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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정 Aug 28. 2022

문자향 서권기

책을 탐미하다

 선인들은 문자향 서권기'(文字香書卷氣)라 하며 책과 문에는 문향과 글 기운이 있다고 보았다. 책은 오감의 대상이다. 어느 때나 곁에 있어 이야기를 나누며  말소리, 물소리, 종소리, 사람들 속내와 저잣거리의 쟁쟁거림을 들을  있다.


책도 가지가지다. 소요음영하게 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사람 뭐야 하며 저자를 시린 눈으로 보게 하는 책이 있다. 깔깔대며 눅눅한 장판 위를 함께 뒹굴어야  격인 책이 있고, 뒷맛이  꿉꿉한 책도 있고, 보자마자 쌩까고 싶은 책도 있다. 처음엔 서로 매력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고 어느날 갑자기 문을 두드리고 가슴으로 다가오는 책이 있는가 하면 염생이처럼 종이를 뜯어 씹어먹고 몸으로 기억하고 싶은 책이 있다. 격동을 경험케 해서, 심히 흔들리며 방향을 찾아가는 내게 푯대가 되어주기도 한다. 때론 생몸살을 앓듯 나를 뒤채하는 책도 있는데 이런 책을 만나면 홍역을 앓던 어느 날처럼 호되게 정신의 감기를 앓곤 한다. 사랑도 그러하겠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좋은 친구를 만나기 어려웠을 거다. 조선에서 책의 출판 주체는 국가였고 부수적으로 사찰과 서원이었다. 중앙의 주자소, 교서관, 지방행정기관이 출판을 전담하여 유교 서적, 역사책, 법전 등을 출판하였다. 국가에서 책을 내면 중앙관청과 지방관청에 보내고 신하들에게도 내렸다. 지방관청은 중앙에서 보내온 책을 바탕으로 방각본을 만들거나 작접 인쇄하여 만들기도 했다. 민간의 출판 기관은 절이었다.


책의 보급을 위해 서점을 설치하는 문제가 중종 조에 제기되고 명종 때까지 논란이 이어지지만 결국은 설치되지 못했다. 지식은 곧 권력이고 지배층의 전유물이던 시대. 이를 유통시켜 아랫것들까지 공유한다는 건 성리학적 질서의 훼손이자 도전이었다. 조선 중기부터 민간의 상업적 인쇄와 서점 출현의 가능성이 싹텄지만, 임진왜란은 서적문화를 한순간에 파괴하면서 서점 출현이 막히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18세기 말 방각본에서 출판사의 흔적이 나타나지만 실제 모습을 보이는 건 19세기 말 연 활자 인쇄 방식을 채택한 민간의 상업적 출판사가 등장한 후였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이르러야 영천서관, 박문서관, 신구 서림, 천산 서림 등이 생겨났다. 지식은 생산되어도 물처럼 흘러 유통되어 땅을 적시지 못했다. 박지원이나 정약용의 저작은 지인들에게 필사본으로 알음알음 알려졌을 뿐 민중에게는 존재조차 전해지지 않았고 지식인 내부에서도 실제 접해본 이는 거의 없었다. 그들의 책이 공간된 것은 1930년대에 와서였다.


 이는 당시 동북아시아에서 조선만의 독특한 현상이었다. 중국은 후한 시대부터 책방이 있어 당, 송으로 이어졌고 송대에는 민간 출판사와 서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쓰가 쇼군으로 에도 막부를 창설한 1603년 이후 민간 출판사와 서점이 대거 늘었다. 이러한 추세는 이어져 (서양 사정)은 1866년 초판 발행 시 15만 부가 인쇄됐다고 한다. 이러한 지식의 유통은 일본이 근대성을 열어가는  지적 토대가 되었다.


일본 도쿄의 간다고서축제. 1960년에 시작된 축제로 60 이어져온 오는 축제다. 간다 진보초의 고서점가와 헌책방은 ‘야스쿠니토리 거리에 있는데  500m 걸쳐 180 개가 넘는 책방이 있고 유수의 출판사와 서점도 즐비하다. 축제는 책의 수난시대라 불리는 요즘에도 성황이다. 해마다 10 마지막 주는 고서 축제의 시간이다. 동경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간다 진보초의 거리를 유랑하고 싶다. 지식이 강물처럼 넘쳐흐르던 도쿠가와 시대를 상상하며 고서를 탐미하고 싶다. 우리 나라에서 유명한 보수동 책방골목도 매년 10월에 책방골목 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다만 코로나로 인해 2020년부터 중단되었다. 요즘은 중고책을 구하려면 청계천 동대문거리  책방을 찾기보다는 온라인서점을  많이 이용하게 되는  같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책이 주는 온기와 향훈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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