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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Nov 30. 2023

그녀가 말하고 나는 듣는다

글쓰기, 그 미친 희망

공공예술 프로젝트와 지역신문 기자, 마을조사단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잘난 사람보다 못난 사람,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의 맛을 본 사람, 완벽해 보이는 사람보다는 허술해 보이는 사람, 가진 것은 없지만 마음만큼은 풍성한 사람. 모두 내가 만난 사람들이었다.


시골의 한 마을에서 만났던 한 여성이 있다. 그때만 해도 육십 대 중반이었으니 지금은 팔십이 넘은 할머니가 되었으리라. 마을 끝 딱 한 채 그녀의 집이 있다. 세로로 길쭉한 모양새의 집 지붕에는 천막이 덮여 있다.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의 비를 막기 위함이다. 모서리가 잘 맞지 않는 문짝을 열고 들어가면 방 두 개가 나란히 있다. 방 하나는 창고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비로 인해 곰팡이와 습기가 가득하다. 그 방 앞에 작은 간이 싱크대와 가스레인지가 애옥한 살림을 말해주고 있다. 


그녀가 주로 사용하는 방에는 늘 이부자리가 깔려 있다. 특별하게 하는 일 없는 그녀는 하루종일 누웠다 일어난다. 밖에 나가 텃밭 한 번 보고 들어와 눕는다. 다시 일어나 이곳에서 만난 깜둥이(반려견)에게 밥을 챙겨주고 들어와 또 눕는다. 날이 좋으면 뒷산에 고사리나 약초를 뜯으러 간다. 그녀에게 그 집은 세상의 전부였다. 


사방이 고요한 시골 한적한 농로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 간 그곳에 그녀와 그녀의 집이 있다. 깜둥이를 목욕시키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가까이 다가가니 술 냄새가 확 올라온다. 오전 11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를 쳐다보며 앞니 두 개가 빠진 선홍빛 잇몸을 드러내며 그녀는 웃어 보인다. 무해한 어린아이의 웃음이다. 술기운 탓이었을까.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주절주절 읊었다. 원한도, 후회도, 미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들어주는 일뿐이었다. 


그녀 나이 일곱 살, 아버지는 어린 그녀를 두고 집을 나갔다. 그녀의 모친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재혼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성(姓)을 얻었다. 열일곱 살 결혼 후 중년이 되어 그녀는 본래 성씨의 족보를 구입해 집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결혼생활은 쉽지 않았다. 농사를 한 번도 지어보지 않았던 그녀에게 시집살이를 하며 농사를 짓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어릴 적 친정어머니는 포목점을 운영했다. 가게는 그녀에게 놀이터였다. 호미 한 번 들어본 적 없이 살았다. 친정어머니를 졸라 돈을 얻어 서울에 셋방을 얻고 고무신 장사를 시작했다. 나쁘지 않았다. 2층 양옥집도 마련했다. 어느 정도 형편이 나아지면서 남편은 노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빚도 생겼다. 어느 날은 손찌검도 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철길로 나가 맞고는 못 산다고 바락바락 대들었다. 남편은 그녀를 때리는 대신 마루를 자신의 주먹으로 내리쳤다. 시어머니는 여편네를 쳐야지 왜 애꿎은 마루를 쳐서 자기 손을 망가뜨리냐고 했다. 그러던 시어머니는 꼭 백 살을 채우고 돌아가셨다. 


노름과 폭력, 시집살이, 가난은 그녀를 사지로 내몰았다. 술에 의존했다. 피를 토할 때까지 마셨다. 병을 얻고, 가게를 처분했다. 그리고 본래 아버지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녀 손에는 단돈 5만 원이 전부였다. 남동생의 도움으로 지금 집을 구해 살기 시작했다. 3년 후 항암치료를 받던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소주병으로 손목을 그었다. 심줄만 손상되었고 그녀는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그녀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딸에게 전화가 왔다. 지붕을 새로 해주겠다는 말이었다. 전화기 너머 딸의 목소리는 밝았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연신 딸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며칠 후 그녀 집을 다시 방문했을 때 천막 대신 가을 하늘을 닮은 파란색 지붕이 올려 있었다. 


몇 장 남지 않은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빙그레 웃던 그녀 모습이 생각난다. 그녀는 나에게 멋있게, 즐겁게, 긍정적으로 살라고 했다. 정작 자신은 예민해서 잘 되지 않는다고, 원래는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아버지 고향에서 텃밭을 돌보며, 간혹 네 잎클로버를 발견하면 황금을 본 사람처럼 웃어대는 그녀다. 나에게 네 잎클로버를 건네며 오늘도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는 그녀에게서 얼핏 소주 냄새가 났다.  


김해자의 『당신을 사랑합니다』(삶이보이는창, 2012년)는 이 시대 민중들의 생애사다. 김해자 시인은 작가의 말에서 말한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이 채 명료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때, 내 밖에서 만난 나는 나를 분명하게 해 주고 확장시켜 주고, 오류는 정정해 준다. 누추하고 비천하고 누구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적막하고, 때로 끝나지 않을 싸움터 같은 세상에서,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중심으로 귀 기울이는 순간 내 아버지가 되고 내 어머니가 되고 내가 된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내세울 것도 없지만 이 육신 하나 고단하게 움직여 밥이 되고 약이 되고 위로가 된 보살 같은 그들의 보이지 않는 힘으로 뜬 모처럼 살아온 내 가벼운 삶이 논바닥에 뿌리내렸는지 모른다.     


그녀는 말하고 나는 듣는다. 나는 그녀처럼 두들겨 맞은 적도, 손목을 그어본 적도 없다. 다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알지 못하는 나, 내가 경험하거나 보았을 타인의 고통을 그저 들어줄 뿐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임을 모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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