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스캔들, 일타강사
드라마 일타 스캔들이 인기다. 주인공 최치열은 대치동 입시에서 상한가를 치는 수학 일타. 1조 원의 남자로 불린다. 현강, 인강, 출판, 부가가치를 합하면 연평균 1조 원의 가치를 만든다고 해서다. 분급으로 따지면 1분에 170만 원이라나. 이 정도면 걸어 다니는 기업이다. 대가 없는 초과노동은 질색이라던 그 까칠한 강사가 특별할 것 없는 반찬가게 사장님과 연애를 한다. 로맨스는 판타지 그 자체다. 그러나 1조 원짜리 강사는 현실이다. 현우진 강민철 조정식 이지영 등 엄청난 재력과 티켓 파워를 지닌 강사들이 존재한다. 한 해 소득세만 100억이 넘는다고 한다.
나는 짬밥이 이래저래 20년을 훌쩍 넘은 자영업자 강사이다. 대학 시절 용돈을 벌어 보겠다고 시작한 게 과외였고, 학원의 조교, 새끼 선생으로 이어졌다. 대학원을 거쳐 대학교 총장실 비서로 일하며 이래저래 7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지만 결국 가르치는 일로 돌아왔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아이들이 나의 생태계였다. 규모가 큰 학원에 있거나 스스로 학원을 경영하기도 했고, 일타는 언감생심이라도 삼타 사타 오타의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잘 나가는 강사가 되지 못했다. 나의 깜냥이 그러지 못했다. 인간은 자기 쪼대로 가는 것이다. 일도 연애도 마찬가지다.
일단 화려한 언변과 외모, 정확한 딕션, 카리스마 등 일타강사의 요건에 한참이나 멀다. 무엇보다 대형 강의가 편하지 않다. 큰 강의실에서 마이크를 차고 수백 명의 아이들과 마주하면 몸에 전기가 통하는 듯 엔돌핀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는 강사도 많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오히려 수업에서 아웃 사이더인 친구들에게 눈길이 간다. 강의의 흐름을 깨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거나 멍 때리거나 강의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 그러다 보니 내 수업의 규모는 항상 단출하다. 눈을 맞춰야 하고, 아이들의 호흡에 내 호흡을 포갤 수 있는 규모. 지금 무엇을 이해하고 무엇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흔들리는 눈빛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규모.
요즘 수능이나 내신에서 국어 난이도가 높아져서 기본기가 잘 갖춰지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졌다. ‘선생님 저 문맹인가요... 제가 깨우친 한글은 도대체 뭐였던가요?’ 질문하는 경우도 많다. 동서양 철학과 논리학은 물론이고 금리, 환율, 무차별곡선 등의 경제학 개념이나 법학적성시험에나 나올 것 같은 법 지식, 유체역학, 역법, DNS 스푸핑, 서브넷 마스크 같은 과학기술 지문이 나오면 아이들은 멀미가 난다. 한글로 된 지문을 읽으면서 도무지 무슨 소리인 줄 모르는 건 아주 자존심이 상한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제대로 풀기란 가당찮은 일이다. 결국 의식의 흐름대로 간다. 그럴듯한 답을 고르는 거다. 십중팔구 유인 선지에 걸려든다. 여기서 내 자리가 생긴다. 그런 아이들에게 글의 맥락과 구조를 파악하는 힘과, 읽고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올바른 답을 찾아가는 논리적 과정을 내면화하도록 연습시키는 것이 나의 일이다. 문해력을 뚫는 일인데 이런 일은 빛나지도 않고 한없이 기다려야 헤서 강사의 능력이 돋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임은 분명하다. 대부분 그 기다림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시절 이중언어의 상황에 놓였거나 외국에서 오래 살아 단어가 문장으로, 문장이 단락으로, 단락이 글로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이 자연스럽지 않은 친구들에게 수월하게 글을 읽도록 하는 것은 내게도 어려운 도전이다.
요즘은 나도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과 인지능력이 예전 같지 않다. 아주 영민한 아이들은 문해력이나 문제풀이능력이 나보다 웃길이다. 어린 시절의 꾸준한 학업과 근성이 뇌신경세포의 가소성을 강화시킨 아이들이다. 머리가 저리 비상할 수 있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황영조 코치가 황영조보다 마라톤을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위로로 삼는다. 청출어람은 선생의 숙명이며 자부심이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뛰면서 그들이 최적의 컨디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그것을 구현해서 돕는 조력자인 것이다. 시행착오를 줄여줄 수 있도록 아이들보다 더 시간과 품을 들여 연구하고 더 많이 공부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대치동의 잘 나가는 강사들은 현강생이 4,5천 명이 넘는다고 한다. 나는 다 합해도 얼마 못 된다. 욕심을 부려서 될 일도 아니고 내 그릇이 감당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일타강사들과 내가 지는 무게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적당히 일하다가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쉬면서 여행도 가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하루 평균 6-8시간 강의를 하고,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은 수업을 위해 공부를 하고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고, 저녁과 주말에 일이 몰리는 특성상 가족과의 따뜻한 저녁도, 즐거운 술자리 모임도 쉬이 허락되지 않는다. 섭식장애와 두통과 목디스크가 친구이다. 세상의 모든 직업인이 다 그러할 것이다. 저마다의 전선에서 전투화를 신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가르치는 일로 흘러 들어왔고, 입시라는 관문을 만나 힘겨워하는 아이들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이 생의 과업이 되어 버렸다. 나를 거쳐 간 아이들이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의 부모가 되는 걸 지켜보면서 그동안에도 나를 늘 선생님으로 부르고 기억해 주는 세월을 살면서 나는 내 일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일이 충분히 자랑스럽다. 1조원의 강사, 일타강사가 아니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