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일상과 생각(4)
어제 오전에 일을 하다가 상담전화를 한 통 받았다. 보통 전화 상담을 하다 보면 별의별 일들이 다 있고, 전화를 끊고 나면 ‘이 통화 내용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황당한 경우도 많다.
어제 오전 통화 내용도 그런 것이었기에 변호사의 ‘당황스러운’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통화 내용이다.
나: 네, 현승진 변호사입니다.
상담자: 제가 교통사고 가해자인데 구상권 방어를 할 수 있을까 해서 전화를 했습니다.
나: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한번 말씀해보시겠어요?
상담자: 제가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가 중앙선을 넘어서 다른 오토바이와 사고를 내서 상대방 운전자가 다리를 다쳤어요. 거기다가 자리를 이탈해서 뺑소니까지 들어갔어요. 뺑소니에 12대 중과실이고 다리를 다친 거죠.
상대방이 자기 보험으로 처리를 하고 지금 진행 중이에요. 그런데 상대방 보험회사에서 저에게 4,800만 원을 달라고 그러더라고.
근데 그쪽 보험사에서 얘기를 하기를 4,800만 원 중 내 책임보험 까고 3,800이 남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물어봤죠. 내가 잘못한 건 맞는데 중앙선 침범하고 뺑소니도 꼈다고 해도 내가 5,000만 원을 물어주는 게 말이 되냐고 했더니 자기들은 절차대로 청구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도주까지 했다는 걸 보니, 음주운전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됐지만 아무튼 의심은 접어두고 최대한 친절하게 상담을 이어갔다.
나: 그쪽 보험사에서는 일단 실제 자기들이 지급한 보험금을 청구하는 건데, 선생님이 판단하기에는 치료비라든가 수리비라든가 다 합쳐도 그 비용이 절대 나올 수 없다는 입장이신 거예요?
상대방: 상식적으로 안 맞는 액수가 아닌 거 아닌가, 그리고 그런다고 그래도 그 사람이 불러주는 걸 다 줘야 되는 거냐?
나: 그렇지는 않죠.
보험사에서 지급한 건 ‘형사합의금’이 아니다. 실제 피해액보다 어느 정도 과다하게 지급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기준 없이 마구 지급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아무 근거도 없이 보험회사에서 무조건 피해자가 달라는 대로 줬다고 생각한다. 액수가 크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상대방: 아니 나는 예를 들자면 이런 거죠. 여행을 갔는데 여인숙도 있고 여관도 있고 특급호텔도 있는데 특급호텔에 묵고 그 비용을 다 달라고 하는 식의 얘기죠.
나: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대로 그런 게 확인이 되면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감액을 시도해볼 수 있기는 해요. 근데 오토바이 운전자가 실제 입은 피해는 전부 배상해야 될 의무가 있는데 그 청구액이 적당한 금액인지, 방어를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면 그쪽에서 청구하는 내역을 확인해야 하는 거죠. 쉽게 말해서 어떤 내용으로 각각 얼마씩을 보험금으로 지급했고 그래서 총액이 얼마다. 이런 게 있어야 하니까 보험회사에 그걸 요청을 해보세요.
이미 정답을 얘기해줬다. 중앙선 침범 사고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상담자 과실이 100% 일 테니까 배상해주는 게 맞되, 상대방이 손해액을 부풀린 것으로 확인되면 감액이 가능하다고. 그러니까 보험금 지급내역을 요청해서 확인해 보라고.
상대방: 제 얘기는 이런 얘기예요. 통상적으로 그런 사고가 나서 그 사람이 얼마나 다쳤는지 모르지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액수잖아요. 너무 통상적인 액수가 넘으니까 그러는 거죠.
슬슬 억지가 시작된다. 자기 스스로도 피해자가 얼마나 다쳤는지 모르지만 액수가 말이 안 된단다. 얼마나 다쳤는지 모르는데 도대체 액수가 말이 안 되는지 어떻게 아나? 만일 피해자가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거면 어떡할 건데?
나: 그러니까 그게 통상적인 액수를 넘는 건지 아닌 건지는, 선생님 말대로 특급호텔에 가서 액수가 커진 건지, 진짜 치료비가 많이 나온 건지를 확인해야 답변을 드리지요.
상대방: 알겠는데 내가 희망이 있어야 변호사를 선임하든지 말지 결정을 하죠.
희망이 있는지 없는지, 다시 말해서 보험회사와 소송을 통해서든 협상을 통해서든 액수를 줄이는 게 가능한지 얘기를 하려면 왜 4,800이 청구됐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게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가? 그냥 무조건 통상적인 게 아니라고 자기 얘기만 한다.
나: 선생님 하나만 확인할게요. 피해자가 치료비가 전치 얼마가 나왔고 치료비가 얼마가 나왔는지...
상대방: 4,800만 원이요.
나: 그건 치료비만이 아니라니까요.
상대방: 다 합쳐서 그렇게 나온다니까요.
나: 그러니까 치료비가 얼마가 나왔는지 전치 얼마인지, 후유장해가 의심되는 게 있는지 이거라도 알아야지...
상대방: 그건 나중 얘기고, 나도 안 본 서류를 얘기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 보지도 않은 걸 얘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보험회사에다가 요청해서 확인하라고 계속 얘기한 거 아닌가.
나: 그러니까 보험사에 내가 이걸 지급하려면 보험금이 어떻게 지급됐는지 확인을 해야 하니까 그걸 요구해서 확인하고 연락을 주셔야 상담이 되지요.
상대방: 그럼 혼자 다 해 먹으세요. 뭘 그걸 물어봅니까. 혼자 다 해 먹으세요.
이러고 전화를 뚝 끊어버린다. 뭘 혼자 다 해 먹으라는 거지? 순간적으로 화가 났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참았다.
전문가가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적절한 조언을 하는데 무시하고 자기 얘기만 한다. 그냥 근거 없이 통상적이지 않은 금액이라고 깎을 수 있는지 없는지 답을 달라고 한다. 멍청하다.
거기다가 자기가 억지를 쓰다가 안 통하니까 기껏 시간 내서 조언을 해준 변호사한테 “혼자 다 해 먹으세요. 뭘 그걸 물어봅니까. 혼자 다 해 먹으세요.”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어버린다. 예의도 없다.
잘 모르면 전문가의 조언을 새겨듣거나 새겨들을 능력이 안 되면 예의라도 갖춰야 하는데, 멍청한데 예의도 없다.
그래도 꼭 어떤 훌륭한 변호사님이 이 사람이 알아듣게 설명하고 설득해서 정말 과다한 청구를 받은 거라면 보험회사에 정당한 액수만 지급할 수 있게 도와주시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