조롱하는 제시를 재료로 한 연극을 만들어 공연하면서 미국 최고의 유명인사가 된다. 그런데 제시 제임스역을 맡은 찰리의 연기가 변화하면서(아주 제시스럽게, 로버트 포드를 원한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이제 이 연극에 주인공 로버트 포드가 아닌 '제시'에 이입되는 관객들이 생겨난다. 로버트를 믿었던 제시, 믿었기에 뒷통수를 보여줬던 제시에게 이입이 되면서 로버트 포드를 향해 '살인자! 비겁자! 겁쟁이!'라고 외치는 관객이 생긴 것이다. 

이후로 로버트 포드의 삶은 완전히 뒤바뀐다. 제시가 아닌 '비겁한 로버트 포드'를 조롱하는 노래들이 만들어지고 그를 추앙하던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그를 비난하며 조롱한다. 화가 난 로버트 포드는 제시 제임스가 죽인 사람들의 가족을 찾아가 '내가 제시 제임스를 죽였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시간이 흘러도 로버트를 향한 사람들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고, 도리어 제시의 복수를 하기 위해 로버트를 죽이려는 사람이 생겨난다.


제시와 로버트, 그 두 사람과 어떤 연관도 없는 사면된 살인 범죄자로부터 로버트는 제시의 복수라는 명분으로 개죽음을 당한다. 제시가 죽었을 때는 그의 시신을 여기저기 전시하며 조리돌림하기는 했어도 그의 죽음을 신문은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사람들은 돈을 내고 그가 어린 시절 살던 집을 방문했으면 그에 대한 전기도 쓰여졌었다. 그러나 로버트 포드의 죽음은 너무나 조용히 묻혀버린다. 



사람은 무엇에 매력을 느끼는가?


사람 사이에는 계급이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부와 권력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능, 성격, 매력도 계급을 양산한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어필이 되는 매력적인 소수의 사람이 그 보통의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으면서 '계급'이라는 것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 영화의 끝에서 결국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사람, 그들이 영웅이라고 칭하고 싶은 사람은 로버트 포드가 아닌 제시 제임스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로버트 포드가 아닌 제시 제임스에게 끌리는 것인가?


1.  사람들은 강함에 매료된다. 그것이 비록 '공포'에 가까울지라도.

- '강한 사람'은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그러나 '평범하고 약한 것'은 함부로 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 강함에 직접적으로 짓눌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강한 것을 좋아하고 인정함으로써 자기도 같은 부류라는 착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제시 제임스'는 뒷통수를 내 보인, 동생을 믿었던(찰리가 연기한 제시) 강자였다. 공포를 조장하는 수준의 강자가 순간 순간 보이는 인간적인 면모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강하게 흡입한다. 


2. 사람들은 주체적인 인간에 매료된다. 그것이 비록 '나쁜 짓'일지라도.

- 제시 제임스는 자신의 의지로 그렇게 살기로 결심했고, 자신의 원하는 것을 모두 손 안에 넣었다. 죽이고 싶으면 죽였고 빼앗고 싶으면 빼앗았다. 누군가를 곁에 두고 싶다면 또 그렇게 했고 버리고 싶으면 치워버렸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지 못한다.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지며 사는 사람은 없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한두 개를 손에 넣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사는 것이다. 로버트 포드가 제시를 암살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제시가 자신을 죽이도록 상황을 만들었고 허락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아는 것이다. 그저 운 좋게 얻어걸린 것인지, 스스로 해낸 것인지.


3.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에 관심 없는 인간에 매료된다. 

- 로버트 포드는 사람들의 갈채를 예상하고 바랐다. 그것을 원했기 때문에 연극도 만들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자 자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믿었던 사람들(제시 제임스에 의해 가족을 잃은)을 찾아갔다. 사람들의 인정이 고팠다. 그러나 제시 제임스는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자신을 덮쳐오는 우울감을 숨기기 위해 좋은 가장의 모습을 보여줬을 뿐,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다는 욕망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다. 




영화는 단순한 서부극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섬세하게 건드린다. 물론 나레이터가 있어 인물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방식을 택하긴 했어도 소시오패스 살인마가 자살을 꿈꾸는 설정, 사람들이 그 살인마를 암살한 사람이 아닌 그 살인마를 추앙하는 결론을 내보임으로 인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질문들을 던진다. 

소시오패스 살인마 제시 제임스 역할을 브래드 피트라는 배우가 아주 훌륭하게 소화해냈고, 찌질하고 비겁한 암살자 로버트 포드로 분한 케이시 애플렉의 연기도 그 못지 않게 훌륭하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어떤 것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며, 통제할 수 없는 광기와 우울감에 휘둘려 살아간다. 평범한 우리들은 좀 더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추구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바람들에 이끌려 살아간다. (살아가는 방식이 추구하는 것을 얻기에 실효성이 있느냐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여기에 하나의 경계선이 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며 사는가'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며 살아가는 것과,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해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삶 사이에는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더 뚜렷한 경계선이 존재한다. 

나는 지금 어느 쪽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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