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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Jun 05. 2024

나고야 여행. 더러운 물과 공기.

10만 원대 왕복요금. 2시간 거리. 너무나 청명한 하늘과 조용한 거리를 가진 나고야에 다녀왔다. 일본인들은 나고야를 참 재미없는 도시라고 한다. 그 에 선입견이 생겼는지 이 조용한 도시는 썩 재미없는 것 같았다. 우리는 마지막 밤에 재래시장 골목을 누비다가 어느 노부부가 하는 선술집에 들어가게 됐다. 주인은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감사합니다" 한국말로 대답을 해주셨다. 우리는 일본이 여행하기 참 좋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노인은 문득 굉장히 안타깝고 씁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엔저!"  


아닌 게 아니라, 서울에서 마셨으면 10 만원은 훌쩍 넘을 술값이 이곳에서는 5만 원이 안 됐다. 그리고 일본인의 주머니 사정을 말해주듯 꼬치 하나에 50엔(450원)에 파는 저렴한 프랜차이즈 술집들이 대 유행이었다. 그래서 매번 술값을 계산할 때면 그 저렴한 가격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노인의 표정은 지난 수십 년의 일본의 변화를 표현하고 있었다. 노부부는 최대 호황기였던 일본의 버블 시절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시절 젊었던 부부는 한국 관광도 다녀왔을지 모른다.  

"와 나고야에서 먹으면 만 엔은 나올 텐데 서울에서 마시니까 5천 엔도 안 나와! 정말 싸다!"

하며 즐거워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본과 중국에서 혐한이 퍼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유튜브에는 이런 식의 내용이 넘친다. 일본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와사비 테러를 당했다. 혐한을 하던 어느 중국인이 한국에 와서 선진적인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등등. 이런 아이템이 쉴 새 없이 만들어지는 중이다. 언제나 혐오는 잘 팔리는 아이템이고, 보는 사람의 감정에 즉각적인 자극을 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혐오와 증오에 포섭이 다. 하지만 이런 혐오를 끌어안고 기꺼이 와사비 테러를 하는 일본인도, 그런 일본인을 증오하는 한국인도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마치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공기가 없으면 살 수 없지만 그런 사실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산다. 더러운 물에 사는 물고기를 상상해 보자. 굉장히 탁한 공기에서 살아야 하는 인간들을 생각해 보자. 불편을 감수하고 물을 마시고, 숨을 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이나 공기는 어쩔 수 없는 디폴트 값이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모두가 더러운 물과  공기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게 될 것이다. 나는 혐오가 그런 종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증오나 혐오처럼 아주 교묘하고 조밀하게 때로는 치명적으로 일상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정치 역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혐오와 정치는 우리 모두가 어쩔 수 없이 그 속에서 숨 쉬고 마시며 살아야 하는 디폴트 값들인 셈이다.   


각각의 나라마다 서로 다른 오와 정치 형태를 가지고 다.  혐한을 한다는 일본인, 남조선 괴뢰잔당들을 모조리 불태우겠다는 북한 사람, 테러 집단인 팔레스타인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이스라엘인, 히잡을 쓰지 않는 여성을 매질한다는 이란인. 모두 마시는 물과 숨 쉬는 공기는 다르지만 물을 마시고 숨을 쉬는 인간의 삶이라는 측면에서서로 다르지 않다. 비록 거친 구호와 전쟁 같은 상황에 동원되는 사람일지라도 집으로 돌아와 사는 모습은 매 한 가지다. 설사 다른 존재들에게 혐오와 증오를 자발적으로 휘두르는 사람이라 해도 그 역시 집으로 돌아와 살아가는 모습은 다르지 않다. 누구나 가족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염려하고,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애를 쓴다. 북한, 일본, 이스라엘, 이란. 이들 나라의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통화 가치가 떨어지거나, 히잡을 써야 하거나, 서점마다 혐한 코너를 갖추고 있는 점이 다르더라도 모두들 그런 보통의 삶을 살아간다.

때문에 혐오를 생산하고 퍼뜨리는 것은 비루한 구호에 불과하다. 흙탕물을 만들면 잠깐은 더러운 물을 마셔야 하는 것뿐이다. 공산주의에 맞서는 민주주의 수호의 선봉대가 되겠다거나, 감세를 해서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등의 더러운 공기를 한동안 숨 쉬어야 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노부부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술집을 나왔다. 그리고 이 술집은 우리의 나고야 여행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 재미없다는 나고야도 재미없지 않다. 그저 재미가 조금 덜 할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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