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이 되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
비건이 된 이유를 묻자 예빈이 간결하게 답했다. 그 대답이 얼마나 자명했는지, 나는 좀 부끄러웠다. 사람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변한다. 참을 수 없을 때 목소리를 낸다. 통념에서 벗어나 스스로 예민해질 때, 우리는 자신을 포함한 누구에게나 나의 의견이 유쾌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 저것 재고 따져서 단순히 좋으니까 하는 건 점심메뉴를 정할 때나 가디건을 살 때 가능한 일이다.
예빈에게 비거니즘의 시작점은 명확하지 않았다. 그녀는 애초에 자연을 사랑했다. 어렸을 때부터 들풀을 보는 게 좋았고, 푸르른 색이나 끈적한 풀비린내도 아꼈다. 야자시간에 그것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기사를 집중해 읽으면서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날씨가 이상하다고, 아주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을 들으며 ‘기후 변화’가 아니라 ‘기후 위기’임을 알게 된 날에는 더더욱. 사람들은 지구가 활활 탈 때도 숲을 태웠다. 그들이 신나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가축들을 더 많이 기르기 위해서는 사료를 키울 더 많은 농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소들이 내뿜는 메탄 가스가 이산화탄소보다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결과 보고가 나왔을 때도 간단히 무시했다. 부족한 것보다는 버리는 게 나으니까 우림을 개간하고 소와 돼지와 닭을 쉼없이 길러냈다. 덕분에 빙하도 녹고 해수면도 높아졌다. 연례행사처럼 뉴스에서 경고하는 폭염과 한파는 그저 단어로서만 존재할 뿐, 사람들의 생각에서 쉽게 휘발되었다. 자신의 숨통을 스스로 죄고 있는 사람들이 동물의 안녕에 신경 쓸 리 만무했다. A4 한 쪽만 한 닭장에서 닭이 제 발을 디디지 못할 때도, 젖을 짜기 위해 소를 강제로 임신시킬 때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감칠맛 나는 풍미를 즐기면서도 음식물 쓰레기를 갈아 가축을 먹였다. 이 생활방식은 이상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가축이니까. 중요한 건 인간이니까.
예빈도 처음에는 동물의 안녕을 그다지 염려하지 않았다. 닥스훈트인 빈이가 귀엽게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때에도 빈이 외의 다른 동물에 대해 숙고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수많은 동영상에서 가축이라며 동물을 잔인하게 학대하는 사람들을 봤을 때, 그녀는 두려워졌다. 사람이 가축인 적은 없었나. 지금에서야 사람으로 인정받은 생명들이 인간 이하로 괄시받아온 긴 역사를 그녀는 알고 있었다. 환술국치 이후로 일본인이 조선인을 강간하고 실험하고 총알받이로 썼을 때 일본인들은 떳떳했을 것이다. 조선인은 가축이니까. 중요한 건 일본인이니까. 어떻게 사람과 동물을 비교하냐며 비약은 금물이라고 반박하는 이들이 있었다. 우리 사이에는 ‘언어’가 있고 종간의 ‘유사성’이 있잖아. 그러나 정착 초기의 백인들이 원주민의 언어를 언어라고 받아들였는지, 그들과 원주민을 대등한 사람으로 생각했는지는 의문이다. 사람이라 여겼다면 그리 쉽게 학살하고 땅을 빼앗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조선인과 원주민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사람이 되어 폭력을 고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을 대체할 수 있는 낱말은 아주 많았다. 이 반복되는 악순환은 사람을 넘어 폭력적인 생명과 그 폭력에 희생당하는 생명으로 끝없이 맥을 이어갔다. 이제는 바뀌어야 했다. 예빈은 한 생명이 사람이 아닐 때에도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존중 받기를 바랐다. 그러니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한 사람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뚝 끊어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동물에 대해 논하지 않으면서 사람에 대해 논할 수는 없다.
예빈은 기후의 변화도 멈추고 싶었고 동물도 존중하고 싶었다. 사람으로 태어나 되도록이면 동물을 포함한 자연에 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수없이 차를 타고 비닐 껍질을 까며 의도치 않게 많은 생명을 죽였다. 직선의 나비효과를 넘어 우리는 동그랗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녀는 어느 순간 깊이 이해했다. 생태계를 존중하는 일이 곧 자신을 존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폭력의 연쇄를 끊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런 움직임에 힘을 보태고 있는 ‘일간 이슬아’의 이슬아 작가가 한 팟캐스트에 나와 말했다. 자기 전에 기분이 참 좋다고. 한 생명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는 하루를 보냈음이 큰 위안이 된다고 했다. 예빈도 이에 동의하며 덧붙였다.
“나는 행복해.”
예빈은 맛있는 커리를 먹으면서도 기분이 좋았고 대나무 칫솔을 사면서도 마음이 편했다. 그건 어떤 고통도 첨가되지 않은 행복이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을 다른 이들은 ‘비건’이라 불렀다. 단지 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