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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 Jul 13. 2023

시부모님을 맞이하는 며느리의 마음


 내일부터 2박 3일, 시부모님이 오신다. 시어머니 생신을 맞이하여 큰아들 집에 오시는 거다. 일주일 전부터 남은 날을 꼽으며 시부모님 맞이 준비를 했다. 이불 빨래부터 창틀 먼지 닦기, 냉장고 비우기 등 티도 안나는 집안일은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마음만 분주했다. 살림을 못한다고 흉보시는 부모님은 아니시지만 완벽한 며느리이고 싶은 내 욕심에서다.


 몇 년 전부터 시부모님은 당신의 생신날 우리 집에서 2박 3일을 지내고 가신다. 처음부터 생일을 보내러 우리 집에 오셨던 것은 아니다. 결혼하고 몇 년 동안은 시부모님 생신, 명절, 어버이날에 맞추어 항상 시부모님 댁에 내려갔었다. 4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이긴 하지만 솔직히 나는 내려가는 게 편했다.  음식을 만드는 부엌일은 8할을 어머님이 하셨기에 나는 옆에서 돕다가 설거지만 하면 되었다. 좁은 방에서 아이와 부딪히며 자야 하는 잠자리와 하나뿐인 화장실의 불편함은 기꺼이 참을 수 있었다. 2박 3일 일정이면 6 끼니 정도를 고민해야 하는데 나는 요리에 흥미가 없기에 음식 준비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장거리 이동의 피곤함을 감수하고서라도 필사적으로 시댁에 내려가고자 했다. 오가는 차 안에서 남편과 긴 시간 나누는 대화도 좋았다. 평소에는 몇 시간씩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별로 없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해, 나는 기특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시어머님 생신에 우리가 내려가면 정작 생일 당사자인 시어머니는 쉬지 못하고 힘드실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큰아들 내외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가 반갑겠지만, 시어머님 입장을 생각해 보니 나라도 내 생일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쉬고 싶을 것 같았다. 그래서 주워 담지 못할 말을 내뱉었다.


"어머님, 어머님 생신 때는 저희 집으로 올라오셔요. 오셔서 좀 쉬시다가 가셔요."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평생을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신 시어머님이 같은 여자로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었기에, 며느리지만 딸 노릇 비슷하게 해보고 싶었다. 시어머님은 정말 2박 3일 동안 푹 쉬시다가 가셨다. 얼마나 편히 쉬셨던지, 마지막 날 헤어지면서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친정에서 쉬고 가는 거 같다. 고생했다 며늘아."


시부모님이 떠나시고 남편도 말했다.


"어떻게 진짜 잠자고 먹고 쉬다가만 가냐. 우리 엄마지만 심했어. 고생했다 너 진짜."

 


 하루 세끼를 꼬박 대령하고 식간에는 커피와 과일까지, 2박 3일 동안 얼마나 부엌에 서 있었던지 밤에 남편이 다리를 주물러줘야 잘 수 있었다. 그래도 고맙다 표현하시고 며느리 잘 봤다고 하시는 시부모님과 내 노고를 알아주는 남편이어서 매년 생신마다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매년 시어머님 생신에는 우리 집에서 보내시게 되었다.

 

 나는 시어머님 생신만 그러려고 했던 건데. 어느새 시아버님 생신에도 큰아들 집으로 올라오시게 되었다. '코로나19' 덕분에(?) 친척들과도 만나지 않게 되자 명절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시어머님은 시아버님을 살살 꼬셔서 명절에도 우리 집에 오셨다. 나는 지금도 시댁에 내려가는 더 편할 것만 같은데. 남편은 일이 바쁘니 장거리 운전과 피로 때문에 시부모님이 올라오시는 것이 더 좋다고 했다. 소민이도 마찬가지였다. 4시간 차 안에서 갇혀 있는 것은 너무 힘드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셨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나만 참으면 모두가 행복하구나.


 이제는 '저희 집으로 오세요.'라고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우리 집에 오시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나에게든 큰아들에게든 '너희 집에 가도 되니?'라고 형식적이지만 사려 깊게 물어봐주시는 시어머님은 나를 잘 다룰 줄 아시는 현명하신 분이다.


 예전에는 하루에 세 끼니를 챙겨드시는 시부모님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많았다. 식단을 적어 장을 보고, 시간 날 때마다 반찬을 만드는 등 고생을 사서 했다. 식사하시다가 콩자반이 맛있다며  "며늘아, 이게 네가 한기가? 맛이 있네!" 하시는 아버님의 칭찬을 들었을 때 불 앞에서 콩자반을 졸이느라 힘들었던 기억은 날아가 버렸기에. 하지만 반찬 만들기가 세상에서 제일 귀찮은 나는 반찬가게를 들러 반찬을 사놓고 반찬통에 미리 옮겨 담아놓는 꼼수를 부리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아버님은 "며늘아, 이거 네가 만든기가?"라고 물으셔서 몰래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그래서 또 그 다음번엔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꾸역꾸역 반찬을 만들었다.




 최근 3년 동안은 시댁에 내려간 적이 없었다. 그만큼 우리 집에 예전보다 더 많이 오신 것인데 음식 스트레스만 아니면 더 기쁘게 기꺼이 시부모님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 결단했다. 내려놓자고 말이다. 반찬 만드느라 내 노동과 시간을 쓰지 않도록 무조건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매 끼니 다른 메뉴로 구성해 식탁을 차리려고 애썼던 마음 또한 억눌렀다. 국 하나로 6 끼니 중에 3 끼니 정도는 해결해도 되겠지. 또한 바깥 음식을 사 먹으러 나가도록 남편을 종용했다. 그랬더니 시부모님이 오시기 전 마치 생리 전증후군처럼 예민하고 까칠했던 내가 스스로 느끼기에도 한결 여유가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오늘 아침에도 장을 봤는데, 조금 전에도 식재료가 부족할까 싶어 또 새벽배송으로 주문을 했다. 여전히 시부모님이 오시기 전 분주하기는 하다. 언젠가부터 "며늘아, 이거 네가 만든기가?"라고 묻지 않으시는 시아버님은 며느리의 부족함을 눈치채신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부모님을 기꺼이 맞이하려는 며느리의 마음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으실 것 같다.






2박 3일간 무탈하게 시부모님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거다. 일요일 저녁엔 남편한테 다리 좀 주물러달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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