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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담 Mar 12. 2023

잊지 말자, 나는 이방인이다

도하 공항에서 생긴 일

0810, 내 캐리어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다. 2022년, 8월 10일, 나는 대략 6개월 간의 해외생활을 시작하러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교환학생으로 5개월 간 파리에 머물 예정이었다. 마침 터키어가 전공인 친구가 그해 이스탄불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튀르키예는 비슁겐 지역이었으므로 학생 비자가 시작되기 전에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프랑스 주변 국가이기도 했다. 그렇게 파리행 대신 이스탄불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슁겐 지역의 비자를 받은 경우. 비자 시작일 전에는 슁겐 지역 입국이 불가능하다. 대신 비슁겐 지역에서는 자유자재로 이동이 가능하다. 튀르키예, 크로아티아, 영국 등이 비슁겐 지역에 속한다.)


설레는 출국

10시간의 비행 끝에 경유지인 카타르 도하 공항에 도착했다. 환승 게이트에 들어서고 나니 후끈한 공기가 몸을 에워쌌다. 지리책에서만 보던 무슬림 의복을 종류별로 볼 수 있었다. 피부색, 코, 머리 스타일, 눈동자 등 미묘하게 다른 모양새가 그들의 다채로운 국적을 드러냈다. 내가 ‘외국’에 있음을 실감했다. 낯선 체취와 생김새, 그리고 낯선 언어.  익숙한 것이 단 하나도 없는 공간에서 들어오는 자극을 하나씩 느끼고 있자니 머리가 어질했다. 그 찰나에 내가 느꼈던 감정이 외로움인지, 두려움인지 모르겠다.


도하 공항 환승 게이트

시차 때문인지, 잔뜩 긴장했던 탓인지 환승 절차를 마치고 비행기에 타자마자 꽤 깊은 잠이 들었다. 사람들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에 눈을 떠보니 모두 짐을 챙기고 있었다. 자는 사이에 도착한 줄 알았는데 이륙조차 하지 않은 거였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에 떠밀려서 비행기 밖으로 나갔더니 탑승구는 아수라장이었다. 상황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저 ‘언제 출발할지 모르며 오늘 비행기가 뜨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뿐이었다.

 

잔뜩 격앙된 사람들이 내뱉는 날 선 미지의 언어들. 비행기 연착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모든 것이 낯설게 이루어지니 지레 겁이 났다. 무엇보다 로밍이 터지지 않았고 와이파이 연결도 2분을 넘기지 못했다. 지금 내 상황을 누구에게 알릴 길이 없었다. 이제는 익숙한 중동 항공사 특유의 답답한 일처리와 비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도 그때는 당혹스럽기만 했다. 불안함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도 한 명 없는 그 북적임 속에서 엄청난 고립감을 느꼈다.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 틈에서 함께 불만을 토로했다면 좀 더 빨리 안정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생김새와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커다란 벽 하나가 생긴 듯했다.


소리 없는 아우성

사람들의 대처방식에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 상황이 점점 재밌어졌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들은 같은 인종끼리 뭉쳤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자신과 비슷한 생김새의 사람들 곁에 다가갔다. 같은 문화권끼리 금세 무리를 이루었다. 멀뚱히 서있는 나에게 중국인 2명이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중국어로 열심히 말을 했다. 내가 중국인인 줄 알았나 보다.  ‘우리‘,’ 가다 ‘,’ 먹다 ‘ 등 몇몇 단어들을 간신히 떠올리며 어설프게 배웠던 중국어로 소통 아닌 소통을 했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그들을 위해 번역기를 켜서 상황을 전달해 줬다. 그들은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호탕하게 웃어 보이며 이내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리고 원래 나의 일행이었던 것 마냥 나를 따라다녔다. 언어가 통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노랫소리가, 비슷한 생김새가 주는 안정감이 생각보다 대단했다. 인종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는 건지, 우리는 왜 본능적으로 그렇게 움직였는지 궁금해졌다.


연착을 기다리는 동안 배부받은 식권으로 먹은 중동식 면 요리

또 하나 분명했던 건, 해외에 나가는 순간 나는 ‘나’이기 전에 그저 머나먼 땅에서 온 ‘아시아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시아인'은 아직까지 낯설고 신기한 존재라는 것. 나의 고유성이 모두 지워지고 그저 출신 국가로만 정의되는 기분이었다. 외국인들의 시선이 당연하다는 듯 나에게 머물렀다. 재빨리 시선을 거두어주는 사람이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었다. 꽤나 노골적인 시선 속에서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꼈다. 특히 체구가 큰 외국인들과 우연히 눈을 마주치면 이상하게 위축되었다. 그들이 나에게 가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약간의 공포를 느꼈다. 낯선 곳과 낯선 사람이 내게 줄 수 있는 감정에는 그런 불쾌함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익숙한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 곳에 도착하면 마냥 행복하고 해방될 것 같던 긴 믿음이 실은 착각이었다. 희망은 대체로 무지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출국한 지 10시간 만에 느낀 공포와 고독은 앞으로의 해외생활의 예기치 못한 이면을 예고하는 듯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좋았다. 앞으로 내가 보고 담게 될 것들이 지금의 나는 예상도 못하는 새로운 무언가라는 사실에 설렜다. 지금까지 경험할 수 없던 것들을 겪어낸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이제부터 나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곱씹었다. 그래서 자주 주춤거리겠지만 아마 그 덕에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이다. 5시간 넘게 연착된 비행기의 탑승 준비를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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