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끌어가지 못하고, 이끌리는 인생의 불행함 : 칠월과 안생
최근 본 드라마에서 마사순(마쓰춘) 배우의 연기에 반해, 그녀가 출연한 작품을 검색해 보다가 넷플릭스에 이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고 보게 됐다. 인스타에 검색했을 때 대체로 평도 좋아서 기대를 갖고 봤다. 대만 금마장 영화제에서 최초로 같은 영화에 출연한 두 배우가 공동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것도 영화의 제목으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애초에, 우정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우정이 시작되고 유지되고 삐걱대고 끝나는 일련의 과정을 그렸는데 우정이든 사랑이든 그것들을 담금질하는 것은 대체로 또 하나의 인간, 이성이다.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우정은 미성숙함을 간직한 채로 시작된다. 13살에 시작된 우정은 선의로 포장된 이기심의 발로였다. 칠월은 따뜻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살고 있지만, 그 사랑 안에는 부모님의 생각과 계획과 가치관이 가득 들어차 있었고, 그래서 칠월은 갑갑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갑갑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칠월은 한부모(엄마) 가정에서 방치된 채 살아가는 안생을 방패 삼아 자기 내면의 숨겨진 욕망을 표출한다. 그리고 안생 혼자서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자신의 가정을 통해 간접 경험하게 함으로 일말의 우월감을 쟁취한다. 안생은 자기가 누릴 수 없는 가정의 따뜻함을 칠월의 가정을 통해 느끼면서 그렇게나마 결핍을 채운다.
칠월이 먼저 이성에 눈을 뜬다. 그녀는 가명이란 남자아이를 좋아하게 되고, 안생에게 비밀을 털어놓는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노라고. 아직 칠월을 다른 사람과 나눌 준비가 되지 않은 안생은 당황하지만 받아들이기로 한다. 안생은 왜 가명을 찾아간 걸까. 표면적인 이유는 칠월의 사랑을 이루어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안생의 진짜 속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칠월이 좋아하는 애가 도대체 누굴까? 별 볼일 없는 놈이면 좋아하지 말라고 해야지. 그런 놈이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있지는 않았을까? 그런데 가명이란 놈을 보니 훤칠하게 잘생겼고, 말본새도 진중하다. 안생은 가명에게 터프하게 다가간다. '너를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으니 앞으로 처신 잘해.' 가명은 이런 안생이 신선하다. 그녀에게 매력을 느껴 그녀를 따라간다.
칠월은 오래 뜸 들이지 않고 가명에게 고백한다. 안정을 추구하는 평범하고 무던한 사람 같아 보여도 실은 칠월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꼭 손에 넣어야만 직성에 풀리는 사람이다. 가명은 그런 칠월을 거절하지 않고 그녀와 연애를 시작한다. 그리고 안생이 칠월과 가장 친한 친구라는 것을 곧 알게 된다. 이때부터 아슬아슬한 삼각관계가 시작된다. 삼각관계라고 할 수도 없고,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그런 관계. 칠월과 안생 둘 사이에도 이전에 없던 긴장감이 생긴다.
문제는 안생도 가명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명도 자신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안생은 가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기로 결심한다. 그 방법은 칠월과도 이별하는 것이다. 칠월은 울며 안생을 붙잡지만 사실은 그녀가 떠나는 것을 원한다. 이미 안생과 가명 사이에 묘하게 흐르는 기류를 칠월 역시 눈치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칠월과 가명의 연애는 순조로워 보이지만 대학을 졸업하면서 가명이 북경으로 가는 것을 고집하며 크게 삐그덕거린다. 그리고 칠월이 없는 북경에서 가명과 안생은 재회하게 된다. 그렇게 재회와 이별을 반복하며 가명은 칠월과 안생 모두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관계를 만들고 지속한다. 가명과 헤어지고 싶지 않은 칠월은 가명이 하려는 말을 원천 봉쇄한다. 칠월을 위해 가명 곁을 떠났지만 그에게 끌리는 마음을 안생은 정리하지 못한다. 가명은 두 여자 사이에서 주동적으로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누군가 하자는 대로 끌려만 간다. 세 사람은 모두 진실을 외면한 채 청춘을 흘려보낸다.
결국 칠월과 가명이 결혼할 것 같았지만, 칠월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가명과 결혼할 수 없었고 또한 파혼을 요구하며 욕먹는 당사자가 되고 싶지 않아 가명에게 결혼식 당일에 도망치라고 요구한다. 철저하게 피해자가 되어 이 안정된 삶을 지속하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과 안생, 가명 세 사람에 대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결론은 이렇다. 칠월은 가명의 아이를 낳고 과다출혈로 사망을 했고, 칠월의 이름으로 올라온 소설은 실은 안생이 칠월의 인생을 꾸며서 쓴 것이었으며 칠월과 가명의 아이를 자신의 딸로 키우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가명이 후에 이 사실을 모두 알게 된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의 칠월은 가명과 헤어진 후 이전에 안생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산다. 그리고 중문과에 진학하는 것이 꿈이었던 칠월이었기에 늦게나마 소설을 연재함으로 그 꿈을 이뤄간다. 한 곳에 정착해서 매인 삶을 살고 싶지 않다던 안생은 이제 딸을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며 정착해 살아간다. 칠월은 안생의 삶을, 안생은 칠월의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 안생은 소설을 쓰면서 칠월이 이런 걸 원했겠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칠월은 안생처럼, 안생은 칠월처럼 살고 싶은 게 아니다. 사랑하는 친구인 네가 되어보고 싶은 게 결코 아니다. 13살의 칠월은 안생이 화재 경고벨을 누르는 것을 망설일 때 그녀의 손을 빌려 그것을 누르는 당사자다. 좋아하는 남자애한테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자신의 친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남자를 끝까지 놓지 않는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말하며 한 군데에 정착하며 살지 않았던 안생은 실은 그렇게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에겐 돌아올 집도,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줄 가족도 자신과의 사랑을 소중히 여기며 가정을 이룰 남자도 없었다. 그녀는 떠돌이의 인생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명도 진실한 사랑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에 연애를 시작한다. 자신에게 먼저 고백한 여자애를 거절할 용기도 없던 나이, 여자 친구의 절친에게 끌리면서도 그것이 확실한 연애감정이라고 인정할 용기가 없던 나이. 그래서 가명은 죄책감을 오롯이 느끼는 대신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고 곁에 있는 여자에게 충실한 남자가 되는 것으로 그 죄악감을 회피하며 청춘과 사랑을 양 손에 모두 쥐고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에서 우정을 말한다고도, 사랑을 말한다고도, 청춘을 말한다고도 할 수 없는 어떤 애매함을 느낀다. 우정을 말하기엔 안생이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낭비하면서도 가명을 마음속에서 놓지 못한 것이 걸리고, 사랑을 말하기엔 칠월과 가명, 안생과 가명 어느 쪽도 진실하다고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청춘을 말하기엔 이들은 그 반짝이는 시간을 너무 허비해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걸. 청춘이기에 불완전하고 그래서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할 수 있지만 (충분히) 근데 칠월이 왜 죽어야 하는 것인가? 거기에 다다라선 꽉 막혀 어떤 답도 내리기가 힘들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는 상 받을 만큼 훌륭했다는 것 인정하고 (그래도 난 마사순은 '니시아적성지영루' 에서의 연기가 더 좋다) 원작 소설의 결말이 그렇다면 뭐 영화의 결말(칠월의 죽음)도 어쩔 수 없겠지만은 기대한 만큼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은 안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
영화를 보고서 다시 한번 '솔직함의 위대함'을 생각하게 된다.
칠월은 왜 안생과 가명에게 '너네 둘 서로 좋아하냐?' '너네 그렇게 쓰레기냐?'라고 묻지 못했을까.
안생은 왜 칠월에게 '나도 사실 가명을 좋아해.' 가명에게 '우리 이러는 건 진짜 쓰레기 같은 짓이야. 그래도 우리 마음이 진짜라면 칠월에게 이야기하자.'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가명은 왜 칠월에게 '네가 나에게 고백하기 전에 안생이 날 찾아왔었어. 그때의 안생의 모습이 나한테 각인되어서 그때부터 안생을 좋아했어.' 또 안생에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여자는 너야. 네가 내 마음 받아주길 바란다.'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칠월은 가명을 잃고 싶지 않다는 것만 생각했고, 안생은 칠월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는 생각만 했고, 가명은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고. 십 대의 청춘들은 지금 그들이 욕망하고 있는 것의 이면을 생각하기에는,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행복한 삶의 의미에 대해서 깨닫기에는 너무 어렸다.
근데, 어려서 어쩔 수 없다는 것으로 모든 것을 치부하기에는 칠월과 안생과 가명의 인생이 너무 가련한 걸.
솔직함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내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 보고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행복이란 말의 실체는 '솔직함'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이 아닐까. 누구나 행복을 원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솔직할 수 있는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솔직함은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으로 출발해야 한다. 솔직함이 없이는 끌려가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끌려가면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없다.
행복을 원하는 자들이여.
먼저 솔직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그 용기가 그대들의 삶을 정직하게 끌고 갈 때 우정과 사랑이 반짝이는 행복한 인생을 선물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