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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연춘추 Jan 16. 2022

2.1 페어그리브 난제와 분쇄지대 제국의 조건

-지리적 중심부의 인력 작용에 대해

매킨더의 제자 페어그리브는 《지리와 세계패권》이라는 책에서 분쇄지대 개념을 제시하면서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왜 같은 분쇄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독일은 분열되지 않고 통일된 국가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이 같은 질문은 비단 중국과 독일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동일하게 분쇄지대에 위치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오랜 시간 동안 공간적 통일성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만일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오랜 분쟁만 아니었다면, 이들은 여전히 느슨한 연방 형태의 제국을 이루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 여러 통찰력 있는 지정학자들이 등장했지만, 페어그리브가 제시한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필자는 이 같은 문제를 페어그리브 난제-왜 분쇄지대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독일은 통일된 국가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도는 공간적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라 부르고 싶다.


물론 페어그리브 난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분열과 인도·파키스탄의 대립으로 인해 도전받았으나, 냉전 이후 독일이 통일되고,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경제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다시금 우리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70년대 중국 신장 지역을 분열시키려는 소련의 정치적 공작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국가적 통일성을 유지하자 페어그리브 난제는 중국을 둘러싼 지정학 연구에 있어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로 떠오르게 된다.


대체로 페어그리브 난제를 해결하려는 학계의 움직임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하우스호퍼와 같이 대륙 국가의 범위를 분쇄지대까지 확장한 다음, 대륙 국가를 다시금 고원형과 하천형으로 나누고, 중국을 하천형 대륙 국가로 보는 견해다. 하우스호퍼는 이 같은 견해의 대표주자로서 그는 역사적으로 중국이 ⓐ해양 진출과 ⓑ바다로부터의 후퇴를 지속했다며, 운하는 이 같은 바다로부터 후퇴하는 과정에서 해양루트를 대체하는 내륙운송수단이라 이해했다. 이와 달리 프리드먼, 자이한 등 스트랫포 출신 지정학자들은 중국 중앙정부의 강압적인 통치와 문화적 동질감에 의해 광활한 영토를 유지하고 있을 뿐, 중국 중앙정부가 통제력을 상실하면 다시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되리라 내다봤다. 그러나 이 같은 해석 모두 아무런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전자는 중국 영토 내에 분쇄 작용력이 일어나는 공간(둥베이, 양자강 하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쇄지대 국가로서 중국의 성격을 말살시켰으며, 후자는 과거 중국(중화민국 시기 지방 군벌 세력 간의 대립)이 분열된 와중에도 국가적 동질성을 유지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양측 모두 페어그리브 난제에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정학의 연구 목적은 공간적 특징이 현실 정치에 미치는 작용력을 분석하는 것이며, 이 때문에 모든 지정학적 해답은 공간구조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공간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황에서 막연히 국경선과 평면적 이미지를 가지고 한 국가의 지정학적 성격을 논할 경우, 우리는 3차원적 공간을 2차원적 대상으로 치환하는 오류를 범함은 물론 공간적 특징에 따라 달라지는 외적 작용력의 강도와 밀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망각할 수 있다. 따라서 페어그리브의 난제를 해결함에 있어 우리는 중국과 독일이 처한 공간적 특징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자.


가장 눈에 띄는 공간구조적 특징은 이들 모두 국가 중심부 역할을 할 수 있는 대평원 지대가 있다는 점이다. 황하의 범람과 충적 작용이 만든 화베이 대평원과 양자강 중하류 평원은 다볘산大别山을 제외한 아무런 자연 장애물이 없는 공간을 중국인들에게 선사했고, 이는 중국인들로 하여금 필연적으로 하나의 공간 의식을 공유하게 만들었다. 비록 양자강이라는 거대한 하천이 있지만, 스파이크먼이 말한 바와 같이 하천은 군사적 경계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구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역할을 충당했으며, 이는 양자강 중하류 유역을 하나의 거대한 정치적 성격이 가미된 공간으로 조직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따라서 북방의 유목민족들은 양자강이 만들어내는 이질적인 공간 풍경에 적응하지 못한 나머지 남하를 포기할 수는 있어도, (이 지역이 화베이 대평원과 공간적으로 격리된 곳은 아니기 때문에) 막상 이들이 수로 운송체계를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순간, 남방의 요새들을 무력화하면서 강남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었다. 달리 말해 공간적 특징이 주는 시각적 충격은 있을지 언정 이 같은 시각적 충격을 극복하는 순간, 화베이 대평원과 양자강 중하류 평원은 하나의 정치세력에 의해 조직될 수 있는 공간적 일체감을 가졌다 봐도 무방하다.


독일 또한 북독일 대평원이라는 거대한 공간 중심부가 존재한다. 이 공간 중심부의 정중앙에는 베를린이라는 (북독일 평원을 조직할 수 있는 지리적 위치에 놓인) 대도시가 우뚝 솟아 있다. 당연하지만 이 같은 대평원 지대는 동방의 적으로부터 노출된 지역이고, 이 때문에 대평원 지대 사람들은 재빨리 자신들의 역량을 한데 모을 필요가 있었다. 이 같은 공간적 특징은 북독일 평원의 독일어계 사람들로 하여금 호엔촐레른 왕가의 깃발 아래 하나로 단결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프로이센으로 하여금 폴란드와 발트해 방면으로 진출하게 만드는 지리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물론 프로이센이 빠른 팽창이 가능했던 요인을 생각해보면 독일과 폴란드 사이에 위치한 몇몇 늪지대를 제외하면, 이 거대한 공간을 갈라놓을 지리적 장애물이 없었다는 것도 한몫했지만 말이다. 이 같은 공간적 특징에 힘입어 프로이센은 북독일 평원을 하나로 조직한 다음, 대평원 지대의 인력을 이용해 독일 남부 산지에 위치한 소국들을 하나 둘 병합하기 시작했다.


베를린과 비슷한 예시는 중국에서도 발견된다. 중세기 중국의 수도는 화베이 대평원 중심지인 낙양과 개봉, 또는 하남으로 진출하기 용이한 (그러면서 친링의 보호를 받을 수 있던) 장안에 위치해 있었는데, 대운하와 같은 인프라 건설을 통해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힘을 한 곳에 모을 수 있었다. 이처럼 중국 또는 독일과 같이 거대 평원지대 중심부에 물자와 인력이 집중될 시, 중심부과 주변부 사이에 거대한 인력 작용(만유인력 할 때의 그 인력이다)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때 발생하는 인력의 크기에 따라 제국의 확장 가능한 영토 또한 결정된다. 중국의 경우, 명나라 때부터 베이징이라는 유목 세계와 둥베이 평원, 중국 내지를 동시에 지배할 수 있는 지역을 수도로 삼고, 이 도시에 거대한 인력과 자본을 집중함으로써 유목 세계와 둥베이, 중국 내지를 지배하는 제국을 완성할 수 있었고, 독일 또한 베를린이라는 북독일 평원 중심부에서 발생하는 인력을 이용해 독일을 통일할 뿐만 아니라, 폴란드 영토 일부까지 점령하는 중부 유럽 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독일과 중국의 제국화 과정을 통해 아래와 같은 특징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독일과 중국 모두 거대 평원지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이 평원지대를 분리할 수 있는 자연장애물이 없다.


둘째, 공간 내부를 구성하는 동일 인종과 기후조건은 이들이 하나의 문화양식과 제국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셋째, 이 같은 탁 트인 공간 중심부에 인력과 자본을 집중시킬 경우, 거대한 인력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인력 작용은 대평원 지대를 중심으로 하는 제국을 만들어낸다.


상술한 중국과 독일 외에도 비슷한 공간 조건을 가진 나라가 있다. 바로 미국과 러시아다. 미국도 미시시피 강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중부 평원지대가 만들어내는 인력 작용으로 인해 제국에 다를 바 없는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만일 미 중부 평원지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산맥만 존재했더라도, 미국의 역사는 오늘날과 판이하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제국인 러시아도 심장지대라는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공간에 놓임으로써, 유목 제국을 계승하는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재미있게도 중국인들은 러시아를 가리키는 은어로 거란을 사용한다), 유라시아 북부 대륙을 통일하는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의 조직된 공간과 이 같은 공간이 만들어내는 인력에 의해 형성된 제국은 외부 요인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뿐 아니라, (중국 남북조 시대나 독일의 통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설사 분열되더라도 결국 공간적 통일성에 의해 하나의 제국으로 다시 환원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예는 인도라 할 수 있는데, 제한된 해안선만을 가진 미국과 중국, 독일, 그리고 지나치게 짧은 해안선을 가진 러시아와 견주어 보면 인도는 너무도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긴 해안선이 반드시 나쁘게 작용하리라는 법은 없으며, 오히려 무역으로 치부하려는 나라에 있어 해안선은 부와 재물을 가져다주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을 불러오는 지옥의 문이기도 하다. 특히 데칸고원과 여러 산맥들이 만들어내는 분리된 지정학적 공간들은 북방 강국으로부터 남방 소국들을 보호하는 역할도 했지만, 동시에 인도 남부가 정치적으로 통일될 수 없는 지리적 요인이자, 각각의 독립된 공간들이 독자성과 주체성을 유지하는 정치적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따라서 인도는 중국과 견줄 수 있는 광활한 영토와 수자원에도 불구하고, 공간적 특징들이 만들어내는 정치적 제약 때문에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가 아닌 연방제 국가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모디 총리는 힌두이즘과 카스트에 대한 하층민의 불만을 이용해 이 지리적 분열이 필연적인 나라의 통일성을 유지하려 들지만, 이 같은 인도 연방정부의 실험이 얼마나 성공적 일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다만 필자는 모디 총리의 도박이 나름 성공하리 본다. 비록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의 이탈로 인해 분열된 중심부를 물려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심부의 인력 작용은 무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같은 인력 작용이 만들어내는 통일성으로 인해 힌두스탄 사람들은 오랜 세월 하나의 공간 공유 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특히나 근대적 인프라는 이 같은 중심부의 인력 작용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불러오고 있는데, 북독일 대평원의 바이에른 지역에 대한 인력 작용이나, 중국 내지의 몽골과 신장, 칭하이·티베트 등지에 대한 인력 작용, 러시아의 심장지대 전역에 걸친 인력 작용 등 예시를 생각해보면, 데칸고원과 남인도에 대한 북인도의 인력 또한 비슷한 효과를 불러올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있다.


이 같은 인력 작용이 사라지는 방법은 오직 하나, 중심부의 정치적 분열이다. 그러나 중심부의 분열은 이들을 압도하는 군사적 실체가 등장하는 것이 아닌 이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중국의 경우, 이들을 위협하는 군사적 실체가 제국의 지배자로 바뀌는 경우도 많다 보니 중심부가 여러 조각으로 분열되기보다는 통일된 공간의 지배자가 바뀌는 형태로 왕조 교체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필자가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보니 러시아의 몇몇 지정학자들은 트럼프 이후 미국이 분열할 것이라는 예측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적어도 내가 봤을 때 그런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다. 독일이나 중국의 예를 참고할 경우, 미국도 하나의 거대한 중심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중심부가 만들어내는 인력 작용에 의해 단일 국가를 이루고 있기에, 이들의 분열은 쉽지 않다. 국가의 해체 내지 분열도 일정한 공간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적 이벤트인데, 미국은 통합되기는 쉬워도 분열되기는 어려운 공간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인종 문제와 종교 간 대립만 아니면, 오늘날과 같은 영토를 유지하리라 본다. 다만 워싱턴 D.C. 의 위치가 중심부의 정중앙보다는 서쪽으로 치우친 곳에 있다 보니 가까운 미래에 수도 이전에 대한 범국민적 논의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본다(중국에서도 시진핑 집권 초 한 차례 일어난 적 있다). 미국의 중심부에 위치한 시카고나 댈러스는 워싱턴을 대체할 수 있는 이상적인 선택지가 될 것이다.


오히려 국가 분열이 일어날 수 있는 나라는 인도 남부와 이탈리아, 한반도, 그리고 발칸반도 제국諸國이다. 복잡한 산맥들로 나누어진 지정학적 공간들은 이들로 하여금 지역색을 유지하며, 중앙정부와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언어 체계를 유지할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외부 변수에 의해 독립하는 지리적 조건을 제공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나라들일수록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작업이 중요하며, 한 나라의 수도를 선택할 때, 확장성과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큰 공간을 선택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애초에 중국(화베이 대평원)이나 독일(북독일 대평원)처럼 중심부가 명확한 나라라면 중심부의 정중앙에 수도를 건설하면 되지만, 이탈리아나 발칸반도의 경우, 수도를 신중히 고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도 연방제 형식으로 통일 대업을 이룩한 다음, 수도를 대동강 유역으로 천도하거나 휴전선 남쪽에서 공간 확장성이 보장된 평택이나 강경 등지로 천도하는 것을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물론 (완벽한 흡수통일을 전제로 할 경우) 서울에 남는 것도 분명 좋은 선택지 중 하나다.


따라서 페어그리브 난제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중심부의 존재 유무와 중심부에 집중된 인력과 자본이 만들어내는 인력 작용이라 할 수 있다. 거대한 중심부 역할을 하는 대평원의 존재는 중국과 독일로 하여금 거대 제국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됐으며, 이 대평원의 중심부에 인력과 자원이 집중된 도시를 건설함으로써 인력 작용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특히나 눈여겨볼 점은 하천의 정치적 작용력인데, 우리의 예상과 달리 하천은 공간을 구분 짓는 역할을 하기는커녕, 분리된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하천의 작용력을 극대화한 예시로 우리는 미국(미시시피강)과 중국(황하와 양자강)을 들 수 있는데, 거대 하천의 존재는 이 일대를 통합한 하나의 경제권 형성을 가능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자원 이동을 가능케 만들었다. 반대로 인도의 경우, 방글라데시의 존재로 인해 현재 갠지스강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다 보니, 북인도를 하나로 통일한 경제권 형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론 최근 모디 정부가 종교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방글라데시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여러모로 옳은 정책 방향이라 본다.


이 같은 인력 작용을 우리나라에 대입할 경우, 우리의 지역주의 언어는 극복해야 할 구태가 아닌 지정학적 필연임을 알 수 있다(한반도는 인력 작용이 발생할 수 없는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지역주의 언어가 만들어내는 사회구조의 형태가 중요하다. 만일 지역주의가 강력한 지자체로 하여금 지역 업무를 해결하게 하고, 중앙정부는 국가 역량을 집중시키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닐 경우, 중앙정부의 권한은 과도해지고 이에 따른 불필요한 세금 낭비 또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지역주의 언어는 지자체 문제를 지방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닌 지역 출신들을 모아 중앙에 집중된 부와 자원을 독점하는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것이 우리가 군사독재 시절에 경험했던 지역 이기주의의 실체라 할 수 있다. 거대 중심부에서 발생하는 인력 작용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 독일 지방정부가 강력한 행정권한을 가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지자체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고, 또 해결하야만 하는 일이 있는데, 현재 한국의 문제는 중앙정부의 권력이 (지리적 조건과는 다르게) 지나치게 강하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처럼 여러 산맥이 분열된 지정학적 공간을 만드는 나라일수록 계급투쟁 및 사회문제의 강도와 밀도가 다를 수밖에 없고, 이런 강도와 밀도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지역 간 격차를 해결하려면 강력한 중앙정부보다는 유능한 지방정부가 여러 개 있는 편이 차라리 낫다. 그러나 지역주의 언어가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중앙(서울)에 지나치게 과한 자원과 인력에 집중될 경우, 태생적 중심부가 없는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 독일처럼) 중앙과 지방의 연대 강화 또는 지방에 대한 통제력 강화가 아닌 ⓑ중앙이 지방의 자원을 수탈하고 독점하는 부작용만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몇몇 국가 역량을 집중시켜야 하는 국방·외교·복지·예산심의 등 소수의 영역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지자체 차원에서 해결하는 고차원적 연방제 국가에 대한 토론이 진행돼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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