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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Dec 07. 2023

차마 뱉어내지 못한 말

글쓰기, 그 미친 희망

기차나 지하철을 타게 되면 종종 마주하는 모습이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이들이 반갑게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말을 섞는 광경 말이다. 흔히 나이 지긋한 중장년들이 그렇다. 어디 사느냐에서 시작해 요즘 정세까지 대화의 끝은 목적지까지 계속된다. 나는 옆에서 혹은 뒤에서 그들의 이야기에 몰래 귀 기울인다. 사실 안 들으려고 해도 듣게 될 수밖에 없다. 


인터뷰어로서의 나는 그 상황이 몹시 신기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쉽게 친해지기는 어려운 사람이다. 내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 사람은 더더욱 되지 못한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친근하게 다가가는 사람도 있고, 몇 마디 말을 꺼내도 좀체 입을 열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가 그랬다. 


그는 유독 수줍음이 많았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묻는 말에만 겨우 대답했다. 원래 부끄러움이 많냐고 했다. 그렇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과는 어떻게 친해졌냐고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성향을 바꿀 수는 없다. 몇 마디 되지 않는 그의 말을 곱씹어 보는 것 이외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는 고향이 없었다. 나도 비슷하다. 서울에서 태어난 나는 서울을 고향이라 하지 않는다. 그저 서울 사람이라고만 한다. 고향은 우리네 정서에서 푸근하고 정감 어린 미지의 시골로 남아 있다. 그에 비해 서울은 바쁘고, 시끄럽고, 복잡한 곳이다. 고향이라고 부르기에는 심정적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의미다. 


그의 부모 고향은 이북이었다. 자신의 자식들에게는 고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살았다. 운영하던 공장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갔다. 아이들은 무사히 잘 적응했다. 작은 아이는 이사를 온 후부터 그냥 원주민 소리를 들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내려왔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귀농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농사를 가르쳐주고, 이런저런 정보도 알려줬다. 그렇게 알게 된 이웃 중 한 분이 내준 땅에 배추를 심어 절임배추로 판매도 했다. 처음 지은 것 치고 괜찮았다. 아예 땅을 임대해 양파, 마늘 등을 심었다. 혹여 상품성이 없고 못 생겼어도 자신이 지은 농사 결과물이니 마음 편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욕심을 버리고 지역의 사람들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 했다. 


땅도 조금 샀다. 한 편에는 고구마를 심었고 남은 땅에는 집을 지었다. 고구마를 심을 때는 품앗이로 했다. 아내와 둘이 하려면 종일 걸려도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각자만의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선배들에게 물어보면서 그도 배워갔다. 일 년에 농사를 지어 버는 돈은 천만 원도 되지 않는다. 그거라도 벌면 많이 버는 축에 속한다. 부지런히 열심히 공부하면서 지금도 농사를 짓는다.  


지역신문 기자를 하면서 귀농귀촌인들을 만났다. 비슷한 고민과 연령대, 연고 없는 시골에서 살아가는 그들과 처지가 비슷했기 때문이었을까. 인터뷰라기보다는 삶의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었다. 귀농할 때는 미혼이었으나 공감대가 맞는 이와 시골에서 만나 결혼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부부가 귀농귀촌할 경우 가장 고려하는 부분은 자녀들의 학교 문제다. 도시에서처럼 과외나 학원, 지나친 학력 위주의 교육방식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정작 시골에 와 보면 열악한 교육환경에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어차피 인생은 선택이다.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고 해서 이를 나무랄 사람은 없다. 


나에게 도시는 불능이었다. 그저 먹고, 마시고, 싸고, 토하는 본능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네온사인이 번화한 곳을 피해 후미진 골목에서 짬뽕 국물을 게워낸다. 남아 있던 가래침까지 퉤 뱉어내고 나서야 이 도시에 대한 저항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시골에 살면서 나는 이제 더 이상 토해내지 않게 되었다. 밤거리도 헤매지 않는다. 도시에 대한 반발은 과거를 덮어버린 현재에 대해 막연하게 느끼는 가벼운 상실감 같은 것이었다.  


인간은 모두 솔직하지 못한 존재는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대로 말하면 상대방이 상처받을까 싶어 종종거리고, 비난받을지 두려워 빙빙 돌려 이야기하거나,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맞는지 몰라 우왕좌왕했던 속마음, 말하고 싶어도 차마 뱉어내지 못한 수많은 말들. 그러니 차라리 솔직하게 필요한 말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단지 그 인터뷰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돌아오는 길, 글쓰기에 대한 막막함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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