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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플레임 May 04. 2024

최애를 위한 럭드 그리고 공굿?!

오늘 경험한 초딩들의 신세계

"번호표 받으시고 오후 2시에 오세요."

"눼...???"


지금은 오전 10시 50분.

대기번호는 584번.

정작 가게가 여는 시간은 11시.

도대체 다들 몇 시에 와서 번호표를 주고받은 것인가..!!


연휴 첫날 아침의 나는 그 어떤 요구도 다 들어주고야 말겠다는 너그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 연휴 첫날인데 뭐 할까?"

"엄마, 럭드 하러 가도 돼?"

"럭드....가 뭐지?"

"아이브 컴백앨범 럭키드로우가 있다는데 거기 가보고 싶어. 명동이래."

"그래. 뭐 오늘 할 일도 없는데 가보지 뭐. 줄 좀 서면 되는 거지?"


호기롭게 명동으로 갔다.

까짓 거 주차비 좀 내고 튼튼한 다리로 한두 시간 서있으면 되지 않을까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대기번호를 받는 순간 만만치 않은 하루가 될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시간의 명동에는 이미 우리 딸과 같이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로 골목이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미 몇 번 와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소형 돗자리를 펴놓고 앉아있다.

분명 나도 어릴 때 연예인 사진으로 만든 책받침 몇 장 사본 기억이 있다만 이렇게 아이들이 이른 아침부터 아이돌 포토카드에 목매는 모습을 볼 줄은 몰랐다. 여전히 잘 이해도 되지 않는다. 아니 그게 뭐라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구매가 끝난 아이들이 떠나지 않고 있다. 도대체 뭘 하는 걸까.

가만 보니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카드와 다른 아이들이 가지고 온 카드를 서로 교환을 한다.

영리한지고!

포토카드는 골라서 살 수 없고 랜덤 뽑기이니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의 사진만을 살 수가 없다. 그러니 자기가 좋아하는 멤버의 사진만을 가지려면 결국 서로서로 바꿔서 가져가야 하는 수밖에 없다.


"얘들 거 다 공굿이지? 문굿은 없지? 혹시 헷갈리고 그런 거 아니지?"

괜히 걱정이 되어 딸의 귀에 대고 조용히 물어보니 그런 걱정은 말란다. 딱 보면 안다고.

'어이구. 포카 전문가 나셨네.'


여기서 공굿은 공식굿즈. 문굿은 비공식 굿즈로 문방구 굿즈의 줄임말이다.

포카 전문가를 모시고 살려면 이 정도 용어는 엄마로서 알아 두어야 대화가 좀 통한다.


한참을 기다려서 결국 럭드를 한 후 원하는 포토카드 한 장 그리고 나머지는 좋아하지 않는 다른 멤버의 사진 세 장, 총 네 장을 가지고 가게에서 나왔다. 이제는 나의 귀요미 딸도 물물교환 시장에 투입될 때다. 그래 선수는 가라. 나는 뒤에 물러서 있으마.


"최애가 어떻게 되세요?"

"아.. 네 저는...."


아니 뭐야 쟤들.

초딩들끼리 뭐 저렇게 공손한 건지. 거래처 파트너 만나러 온 줄.

하여간 멀찍이 떨어져서 딸이 카드를 바꾸는 걸 구경한다.

그런데 뭐가 좀 이상하다. 분명 딸은 두 장을 줬는데 상대방은 한 장만 준다.


쪼르르 달려가서 물어본다.

"왜 넌 두 장 주고 쟤는 한 장 주는 거야? 쟤가 한 장 먹고 튄 거야?"

"아니야. 내가 받은 게 시세가 더 높아서 이렇게 바꿔야 맞아."


헐.....

얘들 뭐지. 시세라니. 포토 카드도 나름 각자의 가치가 있는 거였어?

원시적인 물물교환이려니 생각했는데 나름 가치를 따지는 시장경제였다.


한참을 서성거리며 포카교환을 하던 딸은 대여섯 장을 바꾸고 나서야 집에 가도 되겠다며 나에게 오케이 사인을 준다. 하루 종일 알 수 없는 포카의 세계에서 헤매던 나는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도 종일 명동 바닥을 헤매던 다리가 후들거리는 건 막을 수가 없다.



"엄마의 최애는 누군지 알아?"

"누구? 원영이? 유진이?"

"아니 우리 귀요미 엄마 딸! 남의 집 딸들도 예쁘지만 엄마는 엄마 딸이 세상에서 젤 예쁘더라고~ 엄마는 너 사진으로 포카 만들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호들갑을 떨 줄 알았는데 의외로 좋아한다.

아직 아이 같은 딸과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데 차 안에서 잠든 아이가 오늘 산 시디를 꼭 껴안고 있다.


순간 머리가 아파온다.

아직 가시지 않은 감기기운이 원인인지 듣지도 않을 시디를 여러 장 산 것이 원인인지 모를 일이다.

오늘 경험한 신세계는 그저 오늘 한 번이 끝이라고 콧물을 훌쩍거리며 다짐해 본다.

엑셀을 밟는 발에 자꾸 힘이 들어간다. 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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