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게 가족이 된다
감독 : 김태용
출연 : 문소리, 공효진, 고두심, 엄태웅, 정유미, 봉태규
개봉 당시 보지는 못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서 봤었는데, 그 당시에는 굉장히 쇼킹했어서 '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고 기억에 많이 남았던 영화다. 이 영화는 결론을 알고 보느냐 모르고 보느냐가 너무 중요해서 얼마 전 다시 봤을 때는 처음 봤을 때 만큼의 감흥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꽤 잘 만든 영화라고 여전히 생각한다.
결혼을 해서 부부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면, 우리는 새 가족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제목이 말하는 '가족의 탄생'은 생물학적으로 아이가 출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하나의 가족이 만들어지는 것, 새롭게 구성되는 것을 말한다.
시작은 여느 가족이 그러하듯 결혼으로 만들어진다. 미라(문소리)의 동생 형철(엄태웅)이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내를 데리고 오는데 그 아내가 고두심 배우분이 연기한 무신이다. 여기서 첫번째 쇼킹 지점 - 엄태웅과 고두심을 부부로 설정했다는 것. 정확한 나이는 나오지 않지만 엄마 뻘 되는 사람을 아내로 데리고 오다니, 그것만도 너무 쇼킹한데 한 집에서 같이 살게 된다. 다행인 것은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싹퉁바가지는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거침 없는 애정행각으로 미라를 곤혹스럽게 하기도 하지만 형철이 벌인 일을 지혜롭게 수습하기도 하고 미라가 싫어할만한 일은 안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런데로 가족처럼 같이 사는가 했는데 이 집에 생뚱맞은 아이 하나가 찾아오는 것이다. 형철에 의하면 무신의 전남편의 전부인의 아이 쯤 된다나?
아무리 착한 미라라도 그 아이까지 받아들일 여력은 없다. 형철은 자신이 무엇하나 책임지지 못하면서 혼자 착한 척하며 소리 지르는 게 다니까 이번에도 수습은 무신의 몫이다. 그렇게 무신은 아이(채현)를 데리고 그 집을 떠난다.
또 다른 한 가족이 있다. 이 가족도 엄마와 아빠 그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로 구성된 보통의 가정과는 거리가 멀다. 선경(공효진)은 독립해 나와 살고 있는데 이 땅을 떠나 해외로 나가 살고 싶어서 가이드 일을 하면서도 계속 면접을 본다. 어느 날 엄마가 김치랑 짐 가방 하나를 들고 무작정 선경의 집으로 찾아오는데 선경은 엄마를 매몰차게 내쫓는다. 왜냐하면 엄마 매자(김혜옥)는 여러 차례 남자를 갈아치운 바람둥이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엄마는 유부남과 내연관계에 있으면서 그 사이에 아이까지 낳아서 키우고 있다. 선경은 엄마의 내연남 운식(주진모)으로부터 엄마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말은 쌀쌀맞게 하면서도 선경은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애인 준호(류승범)와도 이별의 기로에 서 있다. 엄마를 대하듯 준호에게도 차갑게, 그리고 말을 못되게 했기 때문이다. 엄마와 준호에게 섭섭함을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선경은 그들을 여전히 사랑한다. 그래서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떠나라고 매몰차게 밀어내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경석(봉태규)은 애인 채현(정유미)의 오지랖때문에 미칠 지경이다. 너무 예쁘고 귀엽고 착한데, 문제는 나한테만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용당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내미는 손길을 거절하지 못하는 채현. 돈을 빌려주고 못 받는 것은 예삿일이고, 남의 애 찾으러 다니느라 남자친구 누나를 만나기로 한 약속도 무시한다. 참다 못한 경석은 채현에게 '지긋지긋하다. 지겹다.' 라는 말을 내뱉고 만다. 그 말은 누나 선경이 준호와 헤어질 때 그에게서 들은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 매달리는 건 경석이다. 사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그렇지만 까놓고 말해서 경석은 채현같은 예쁘고 귀여운 여자와 잘 어울릴만한 생김새는 아니다. 그걸 경석이 모를리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선 그렇게까지 표현하지 않지만) 왜냐하면 채현의 행동은 충분히 이별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석은 말만 그렇게 할 뿐 채현과 헤어지지 못한다.
결론은 이렇다. 어린 채현을 업고 나갔던 무신을 미라가 다시 데려왔고, 그렇게 미라와 무신은 채현의 엄마가 되어 그 아이를 키웠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빨리 안 죽는다던 매자가 하루 아침에 세상을 뜨자 꿈에 그리던 해외 근무를 목전에 두고 있는데도 포기하고 선경은 동생 경석을 키웠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키운 채현과 경석이 커서 연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춘천행 기차를 탄 채현을 따라 경석이 그 집까지 오게 되고, 헤어졌어도 밥은 먹어야 한다는 미라에게 이끌려 들어가 한 상에서 밥을 먹는다. 그리고 무신, 미라, 경석, 채현은 나란히 앉아 TV를 본다. TV 속에서 선경이 속한 합창단이 연말 공연을 하고 있었던 것. 그렇게 그들은 한 가족이 되어 같은 시공간에서 함께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십여년 만에 다른 여자를 데리고 나타난 형철은 그의 피붙이인 미라에게서 문전박대를 당한다.
채현이 그 채현이었다는 점이 내가 영화를 봤을 때 가장 놀란 점이다. 친부모에게서 버림 받아 홀로 낯선 이에게 보내진 그녀가 비록 두 엄마(길러준)의 사랑을 받고 자라긴 했지만 언제든 버림 받을 수 있는 공포에 짓눌리는 건 당연한 일일테니까, 채현이 그렇게 오지랖을 떨고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는 것도 그렇다면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선경이 그렇게 쌀쌀맞은 성격이 된 것도 부모가 자신을 화나게 만드니까. 그렇다고 매자가 부모의 권위로 선경을 억압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자신의 감정이 이끌리는 대로 사는 나약한 사람이니까 선경은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것이다.
경석과 채현의 만남도 그렇다. 결핍이 결핍을 만난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누군가 자신을 사랑으로 키워준 사람이 있었다. 그럼에도 친부모에게 버림 받아 낯선 사람의 손에 키워졌다는 것, 비정상적인 출생(엄마가 내연남 사이에서 낳은 아들), 일찍 엄마를 여의고 아빠가 다른 누나 손에 키워졌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에 남아 일종의 결핍을 만들 수밖에 없다.
사고치는 어린 남편은 일찌감치 자신의 곁을 떠나 다른 곳으로, 다른 여자에게로 갔고,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편의 누나는 나보다 훨씬 어려서 조카뻘이나 될까 싶은데 살겠다고 자기에게로 온 어린 아이와 자신을 모두 받아주겠다고 나선다. 결혼할 수도 있었는데 그냥 자신과 그 아이와 함께 살기로 결심한 것이다. 다행히 그들을 재울 집이 있고, 세 식구 정도야 먹고 살만큼의 돈을 벌 수 있기에 미라는 그들을 자신의 삶 속으로 불러들인다. 할 수 있을 때만, 하고 싶을 때만 돕는 관계가 아닌, 할 수 없을 것 같고 하기 싫어도 늘 함께 살면서 보듬을 가족으로 불러들인다.
아이들(채현, 경석)의 결핍은 아직 온전히 채워지지 않았다. 그들(미라, 무신, 선경) 역시 결핍이 있는 인간이기에 다른 누군가를 온전히 채워주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선경, 미라, 무신 역시 자신들의 얼굴만 바라보는 아이들(경석, 채현)으로 인해 채움을 받는다. 누군가를 이유 없이 사랑하면서 자신 안에 결핍들이 채워져 간다.
결핍이란 것이 사랑을 받으면서 채워지는 것이지만, 사랑을 하면서도 채워진다는 것이다.
사랑을 하면서 나는 나를 새롭게 발견한다. 이 사랑에는 책임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내가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나도 따뜻한 사람이구나. 누군가 나를 이렇게 필요로 하는구나. 나도 누군가를, 한 생명을 키워낼 수 있구나.
주변에서 육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 안에 더럽고 어두운 본성이 다 드러난다고들 말한다. 그만큼 그 과정이 힘들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나는 그 더럽고 어두운 걸 감싸고 있는 아우라를 본다. 조건 없이 사랑하고 키워내는 그 힘듦을 기꺼이 겪는 그들에게 어떤 성스러움조차 느껴진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찾아 보기 힘든 단일민족 국가여서 그런지 혈연관계라는 것에 유독 집착하는 면이 강하다. 그러나 가족이란 혈연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탄생할 수 있다. 애초에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남녀가 만나는 것이니까. 너를 낳지 않아도, 너의 아주 어릴 적 모습을 모른다 할지라도 나는 너의 엄마가 될 수 있다. 또 나는 두 명의 엄마를 가질 수도 있다. 누나이지만 엄마같은 누나를 가질 수도 있다.
이 가족이 탄생하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미라일 것이다. 미라의 결심이 없었다면 무신과 미라와 채현은 가족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족이 또 다른 가족을 만나 새로운 하나의 가족을 만들어가려고 한다. TV를 통해 얼굴을 보지만 여기에 있는 우리가 가족이라면 우리 안에 있는 너의 가족도 가족인 것이다.
나도 그렇게 가족을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다. 내가 낳지 않아도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한 집에 살면서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네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 하나로 가족을 이루어 살고 싶다. 2006년 영화니까 그 때는 지금보다 가족관이 훨씬 보수적인 때였을 것이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가족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본 이후로 한국 영화 중 잘 된 작품을 꼽으라고 하면 이 영화를 꼭 꼽는다. 차기작은 내 예상보다는 별로였지만 그래도 신작을 기다리게 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신작 소식도 있으니 이번에는 꼭 극장에 가서 봐야겠다.
누군가의 가족인 우리 모두의 안녕을 바라며.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