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b.G의 일본생활 메모리

일본살이 드디어 시작! 불친절한 택시기사와의 불쾌한 첫 출발

2014년 3월 마지막날, 우리 가족은 나리타 공항을 통해 일본에 입국했다. 붐비는 공항에서 입국관리 수속을 마치고, 스카이라이너를 타고 신주쿠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나절이 지나 어둑한 밤이 되어 있었다.


우리에게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한돌 반의 아들이 있었고, 아들을 태운 커다란 유모차 한대 (잠시 후에 이 커다란 유모차가 우리에게 잊지 못할 첫 기억을 선사하게 된다!), 그리고 역시 커다란 이민 트렁크 두 개가 함께였다.


상상이 가는가? 사람들의 홍수 속에서 피곤해 보채는 어린 아들을 달래가며, 유모차를 끌며, 게다가 각자 한 손에는 트렁크도 끌어야 하는 상황이. 신주쿠를 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알지도 모르겠지만, 그곳은 정말 맨몸으로 혼자 걸어다니기에도 정신이 쏙 빠지는 혼돈의 장소다. 그런 상황에 무거운 짐과 유모차라니, 여기다 초행길의 긴장감까지 보태니 화룡점정. 하드코어한 스타트였다.


앞으로 다니게 될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사택에는 다음 날 입주하기로 되어 있었고, 우리는 일단 근방의 호텔에서 첫날밤을 묵게 되었다. JR신주쿠역 앞에서 택시를 잡고 미리 예약해둔 호텔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것이 우리 일본살이의 첫날을 잊지못할 기억으로 만들어 줄 줄이야.


이전에도 여행으로 여러번 일본을 다녀왔던 나는 "지나칠 정도로 친절한 일본인"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아 있었다. 특히, 돈을 지불하고 제공받는 서비스라면 말할 나위 없이 친절해서 오히려 내가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 받은 서비스(택시)는 예외였다.


우리가 짐이 많아서? 외국인이어서? 혐한? 아니면 그 택시기사에게 그날 안좋은 일이 있었나? 그 이유야 어쨋든, 택시기사는 크기가 커서 트렁크에 잘 들어가지 않는 유모차를 억지로 꾸겨 넣고, 잘 닫히지 않는 트렁크 문을 기분나쁘게 쾅쾅 내리찍으며 겨우 문을 닫더니 운전석에 올라탔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우리의 유모차는 다른 일본 유모차에 비해서 상당히 큰 편이었다. 어디를 가든 누구에게나 눈에 띄는 그런... 아무리 그래도 그 택시기사의 행동은 지금 생각해도 유쾌하지 않다.)


"일본인은 친절하다"는 프레임에 갇혀있던 나는 오히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잠시 얼떨떨한 느낌이었다. 오히려 내가 택시기사에게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라고 생각할 지경이었으니.


기사: 어디서 오셨소.

나: 한국에서 왔습니다.

기사: 저 유모차는 어디거요.

나: 한국제 입니다.

기사: 한국제는 원래 저런가? (이 부분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아무튼 한국산이 뭐 그렇지, 이런 느낌이었다.)

나: ....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잠시 나눈 대화인데, 어딘지 모르게 매우 불쾌했다. 일본생활 첫 시작부터 혐한족을 마주치게 될 줄이야. 그나마 이동거리가 짧았던 것이 다행이었다. 금방 호텔 앞에 도착했고, 택시기사는 짐을 내려주더니 (이런 행동은 아마 택시기사 매뉴얼에 있나보다. 아무리 불친절해도 할 일은 다 해준다) 재빨리 사라졌다.


우리는 내려진 짐을 정돈하고, 유모차를 조립하여 (요람과 프레임을 탈착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호텔로 들어서려고 하였다. 아니 그런데 유모차에 바퀴가 없는게 아닌가? 공항에서 역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전혀 문제없이 타고 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택시에서 없어진 것이 분명했다. 태도부터 불친절하더니 결국 우리의 유모차마저 불구로 만들어버리다니. 한돌반의 아이와 함께 다니려면 유모차는 필수인데.. ㅠㅠ

이미 택시는 떠나버렸고, 망연자실할 수 밖에.


어쩔수 없이 불구가 된 유모차를 겨우 끌고 호텔에 들어서서 짐을 풀었다. 정말 길고 긴 하루였다. 온몸이 피곤해졌고, 그제서야 밤 9시가 넘도록 저녁도 먹지 못한게 생각났다. 근처 규동집에서 도시락을 사서 한끼를 때우고 나니 다시 유모차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난다. 이걸 어쩐담...


택시에서 떨어진 것이라면 어차피 찾을 수 없겠지만, 택시를 타기 전에 떨어진 것이라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아까 택시 탄 정류소에 다시 가보자.


다행히도 호텔에서 역까지는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고, 군장은 숙소에 풀어두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시내 구경이라도 할 겸 다녀와 보자.


이렇게 우리 가족은 처음 택시를 탄 장소까지 가보기로 했다. 두리번두리번 길을 더듬어 JR신주쿠역 남쪽 출구 횡단보도를 건너자, 택시 대기줄 근처의 군중 틈속에 덩그러니 우리의 유모차 바퀴가 놓여있는게 아닌가! 다행히도 탈착식 형태의 바퀴였고, 따로 고장난 부분도 없어서 원래 본체에 끼워넣기만 하면 다시 쓸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아까 택시기사가 트렁크에 유모차를 실을 때 쾅쾅 내려치던 와중에 빠진 것이 분명했다.


곱씹어 다시 생각해봐도 괘씸했지만, 아내와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찾을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다시 찾게 되지 않았어. 행운이 우리의 일본살이를 지켜줄 것만 같아. 게다가 이렇게 잊지 못할 추억도 선물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