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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람 Mar 19. 2024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더글러스 애덤스, 마크 카워다인)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더글러스 애덤스, 마크 카워다인, 현대문학, 2024)



동물을 좋아한다. 지금껏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읽고 나서. 나는 ‘동물을 좋아한다’라는 내 스스로의 주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과연 동물을 좋아하는가?


혹은, 


나는 과연 동물을 좋아했던가?


영국의 각본가이자 소설가인 더글러스 애덤스와 세계적인 동물학자 마크 카워다인의 다시 없을 여행기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를 읽으며 이 질문을 수없이 되풀이해야 했다.


그들의 시작은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잡지사의 의뢰로 더글러스 애덤스, 마크 카워다인이 ‘아이아이’라는 여우원숭이를 찾아 마다가스카르에 가게 된 것이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아이아이’를 만나고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멸종 위기 동물들의 이야기를 듣던 더글러스는 곧장 수첩을 열었다.


“1988년에 뭐 할 거예요?”


1988년 그들이 찾아 나선 동물들의 공통점은 단 한 가지다. ‘멸종위기종’.

코모도왕도마뱀, 실버백마운틴고릴라, 북부흰코뿔소, 뉴질랜드 밤앵무 카카포, 양쯔강돌고래, 로드리게스큰박쥐.

책에는 그 외에도 탐험 중에 만난 멸종위기종 이야기가 다수 등장한다.


내게는 모두가 낯선 이름들이었다. 


도마뱀은 알지만 ‘코모도왕도마뱀’은 몰랐다. 인도네시아의 어느 작은 섬에 사는 이 도마뱀은 높이가 1미터, 길이는 최대 3미터에 달한다. 책을 쓴 당시 코모도섬에는 3.6미터 길이도 있었다고 한다. 


고릴라 중에 수컷 성체의 등 색깔이 밝은 회색인 종 ‘실버백마운틴고릴라’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한참을 조용히 앉아 있다가 가방에서 분홍색 노트를 꺼내 지금 하는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녀석은 그런 내 모습에 흥미가 조금 동하는 눈치였다. 어쩌면 분홍색 종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녀석의 눈이 종이 위에서 미끄러지는 내 손을 쫓았고, 조금 있다가 손을 뻗어 처음에는 종이를 만지고 이어서 볼펜 윗부분을 만졌는데, 그걸 나에게서 빼앗거나 나를 방해하려는 게 아니라, 그게 무엇인지 감촉은 어떤지 알고 싶은 듯했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p.145


‘북부흰코뿔소’는 흰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으며, 그 이름이 남아프리카어를 잘못 이해한 학자들 탓이라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동물학자들이 괴팍하거나 색맹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 그들은 단지 무식할 뿐이다. 녀석들이 엉뚱하게 ‘흰’코뿔소가 된 건 검은코뿔소에 비해 더 넓은 입 때문에 붙은 ‘넓다’는 뜻의 남아프리카어 ‘와이트’를 동물학자들이 ‘희다’는 뜻의 ‘화이트’로 잘못 이해한 탓이었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p.159


뉴질랜드의 한 섬에 사는 뉴질랜드밤앵무 '카카포'는 어떤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런 동물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이 녀석은 시대에 뒤떨어진 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의 커다랗고 둥그런 녹갈색 얼굴을 보고 있으면,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녀석을 끌어안고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진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p.198


돌고래는 바다에만 사는 줄 알았다. 중국 대륙의 가장 큰 강에 사는 민물 돌고래 ‘양쯔강돌고래’는 앞이 보이지 않아서 작게 딸깍거리는 소리를 반복해서 소리 반응을 감지하는 음파 탐지 능력으로 주변을 ‘보는’ 줄 알 리가 만무했다. 


“바람이 찌뿌둥한 황갈색의 양쯔강이 일으키는 물결을 보다가 저 아래에서,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지능을 갖춘 생명체들이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세계에서 살다간다는 생각을 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p.283


몇백 마리밖에 남지 않은 ‘로드리게스큰박쥐’가 사는 모리셔스섬에는 그보다 더 희귀한, 몇 마리 남지 않은 동물들이 있었다. ‘분홍비둘기, ‘에코앵무’, ‘모리셔서황조롱이’.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새로운 동물 학명이 나올 때마다 인터넷에서 사진과 영상을 찾아보아야 했다. 이러니 어떻게 ‘동물을 좋아하는 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의심은 단지 동물의 종류를 모르는 ‘무지’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좋아하는 동물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멸종되어 가는지에 조금의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죄책감도 한몫을 톡톡히 했다. 


“어딘가에 가서 초라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우리가 별로 실망하지 않는 건, 우리의 기대치가 얼마나 낮아졌는지를 알려 주고 우리가 뭘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입증해 줄 뿐이다. 우리가 뭘 잃어버렸는지 아는 사람들은 그나마 남은 것을 지키기 위해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있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p.326


알아야 한다. 알면 관심을 가진다. TV에 ‘북극곰 살리기 캠페인’이 등장하면서 북극곰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퍼져나간 것처럼. 동물을 좋아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들을 지키기 위한 실천을 해야 할 시기이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말이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는 ‘멸종위기종’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아주 가치가 높은 책이다. 독자로 하여금 마치 탐험을 함께 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생생한 묘사와, 웃지 않고는 못 버티는 유쾌한 위트에 더불어 지는 깊은 깨달음과 사유는 작가가 얹어 주는 넉넉한 덤이다. 두 번의 절판을 넘은 세 번째 출간도 그런 가치를 높게 사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책의 말미에서 동물학자 마크 카워다인은 이렇게 묻는다.


“이건 정말로 우리가 이 동물들을 볼 마지막 기회였을까?”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p.341


어떤 것은 그랬다. ‘양쯔강돌고래’가 사는 중국의 정부는 2006년에 양쯔강돌고래의 멸종을 선언했다. ‘북부흰코뿔소’는 현재 암컷 2마리만이 생존해 있다. 학자들의 노력으로 개체수가 늘어난 종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종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어쩌면 내가 사는 현재 그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기회도, 지금이 마지막일지 모를 일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기를 바라며, 마크 카워다인의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인다.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는데, …(중략)… 아주 단순하다. 그들이 없으면 이 세상은 더 가난하고 더 암울하고 더 쓸쓸한 곳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p.349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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