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단어 이야기 2
오늘도 어김없이 9시가 되면 아이와 집을 나선다.
코로나19로 3개월 만에 학교에 간 지 이제 3주 차에 접어들었지만
계속 등굣길에 함께하는 중이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려면 성인걸음으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으나
도보가 확보되지 않은 시골길을 걷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제주에 온 이후 길 한복판에 떡하니 세워진,
도보 공사안내판을 오며 가며 수없이 봐왔지만 아직 공사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아이들도 매일 몇 번씩 보고 있으니 늘 궁금한 모양이다.
어느 날은 큰 아이가 담당자한테 전화해 보라고 할 정도다. ㅎㅎ
아무튼, 아이 덕분에 등교 전 나는 본연의 모습과 다르게 무지 부지런을 떤다.
아침 먹은 그릇을 빠르게 설거지하고 빨래를 돌리고(2-3일에 한번)
바닥의 먼지를 제거하고 카페에 가져갈 커피와 책, 독서대까지 잽싸게 챙긴다.
최근엔 마스크를 챙기는 것도 참 귀찮지만 빠질 수 없는 루틴이 되었다.
우리는 때때로 같이 걷지만 맞은편에서 차가 쌩쌩 달려오면 재빠르게 한 줄로 바꾼다.
같이 걸을 땐 아이는 안쪽에 나는 바깥쪽에 선다. 엄마의 본능 같은 거랄까.
오늘 아침 대화의 주제는 실내화다.
처음엔 신발장이 있는지 몰라서 실내화주머니를 계속 들고 다녔는데
며칠 전 신발주머니가 이유도 없이 사라지고 난 후 다시 보니 반 앞에 신발장이 있었단다.
그래서 오늘은 거기에 실내화를 놓고 오겠다고 했다.
아이는 뭔가 새로운 발견을 한 것처럼 뿌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묻는다
"근데 엄마! 실내화를 넣은 다음에 밖으로는 어떻게 나와야 하지? 아이다운 질문이다.
"어, 신발장에 실내화 넣은 다음 신발을 들고 맨발로 신발 신는 곳까지 오면 돼.
엄마도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신발주머니 가져가기 싫어서 놓고 왔었는데..
"어 정말, 엄마도 그랬었어?"
"근데, 너처럼 교실이 1층이 아니라 4,5층이었거든. 중간에 신발을 도로 신고 내려오기도 했었어."
이 얘기는 굳이 안 해도 됐었나 싶은 생각이 스치는 찰나,
아이가 으악~~ 소리를 지른다.
"어? 뭔 일이야?!!!"
"엄마~~ 저기 배~~~~~~~~앰~~~~~~~~~!!!!!
"으~~~~~~~~~~~악!!!!!"
아이보다 내가 더 화들짝 놀라서 순간 스퍼트를 내서 지나쳤다.
분명 뱀이었고 금빛이 났고 무지 크고 길었다.(사진이라도 찍어두면 좋았을걸 싶지만 너무 무서웠다)
가슴이 쿵! 소름이 쫘~~ 악~!!
기억의 저편, 고등학교 교실 앞에 내가 서 있다.
학교수업은 마쳤고 실내화 주머니를 가져갈까 말까 고민하는 내가 있다.
실내화를 신발장에 넣고 신발을 듣고 바닥에 발을 내려놓는 순간
으~~~~시멘트 바닥이 너무 싸늘하다.
'아~~ 안 되겠어.' 눈치를 보며 신발을 다시 신고 계단을 2칸씩 막 내려간다.
(그 당시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능력 아닌가 싶다 ㅋㅋ)
5층부터 내려왔으니 이제 한 층 남았다. 계단 코너를 도는 순간..
"야!!! 신발 신고 있는 애, 그래 너, 두리번거리는 애! 너말이야 너!!"
뒤를 돌아본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학생 주임이 여고괴담의 한 장면처럼 다다닥 다가왔다.
가슴이 쿵!
소름이 쫘~~~ 악!!
어떤 날은 무릎을 꿇어 앉히기로 하고 어떤 날은 당구대 같은 몽둥이로 손바닥을 맞았다.
그땐 뭔가 억울했지만 벌써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버렸다.
"엄마, 엄마? 그럼 실내화 주머니는 어떻게 해?"
"응. 그건 책가방에 넣어서 집에 잘 가지고 와.
그리고 복도에서 발 시리다고 신발을 미리 신으면 안 되는 거야.!"
오늘의 나는
다소 오싹한 실내화의 추억. 을 가진 엄마로 아이옆에 서있다.
주말에 있을 강의를 준비하다가 2020년 제주 일년살이하며 적은 글들을 다시 읽어내려간다.
계획대로라면 강의안을 벌써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어디 계획대로 되지 않는 날이 오늘뿐이랴..
아이와의 추억, 제주의 하늘과 바다 그리고 바람느낌
그 때의 여유롭고 평안했던 내 마음이 그리워지는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