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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존재 Mar 14. 2023

16. 해외에서 오래 살면 잊혀질까, 더 기억될까

엄마와 일주일에 한 번 통화를 한다.

서로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은지 기본이 한 시간이다.


우리 각자의 삶에 대해 얘기할 때도 있지만 얘기를 하다 보면 서로가 공통으로 아는 사람에 대한 얘기로 흘러갈 때가 있다. 오늘처럼 말이다.


"엄마 다시 서예 쓰기 시작했다."

"정말요? 계속 쓰셔서 출품도 하시고 나중에 선생님도 되세요."

"응. 꾸준히 하려고. 오랜만에 써도 예전 실력은 아직 남아있더라."


내가 초등학생일 때 교감 선생님이 서예를 잘 쓰셔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서예 교실을 여셨고, 엄마는 1년 넘게 꾸준히 배우셨다.


서예 얘기를 하다가 그때 엄마와 같이 서예를 배우시던 OO네 엄마, OO네 엄마 얘기를 하게 됐고 연락이 끊어진 지 한참 된 친구들이 문득 생각이 났다. 그런 차에 엄마가 먼저 얘기를 꺼내신다.


"그 애들 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러게요. 다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죠? 가끔 저도 생각나요."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로 시작해서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동네에서 모여 놀았던 소꿉친구들 얘기로 이어졌다. 그중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두 친구가 있는데 말도 행동도 예쁘게 하고 나와도 잘 어울려서 우리 엄마에게도 이쁨을 많이 받았던 친구들이었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함께 동네 곳곳을 누비며, 저녁 먹을 시간이 다가오는지도 모르게 실컷 놀며, 그렇게 한 동네에서 나고 함께 자랐던 두 아이는 방법만 있다면 꼭 찾고 싶을 정도로 아직도 생각난다.


만약 그 친구들도 아주 가끔씩 그때를 떠올리고 있다면, 혹시나 나와 같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마음과 마음이 조금씩 닿아 평생에 딱 한 번이라도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는 영화 같은 날도 올까.


어쩌면 평생 사는 동안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이 현실과 더 가까울지 모른다.


지금도 앞으로도 부디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해외에서 오래 살다 보면 아쉬운 순간들이 있다.


친한 친구들의 경조사를 직접 챙기지 못할 때다. 내가 아일랜드에 오고 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결혼 소식을 알렸고, 아쉬운 대로 축의금이나 선물을 보냈지만 그들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빛이 나는 순간에 함께 하지 못해 미안했다.


한국에 살았을 때도 먹고사는 것에 바빠 몇 달에 한번 얼굴 보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더 서로의 삶을 공유하며 기쁨과 슬픔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아주 초기라 다행이었지만 아빠의 몸에서 암이 발견됐다는 소식도, 친구의 이혼 소식도, 큰 외삼촌이 백혈병으로 힘들게 투병하셨던 것도 한국에 가서야 들었다.


해외에, 그것도 아주 먼 나라에 있으니 괜히 마음만 더 힘들어지고 걱정할까 봐 아예 소식을 전하지 않은 그들의 헤아림이 느껴져서 마음이 좀 슬프고 씁쓸했다.


내가 모르는 것이 아주 많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해외에 사니까 어느 정도 용인되는 것들이 있고, 거기에서 오는 자유로움도 있다.


한국을 떠난 지 7년 차,


한국에서 복잡하게 쌓아왔던 인간 관계도 의도했든 의도치 않든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됐고 덕분에 카톡 연락처도 가벼워졌다.


- 내가 한국에 있던 외국에 있던 상관없이 꾸준히 이어질 관계

- 최근 몇 년 사이에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았어도 언젠가는 반갑게 만날 수 있는 관계

-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만날 가능성이 희박한, 사실상 끊어진 관계


포르투갈로 떠나왔으니 이제 아일랜드에서 맺은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고, 내가 포르투갈을 떠나면 또 비슷한 방식으로 정리가 될 것이다.


가족 외에 삶을 동반한다는 느낌으로 갈 수 있는 관계가 몇이나 될까.


서로의 삶을 나누고 보듬으며, 손을 뻗으면 언제나 닿을 곳에 있는 그런 관계.


나이가 들수록 그런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연락과 만남의 횟수와 상관없이 아직까지도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있는 사람들이 소중하고 그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해외에 사는 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지는 것이, 멀어지는 것이 두렵지는 않다.


한국에 계속 있었더라도 정리가 될 관계는 어떻게든 정리가 됐을 거다. 그리고 서로에게 그것이 더 나은 관계도 있다.


연락이 끊긴 지 30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종종 생각 나는 내 소꿉친구들처럼


함께 했던 시간이 길었던 짧았던 기억될 사람은 기억되며,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잊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긴 시간 속에 커져버린 애틋함과 그리움 때문에 선명하게 기억하려 애쓰게 된다. 누군가에게 나도 그런 존재일지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그래서 잘 살고 싶고, 건강하고 싶다.


그리운 이를 만나는 인생의 선물 같은 순간이 찾아올 때 그 선물을 기쁘게 받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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