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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의 마중 (2014)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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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장예모

출연 : 진도명, 공리, 장혜문


작년부터 영화보다 더 많이 보는 것이 중국 드라마이다. 어쩌다가 보게 된 <치아문난난적소시광>으로 입문해서 (그때가 작년 설 연휴였다) 푹 빠지다 못해 절여져서 지금까지 거의 30편에 다다르는 작품들을 보고 있는데 중드는 기본 가장 짧은 게 24회, 길면 60회까지도 가고, 4,50회 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라 정말 많은 시간을 중드를 보는 데 할애했다고 말할 수 있다. 가장 최근에 본 고장극 중에 (하도 재밌다길래) <경여년>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장약윤이라는 젊은 남자 배우가 원탑남주로 나오는 드라마인데, 나는 이 주인공보다 주인공의 아버지(아버지인 것은 드라마 막판에 가서야 드러남) 이자 경국의 황제인 경제 역할의 '진도명' 배우에게 홀딱 반했다. 정말이지 사람을 사로잡는 연기력. (헐리웃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비견될만하다. 빼어난 연기력을 갖고 있지만 작품 수가 많지는 않은) 내가 영화 <예언자>를 보고 배우 타하르 라힘에 대해서 여기저기 검색해보며 그가 나온 작품들이 뭔지 알아보기는 했어도 보지는 않았는데 이 진도명 배우를 보기 위해서 내가 이 영화를 본 것이다. (물론 장예모 감독이 훌륭한 감독이고, 이 영화가 잘 되었다는 소식도 들어 알고는 있었다)

평점도 꽤 높고, 한줄평에 맨 울었다는 얘기뿐이어서 그렇게나 슬픈가 했는데... (나는 보통 사람들보다는 확실히 잘 울지 않는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단 '신파'끼가 있으면 그때부터 나는 김이 확 새버린 달까.

영화는 중국의 문화 대혁명 시기를 기준으로 혁명 전 정치범으로 끌려간 남편 루옌스(진도명)를 기다리는 아내 펑완위(공리)와 혁명 후 풀려나 집에 돌아왔으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펑완위)를 기다리는 남편(루옌스)의 이야기이다. 루옌스는 20년을 감옥살이를 했는데 3년 전 한 번의 탈옥을 감행한다. 그런데 17년 동안 죄인의 아내, 죄인의 딸이라는 오명 때문에 늘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살 수밖에 없는 모녀, 특히 어린 단단(장혜문)은 탈옥한 아버지에 대한 걱정보다는 곧 있을 공연의 주인공 선발에 이 사건이 영향을 미칠까 봐 불안하다. 그리고 결국 자신이 속한 발레단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면서도 루옌스의 딸이라는 이유로 주인공 역할을 맡지 못하는데 얼굴도 기억나지 않은 아버지 때문에 자신이 밀려나야 하는 이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

공산당원은 루옌스가 나타나면 꼭 신고해야 한다고 두 모녀에게 으름장을 놓고, 둘은 그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지만 아내인 펑안위는 감히 그럴 수가 없다. 추운 겨울, 비를 홀딱 맞고 문 앞에 서서 들어오지도 못하는 남편이 애처로워 미칠 것 같다. 그런데 마침 딸 단단이 집 앞에 와 있고, 그를 붙잡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공안도 너무 잘 보인다. 펑안위는 미칠 것 같으면서도 문을 열지 못하고, 그 마음을 아는 루옌스는 내일 아침 기차역에서 보자는 쪽지를 문 틈으로 밀어놓고 떠난다. 그리고 바로 그날 주인공에 낙점되지 못해 서럽게 울다 집에 돌아온 단단이 주인공을 시켜달라며 아버지가 왔음을, 내일 아침 기차역에서 엄마와 만나기로 했음을 밀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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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이며 먹을 것이며 밤새 준비해 기차역으로 달려갔건만 남편을 찾는 게 쉽지가 않다. 오매불망 기다리는 아내를 많은 인파 속에서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루옌스는 숨어있다가는 아내를 만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을 드러낸다. 그리고 아내의 이름을 크게 외쳐 부른다.

선로를 사이에 두고 둘은 서로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지만 결국 루옌스는 이미 대기하고 있던 공안들에 의해 다시 잡혀간다. 그리고 3년의 시간이 흘러, 문화 대혁명 시기가 지나고 정치범 루옌스는 무죄 선고를 받고 풀려나 집으로 돌아온다. 자신을 마중 나온 딸 단단이 뭔가를 숨기는 듯 하지만 일단 집에 가서 아내를 만나고 싶은 루옌스. 그러나 자신을 보고서도 아내 펑안위의 반응이 어딘가 이상하다. 처음엔 알아보는 것 같긴 한데, 20년 만에 만난 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매일 보는 사람 마냥 대하더니 곧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여 집 밖으로 쫓아낸다.

3년 전, 문 밖에 서 있는 남편에게 문을 열어주지 못한 한, 아버지를 밀고한 딸에 대한 분노와 원망 등이 쌓여 펑안위는 심인성 기억장애를 앓게 된 것이다.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된 아내인데, 이제 노년을 함께 살면서 사랑할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아내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다.


딸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하면 아내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을까 루옌스는 고민하고 이런저런 방법들을 시도한다. 자신의 옛날 사진을 찾아서 (집에 있는 사진은 단단이 다 찢어 버려서 남아 있는 게 없다) 이 남자가 바로 자신이라고 말해보기도 하고, 이웃 인양 친근하게 인사하면서 집에 들어가 대화를 시도한다. 아직 남편이 감옥에 있다고 믿는 펑안위에게 편지를 써, 딸 단단을 집에 들여보내기도 하고, 피아노 조율사로 위장해 들어갔다가 과거 자신이 쳤던 곡을 연주하며 당신이 기다리는 남편이 바로 나라고 마음속으로 수천 번을 외친다. 그러나 아내의 기억은 돌아올 기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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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왜 <5일의 마중>인가. 과거 감옥에서 쓴 편지에 자신이 5일에 돌아간다고 써 놓았는데, 펑안위는 그 편지를 보면서 매 달 5일이 되면 루옌스라고 크게 이름이 쓰인 푯말을 들고서 기차역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한 해, 두 해를 지나 머리가 다 하얗게 샐 때까지 그녀의 삶에 빠지지 않는 일종의 의식이다. 루옌스는 자신을 마중 나가는 그녀의 곁을 지킨다. 자신의 이름이 쓰인 푯말을 들고서 기차역에서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살핀다. 나를 찾는 그녀 옆에 서서 그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을 알아줄 날을 기다린다.


솔직히, '기억 장애'가 나올 때부터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진부한 신파극으로 가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기억 장애를 앓는 펑안위보다 그 모든 것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루옌스에게 마음이 더 갔다. (내가 진도명 배우 때문에 이 영화를 본 것이라 그런 것만은 아니다) 병을 앓고 있는 사람보다는 현실을 사는 사람의 고통이 내게는 더 와닿는다. 그의 고통이 실제로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루옌스의 입장에서 그의 마음이 어떨지를 머리로 계속 생각해야지만, 그의 마음이 조금 느껴지는 정도이지 나는 그들의 고통에 쉽게 몰입이 되지는 않았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이다)

장예모 감독의 말에 의하면 한 사람 (一介人) 만을 평생 기다리며 사랑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는데, 한 사람을 평생 오롯이 사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이미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루옌스와 펑안위가 평생 서로만을 사랑하며 기다리는 모습에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것일 거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감정을 고상하게 그려내는 것보다는 보다 날 것으로 그려내는 스타일을 선호하는 게 확실한 듯하다. 이들의 모습이 내게는 퍽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그렇게 와닿지는 않는다.

어차피 진도명 배우 연기가 보고 싶어서 본 영화이니, 그 자체로는 어느 정도 만족하지만 아니, 진배우도 중국 국가 1급 배우인데 말이지, 인터뷰 영상도 공리 영상밖에 없고, 장예모 감독 인터뷰도 끝까지 봤는데 진배우는 한 번도 언급을 안 하더라. 나는 거기에서 이미 마음이 상함.


일생일세, 단 한 명을 사랑하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감정에 대한 찬미. 그 감정은 외부의 폭압과, 그 폭압으로 인한 오랜 이별의 기간으로 인해 더욱 무르익는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고통을 수반한 숭고미보다는 좀 덜 힘들고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그런 사랑 쪽에 부등호가 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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