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에 온 지 4개월이다.
돌아보면 생각했던 것보다는 빨리 적응한 것 같다. 집을 빨리 구했던 것이 가장 컸고, 차를 사면서 기동성이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 그리고 자녀가 없으니 학교나 유치원을 알아본다거나 주변 환경을 크게 신경 써야 할 일도 없었다.
그리고 나라가 달라져도 사는 것은 비슷하다.
일하고, 먹고, 쉬고, 자고, 운동하고, 자기 계발을 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여행을 가고...
살아가는 것은 결국 변하지 않은 나다.
남편과 나의 삶을 뜯어놓고 보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렇다면 언어에 있어서는 어떨까?
아일랜드는 영어를 쓰는 나라이기 때문에 영어가 공용어가 아닌 나라에 사는 것은 각자의 나라를 제외하고 우리 둘 다 처음이다.
그리고 남편도 나도 포르투갈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안녕하세요(올라)', 고맙습니다.(오브리가다)'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혀'를 빼야 할까?
아니다. 그래도 전혀 못한다고 봐야 한다.
이 정도 수준은 공항에서 급하게 포르투갈 여행 관련 책을 사서 책 한편에 나와 있는
'포르투갈을 여행하면서 유용할 몇 가지 인사와 문장들'을 5분 정도 훑으면 익힐 수 있다.
그래도 이제까지 포르투갈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치고는 (작은 불편함은 있어도) 큰 불편함 없이 살고 있다.
어떻게 가능할까?
1. 직장에서는 오직 영어만
나는 직장에서 포르투갈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도, 하고 있는 일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인터내셔널이다. 심지어 교회도 인터내셔널 교회를 나가고 있다. 포르투갈어를 써야 할 일이 전혀 없다.
만약 내가 포르투갈어를 어느 정도는 구사해야 직장을 구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애초에 포르투갈을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기에 포르투갈을 선택한 것도 있다.
2. '한 사람'의 법칙
큰 불편함은 없지만 작은 불편함은 있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대체로 영어를 잘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생활 곳곳에서 생기는 불편함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집을 구할 때, 차를 살 때, 인터넷을 개통할 때, 전기/가스/수도 등 고지서 관련 업무를 처리할 때, 세금을 납부할 때, 물건을 살 때, 구매한 물건이 고장이 나서 서비스를 받아야 할 때, 은행 계좌를 만들기 위해 은행에 문의할 때, 사회 보장 서비스를 받기 위해 전화로 예약해야 할 때 등 이러한 상황을 계속 접하면서 모든 것이 영어로 가능했던 아일랜드에서의 삶이 얼마나 편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중 최소 '한 사람'은 영어를 잘했고, 이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집을 구할 때는 랜드로드의 아들이 영어를 잘해서 중간에서 도와주었고, 차를 살 때는 딜러의 영어가 유창했다. 관공서나 쇼핑몰, 은행 등에 가면 대부분 영어로 기본적인 소통이 가능했으며, 본인이 응대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다른 직원을 연결시켜 주었다.
3. 구글에게 늘 고맙다
조금 번거롭긴 해도 구글 번역을 사용하면 된다. 아주 매끄럽진 않아도 구글 번역이 상당히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이탈리아에 가서 시부모님과 대화할 때도 구글 번역을 꼭 사용한다.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 번역, 음성 번역도 가능하다. 이미지 번역은 계약서를 확인하거나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정말 요긴하게 사용한다. 마트의 식품 코너에서 파는 음식에 어떤 재료가 들어가 있는지 확인할 때도 잘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 아랫집과 층간 소음으로 대화할 일이 있었을 때에도 구글 번역을 사용했다.
우리가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먼저 보여줬고, 상대방이 답변을 입력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다소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소통을 할 수 있고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어딘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아랫집에서 노력하는 것이 느껴진다.
자기 직전까지 내 맘대로 끌 수 없는 배경 음악처럼 들어야 했던 그 남자의 목소리가 최소한 저녁 9시 이후로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4. 포르투갈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
우리 팀에 포르투갈인 동료들과 브라질인 동료가 있어서 늘 든든하다.
언어적인 부분뿐 아니라 포르투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때마다 매번 도움을 받고 있다.
집을 구할 때 여기저기 메시지를 많이 보냈었는데 그중 어느 집주인에게 받은 답장에서 스캠의 느낌이 나서 브라질 동료에게 번역을 부탁한 적이 있고, 전기/가스 요금이 생각보다 많이 나와서 포르투갈인 동료와 상의한 적이 있었다.
아랫집에 쪽지를 남길 일이 있었는데 구글 번역보다 더 자연스러운 문장이었으면 해서 상황에 맞는 적당한 문장을 알려 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었다.
아일랜드에 살면서도 크게 느꼈지만 이런 도움들이 이방인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된다.
그래서 나도 아일랜드나 포르투갈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아는 한 아낌없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 늘 있다.
포르투갈어를 배우고 있는지 또는 배울 계획이 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요'다.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올해부터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정된 시간 내에 두 언어를 모두 배우기 어렵고, 포르투갈에서 장기 거주를 계획하고 있지 않은 만큼 이탈리아어를 더 늦기 전에 배우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래서 요즘...
내 몸은 포르투갈에 있고,
내 입에선 영어가 나오며,
내 뇌는 이탈리아어를 습득하느라 아주 정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