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비인후과는 감기 왔을때만 갔는데
(*Pixabay 무료 이미지를 사용하였습니다.)
연말 즈음, 어느 날 갑자기였다. 멀쩡하던 왼쪽 귀에서 '삐이이-' 하는 고주파와 비슷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가 나는 순간 알았다.
'이건 외부 소음이 아니라 귀 안에 나는 소리다.'
이명이었다. 정말 뜬금없이 시작된 것이라 당황스러웠다. 한 5분쯤 당황했나, 그 후로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이러다 말겠지, 했다.
그런데 웬걸, 이 소음은 주변이 조용할 때마다 내 신경을 거슬렀다. 무언가에 집중을 하거나 주변 소음이 이명보다 클 때는 모르다가 조용해지기만 하면 삐이, 삐이, 시끄러운 것이다.
여기서 내 작업 환경을 잠깐 설명하자면, 주변이 소란스러우면 원고를 하지 못한다. 음악을 오래 공부해서 그런건지 태어날 때부터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소리에 만큼은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탓이다. 그래서 작가들이 흔히 말하는 '카페에서 글쓰기' 는 피해야 하는 작업 환경이다. 카페에서 글을 써보고 싶어서 노트북을 들고 간 적이 몇 번인가 있는데, 매번 실패했다.
공부하는 사람들만 모이는 스터디 카페도 내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주 작은 타이머 소리나 종이 넘기는 소리 등등, 미세한 소음들 때문에 정신이 산만해지기 일쑤였다.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방 3칸 중 거실과 가장 멀리 있는 구석 방. 오르간과 책상, 침대만 놓인 내 방만이 작업환경을 만족시켜 주었다. 연습이든 원고든, 내 방에서 할 때 능률이 가장 높았다. 누가 건드리지 않는 이상 하루에 5천자, 많게는 1만 자까지 거뜬히 해내는 작업실은 '조용한' 내 방이 최고의 작업실로 낙점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 '조용한' 환경 때문에 이명이 돋보인 것이다.
집중해서 원고를 써내려가다가 생각하기 위해 손을 멈추면, 어김없이 이명이 고막을 때렸다.
삐이-! 삐이-!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져 버린다. 인상을 쓰고 손바닥로 왼쪽 귀를 문지른다. 그렇게 하면 이명이 지워지기라도 할 것처럼.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일이던가. 내 귀는 손바닥이 귓가를 비비는 그 잠시간의 소음이 이는 동안 이명을 줄였다가 다시 울린다. 삐이이이-!
이러다 말겠지, 가 하루이틀 늘어갔다.
그런데 이번주가 시작된 22일 월요일. 이 이명이 제 존재감을 가감없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제는 삐- 소리가 약간의 소음으로도 가려지지가 않는 것이다. 가족들과 대화를 해도, TV를 봐도, 이명이 그 모든 소리와 함께 들렸다.
이대로는 힘들겠다 싶었다. 결국 참다참다 어제 수요일, 병원을 방문했다.
아주 어릴때부터 기관지가 좋지 않아 감기가 들면 무조건 목으로 왔다. 기침을 너무 심하게 해서 엄마는 나를 종합병원의 이비인후과로 데려가셨다. 그때부터 다니던 이비인후과를 30년이 지난 지금도 다니고 있다. 감기가 올 때마다.
감기 때마다 비염과 천식 증상이 동반되는 증상이 이 이비인후과에서 처방해주는 약을 먹으면 잠잠해지는 편안함이 같은 병원을 30년 내내 찾는 데 한 몫을 톡톡히 했다.
그렇게 신뢰가 잔뜩 쌓인 이비인후과여서, 이번에도 아주 당연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같은 병원을 찾았다.
증상을 얘기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갑자기 들리는 이명은 '돌발성 난청'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얘기했다. 소리가 들리는 데에는 조금의 불편함도 없어서 그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온갖 청력 검사를 다 하고 난 후의 결과는 '정상'이었다.
그럼 왜 내 왼쪽 귀는 자꾸만 삐삐 거리는 것인가. '조용한' 환경에서 글을 써 먹고 사는 나에게는 상당히 곤욕스러운 결과였다.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내 염려에 안심하라며 위와 같은 진단을 내려 주셨다.
아무 문제가 없어서 다행이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긴 했으나. 중요한 건 이걸 어떻게 치료하느냐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이명을 완화시키기 위한 몇 가지 방침을 내려 주셨다.
1. 조용한 환경을 피할 것.
조용한 환경이 필요하다면 백색소음을 일상화 할 것. 모닥불 피우는 소리나 빗소리, 바람소리 등등. 요즘은 유튜브에서도 제공하는 사람이 많으니 그것들을 이용하라는 것이었다. 단,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었다.
본인의 이명 소리보다 백색소음을 작게 틀어놓을 것.
잠들 때 이명 소리가 훨씬 크게 들릴 수 있으니(사실이다. 이명소리때문에 잠 들때까지가 굉장히 괴롭다.) 잠들때도 백색소음을 틀어놓을 것.
2. 이명때문에 신경이 더 예민해지는 경우가 많으니 신경 안정제와, 귀까지 혈액순이 잘 되도록 도와주는 약을 복용할 것.
약물 치료는 2주동안 지속해보고 그 이후 완화가 되고 있는지를 점검하자고 하셨다.
그렇게 혈액순환제와 신경안정제를 처방 받았다. 하루 아침 저녁으로 2회 복용으로, 지금까지 총 3회를 복용했다.
오랜만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고 백색소음도 틀어 두었다.
그래서 이명이 들리지 않게 되었냐? 고 물으면... 아직이다.
아직 들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왼쪽 귀는 삐- 삐- 고주파 소리로 내 신경을 긁어대고 있다.
다만 백색 소음용으로 틀어 놓은 클래식 바이올린 연주곡이 반쯤은 이명을 덮어주고 있다.
신경 안정제 덕분인지 이명이 들릴 때마다 팍팍 솟아 오르던 짜증의 빈도는 줄었다.
앞으로 2주다. 2주 동안 제발, 이 이명 증상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명 씨, 우리 1달 동안 징하게 붙어 살았으니까 슬슬... 헤어집시다. 우리 서로를 위해서.
의사 선생님 말로는 스트레스나 수면 부족, 일시적인 영양 불균형이 일어나면 이명이 들리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 세가지는 만병의 근원이 아닌가. 특히나 바쁘게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들인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어서 조금 슬펐다.
솔직히 지금의 나는 극도의 스트레스와는 거리가 멀다. 집에서, 누구의 압박도 받지 않고 쓰고 싶은 글을 쓴다. 수면 부족이야 원고때문에 자주 벌어지는 일이긴 하지만...
영양 불균형과도 거리가 멀다. 하루 세끼 엄마가 차려주신 건강한 집밥을 먹는데 영양 불균형이 웬말이랴. 비타민제도 빠짐 없이 챙겨 먹고 있다.
이런 나에게도 찾아오는 이명인데. 이렇게 맞이해도 힘든 이명인데. 나보다 열심히 사는 현대인들이 이명을 만나면 얼마나 힘들까.
이명 씨, 웬만하면 들리지 않기로 합시다. 그 누구에게도. 모두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