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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y Soul Kim Feb 15. 2024

ITZY(있지)의 위기

TWICE에겐 있고 ITZY에겐 없는 것

지난달에 발매된 ITZY의 새 미니앨범 <BORN TO BE>의 첫 주 초동 판매량이 크게 줄었다. 82만 장에 달했던 지난 앨범 <KILL MY DOUBT> 초동 판매량이 이번에는 약 32만 장까지 줄었으니 그 충격이 적지 않다. 나는 ITZY의 위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부진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콘텐츠 기획자의 관점에서 개인적인 견해를 말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지금 ITZY의 가장 큰 문제는 ITZY의 캐릭터(화자)와 그들의 음악(메시지) 간의 괴리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어보자. 신곡 <BORN TO BE>와 <UNTOUCHABLE> 뮤비 속 ITZY의 여전사 이미지, 그리고 ‘Born to be wild and free’, ‘I’m untouchable’이라고 외치는 그들의 노랫말, 이것이 과연 ITZY와 어울리는 모습일까? ‘I’m untouchable’이라고 외치는 ITZY의 메시지와는 상반되게, 멤버 리아는 최근 극도의 긴장과 불안감 등 건강상의 이유로 활동을 중단했다. 또 이전 앨범인 <KILL MY DOUBT> 다큐멘터리에서 몇 번이고 반복된 메인 시퀀스는 있지 멤버들이 박진영 프로듀서 앞에서 본인들의 퍼포먼스에 속상해하고 눈물 흘리는 장면이었다.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지금 대중이 생각하고 있는 ITZY의 모습은 Wild and Free 하고 Untouchable 한 여전사의 모습인가? 아니면 불안하고 무섭지만 자기 자신답게 살고 싶다며 Sneakers 신고 마음 다잡는 소녀들인가? 내 답은 후자에 가깝다.


처음 ITZY가 데뷔했을 때의 모습을 기억한다. ITZY의 첫인상은 쉽게 말해 Gen-Z 같았고 Gen-Z 다웠다. ITZY라는 이름에서 보여지는 지(Z)는 Gen-Z를 타깃으로 한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 같았고 ‘달라달라’라는 첫 타이틀 곡 제목도 ‘이전 아이돌들과는 다르다’는 ITZY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또 데뷔 초 내가 주목한 멤버는 예지였는데, 당시 다른 인기 아이돌 멤버들의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른 그녀의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날카롭고 도도한 이미지의 예지가 파워풀한 퍼포먼스로 무대 중심에 선 모습에서 ITZY의 이미지가 확실히 이전 걸그룹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너네가 뭐라고 하든 난 너희와 달라’, 이러한 당당함이 곧 JYP가 ITZY에게 부여한 캐릭터였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ITZY를 알아갈수록, 나는 JYP가 ITZY에게 부여한 ‘Gen-Z의 당당함’이란 캐릭터가 상대적으로 그들과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Gen-Z의 당당함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세분화할 필요가 있을 테지만, 대중이 쉽게 떠올리는 Gen-Z의 당당함이란 누구 말도 듣지 않을 것 같은 당돌함,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나르시즘 등으로 대표되곤 한다. 그리고 그러한 캐릭터들이 가장 잘 어울리는 아이돌은 안타깝게도 ITZY 멤버들이 아니라 <지구오락실>의 안유진(아이브), <방과후설렘>의 전소연(아이들)과 같은 다른 걸그룹 멤버들이었다. 버라이어티 혹은 서바이벌 예능이나 유튜브 콘텐츠 등을 통해 당돌하고 발랄하면서도 통제 불가능한 캐릭터들을 확고히 한 해당 멤버들은 <I AM>, <퀸카> 등의 나르시즘 캐릭터에 걸맞은 곡(메시지)들을 통해 그들만의 서사를 성공적으로 이어나갔다.


이에 반해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점잖은(?) ITZY 멤버들은 시간이 갈수록 당돌함이나 나르시즘보다는 실력, 성실, 겸손과 같은 JYP 스러운 이미지가 강화되었다. 뛰어난 라이브 실력으로 화제가 된 앙코르무대 직캠 영상과 ‘무대에서 핸드 마이크 들고 라이브로 노래하며 춤출 수 있는’ ITZY 멤버들의 실력을 칭찬한 박진영의 영상이 화제가 된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압도적 퍼포먼스를 비롯해 뛰어난 라이브 실력에 대한 호평은 지속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들의 캐릭터와 메시지의 간격은 점차 커져갔고, 특히 이번 앨범에서 말하고자 했던 ITZY의 걸크러쉬 서사는 설득력을 잃었다. 일탈이나 반항이 어울리지 않는, 나르시즘보다는 겸손함이 어울리는 소녀들에게 Born to be wild, Untouchable이라는 메시지는 잘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ITZY가 통제불가능한 당돌함, 혹은 나르시즘이나 걸크러쉬 같은 캐릭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ITZY에게 서사의 기회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Gen-Z의 당당함’에는 당돌함과 나르시즘의 이미지도 있지만 겸손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 자존감 높은 태도 역시 포함된다. 나르시즘과 자존감은 비슷하면서도 또 분명히 다른데 남에게 과시하지는 않지만 자존감 높은 건강한 캐릭터, 나는 이와 같은 긍정적 바이브의 캐릭터가 ITZY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Untouchable>의 여전사보다는 <Sneakers> 속 긍정적인 소녀들이 ITZY에게 더 어울리는 모습 아닐까?


우리는 비슷한 캐릭터의 성공적인 예를 JYP 선배 걸그룹인 트와이스로부터 찾을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을 넘어 최근에는 미국을 포함해서 전 세계로 더욱더 뻗어나가고 있는 트와이스의 성공에는 그들만의 건강하고 긍정적인 성장 스토리가 있다. 트와이스는 <CHEER UP>, <TT>로 상징되는 상큼 발랄한 곡들 뿐 아니라 <FEEL SPECIAL>과 같은 노래로 대표되는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통해 팬들과 함께 다양한 성장 스토리를 써나갔다. 아프고 힘든 일이 있는 멤버가 있을 때마다 서로가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줬다는 일화들은 물론이고, 멤버가 9명이나 되는 걸그룹에도 불구하고 모든 아이돌이 겪는다는 불화설 한 번 없이 멤버 전원 재계약을 한 사실과, 재계약 이후 8년 차가 돼서야 솔로 및 유닛 활동을 시작한 멤버들의 모습은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트와이스만의 건강한 스토리텔링이다. K-POP에 유행처럼 번졌던 걸크러시 캐릭터나 회사가 만들어준 특정 세계관 없이도 그들은 그들만의 리얼하고 자연스러운 성장 스토리로 지금까지도 최정상의 위치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JYP 박진영 프로듀서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참가자에게 항상 이런 요구를 한다. “말하듯이 노래하라”. 그 말을 음악적인 관점에서 해석하자면, 평상시 말할 때의 목소리나 말투(창법)로 노래하라는 내용일 것이다. 하지만 콘텐츠적으로 해석하자면 평상시 화자가 말할 법한 내용에 대해 노래하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ITZY는 평상시에 생각하고 말하는 내용을 가지고 노래하고 있을까? 대중에게 그렇게 들리지 않는다면 ITZY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대중이 생각하는 ITZY의 캐릭터는 무엇인지, 그들이 평상시 말할 법한 이야기와 메시지는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가수가 실제 그들의 삶에서 생각하고 고민할 법한 내용으로 노래를 부를 때 청중 역시 그 가사에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뷔 5년 차를 맞는 ITZY는 매년 변화하고 또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ITZY의 음악은 아직 ‘Gen-Z의 당당함’ 같은 추상적인 콘셉트에 갇혀서 그들만의 리얼한 성장 스토리를 담지 못하고 있다. 뻔한 이야기지만, ITZY의 성공을 위해 JYP는 가장 ITZY 스러운 모습을 찾아내야 한다. ‘Gen-Z’나 ‘걸크러쉬’ 같은 추상적인 단어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그들만의 캐릭터를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 힌트는 그동안의 앨범들에 대한 대중의 반응 안에 있을 것이다. ITZY만의 캐릭터를 발견하고 끄집어낼 수 있을 때 가장 ITZY다운 앨범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고, 그때야 말로 ITZY는 말하듯이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ITZY의 새로운 성장 스토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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