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밍을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 클라이밍짐을 처음 가보았던 것이 벌써 5년 전이다.
생애 처음 클라이밍을 도전했던 날,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한 발 한 발 올라갈 때마다 지면과 멀어지자 심한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고,
결국 스태프의 권유로 안대를 쓰고 올랐다.
아무것도 안 보이면 공포감이 더 커질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오히려 보이는 게 없어서 편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얼마만큼 높이 있는지에 대해 인지할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덜했다.
다만, 이것은 아주 초보자나 어린아이들에게 사용되는 방법으로 클라이밍을 제대로 하려면 반드시 '발'을 보아야 한다.
공포감의 원천은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에서 온다.
정확하게 발이 어디를 짚고 있는지 봐야 하기 때문에 오를 때마다 반드시 발을 봐야 하는데 보는 순간 공포감은 휘몰아친다. 그럴 땐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벽에 몇 분을 매달리다 포기하고 내려온다.
그렇게 첫 경험을 호되게 치르고 나서 과연 나는 다시 갔을까?
순전히 즐기자고 시작한 것인데 울상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이대로 포기하기는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한번 더 갔다.
웬일인지 처음보다는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이 편했고 꽤 높은 곳까지 오를 수 있었다. (물론 쉬운 코스였다.)
그것으로 끝나면 좋았겠지만...
결국 나는 한바탕 크게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클라이밍짐에는 자동 줄을 의존하는 방식, 파트너와 연결되어 있는 줄을 의존해서 내려오는 두 방식이 있다.
남편이 밑에서 belaying을 해줄 때는 공포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자동으로 움직이는 줄에 의존해서 내려오려니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내 발로 내려가겠다고 몇 번 시도했지만 높이가 있어서인지 그것도 쉽지 않았다.
남편은 밑에서 안전하니까 걱정 말고 내려오라고, 발을 떼라고 계속 외치고 있었고,
머리로는 그러고 싶은데 도저히 발을 떼지 못하며 공중에 매달린 채로 몇 분이 지났다.
결국에는 발을 떼고 밑으로 안전하게 내려왔지만 발이 땅에 닿자마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때 여러 마음이 얽혀있었다.
그 한 발을 용기 있게 떼지 못했다는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그리고 굳이 이렇게 힘들게 할 것도 아닌데 자동 줄로 해보라고 권한 남편에 대한 원망까지.
30년 넘게 인생을 살았는데 왜 이렇게 아직도 두려운 것이 많을까.
언제쯤 새로운 것 앞에, 이제까지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조금 더 담대해 볼 수 있을까.
소위 '깡'이라는 것으로 악착같아져 볼 수 있을까.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클라이밍이 내 기억 속에 거의 잊혀 있었는데 우리는 포르투갈에서 다시 클라이밍짐을 찾았다.
벽에 오르는 순간,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온 신경이 내 몸과 저 블록들에만 집중된다.
한번 올라갔다 내려오면 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그때의 경험 때문일까.
이번에 자동 줄을 다시 시도해 보았는데 내려올 때의 느낌이 여전히 편하지 않았다.
내가 이 줄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극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니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다음에 갈 때는 조금 더 익숙해지도록 여러 번 자동 줄로 오르고 내려오는 연습을 해야겠다.
클라이밍짐 근처에서 살고 싶다며 매주 오자는 남편에게 '그건 내게 너무 과하지 않나?'라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매주까지는 아니어도 정기적으로 오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부인할 수 없었다.
나를 불편하고 어렵게 하지만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보상을 주고,
잊을 만하면 다시 이렇게 찾아오는 이 징글징글하면서도 싫지 않은 인연,
클라이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