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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선비 Oct 16. 2021

웃어라, 온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영화 <올드보이(2003)>



*영화 <올드보이>의 결말 및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불후의 명작 ‘올드보이’를 다시 감상했다. 몇 번을 봐도 볼 때마다 새로운 감상을 남긴다. 하지만 올드보이는 대단한 명성만큼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영화다. 좋게 본 사람은 한 없이 명작이라고 말하는 반면, 부정적인 사람들은 이 영화를 너무 싫어해서 혐오감까지 내비치곤 한다. 특히 근친을 다루는 소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데, 불편함을 느낀 나머지 영화가 자극적인 소재로 과하게 쾌락주의적이라 비판한다.


 물론 사람마다 감상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다. 예술 작품으로 칭송받고 외국에서 상을 줄줄이 받아와도 내 취향에 맞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올드보이와 박찬욱 감독의 팬으로서 얕은 쾌감만을 추구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변호를 하고 싶다. 오히려 이 작품은 그러한 소재로부터 ‘거리두기’를 통해 본질적인 메시지 전달에만 집중하고 있다.



 

 브레히트 소격효과

 독일의 표현주의 작가 브레히트가 주장한 ‘소격효과’는 독자의 감정이입과 몰입을 의도적으로 방해해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게 만드는 개념이다. 즉, 낯설고 비현실적인 연출로 관객들에게 ‘이것은 현실이 아니야. 그러니까 과몰입하지 마.’라고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올드보이에선 자주 이러한 연출이 눈에 띈다. ‘오대수’의 외로움을 표현하는 개미 장면에서 이를 공감하는 미도의 과거가 얼핏 등장한다. ‘그렇죠. 외로움엔 무조건 개미죠.’라고 말하는 그녀는 무슨 사연인지 눈물범벅인 얼굴로 전철을 타고 있는데, 그녀 옆엔 사람만 한 개미가 앉아 있다. 다소 뜬금없는 해당 장면은 관객들이 이 이야기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일종의 주의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지하철을 타는 거대 개미


 소격효과는 액션 장면에서도 도드라진다. 그 유명한 ‘장도리 씬’은 ‘킹스맨’에서 오마주 될 정도로 임팩트가 컸는데, 무려 3분에 가까운 긴 장면이 원테이크로 이어진다. 까다로운 제작 조건에도 불구하고 해당 씬이 사용된 이유는 리얼함을 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액션 씬은 잘게 나뉜 테이크로 속도감을 더할 때 박진감이 증가한다. 액션을 길게 늘여놓을수록 이질적이고 어설프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감독의 연출 의도라면 어떨까? 애초에 10명이 넘는 깡패들을 일반인인 오대수가 때려눕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비현실에 비현실을 더함으로써, ‘이것은 영화고 허구다.’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유머가 끼어들 틈

 올드보이를 코미디로 분류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올드보에선 생각보다 유머 요소가 섬세하게 다량으로 존재한다. 하나의 예로 만두를 단서로 미도와 중국집을 찾는 장면에선 오대수가 만두를 입에 넣자마자 미도가 ‘여기 맞아요?’하고 묻고, 오대수는 독백으로 ‘아직 씹지도 않았다.’라고 말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이 외에도 자잘한 유머가 너무나도 많은데, 잠언 6장 4절이라는 단서를 통해 이우진이 있는 건물을 찾아내고, 엘리베이터에서 비밀번호만 누르면 되는 장면에서 대수는 6644를 누르고 6과 4를 동시에 누르는 등 허둥지둥 댄다. 그때 이우진과 실장이 나타나 말없이 0604를 누르는데, 필자는 해당 장면에서 죽을 뻔했다. 비극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근엄한 순간에 이런 유머를 넣다니, 감독이 ‘이봐, 부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라며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변화와 성장

 그렇다면 영화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필자는 오대수의 성장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방식은 강압과 폭력일지라도 이우진의 변태 같은 전략에 의해 오대수는 변화했다. 갇혀 있는 동안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고, 본래의 가볍고 민폐적인 캐릭터에서 진중하고 집중력 있는 성격으로 변했다. 자의건 타의건, 드디어 인생의 책임감을 느끼고 ‘왜?’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감독은 또한 오대수를 통해 인간의 이기적인 성향을 꼬집었다. 대수가 우진을 찾아간 마지막 장면에서, 대수는 우진에게 “넌 비겁하게 내 기억을 지우고 단서를 찾게 만들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진은 대수에게 최면만을 걸었을 뿐, 기억을 지우지는 않았다. 우진은 대수에게 “당신은 그냥 잊은 거야. 남의 일이니까.”라고 말한다.

 이는 필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근래의 미투 사건이나 학폭 사건에서, 가해자들은 대부분 자세한 정황과 증거에도 불구하고 모른다고 잡아뗀다.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말 기억이 안 나서 그렇게 말하는 가해자도 분명 있다. 내 기억에 없으니, 그것은 없던 일이다. 그들은 말 그대로 ‘잊은’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크건 작건 상처를 입히고 입으며 살아간다. 내가 받은 피해는 결코 잊는 법이 없지만, 언젠가 나도 모르게 타인에게 죽을 만큼 힘든 상처를 준 적이 있지 않을까? 누군가 그런 일로 날 15년간 가두면 어쩌지? 영화는 관객 스스로의 죄를 자문하게 만든다.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든 물에 가라앉긴 마찬가지예요.



 쓰다 보니 말이 길어졌다. 주절주절 설명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너무 싫다면 필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억지로 어떤 영화가 좋다고 납득시키는 것 또한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본인은 어디에도 갇히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이왕 올드보이를 보기로 마음먹었다면, 이토록 딥한 영화에 지나친 감정이입은 하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함정을 놓아 오대수를 붙잡은 ‘철웅’은 장도리로 대수의 이빨을 뽑는 척하며 겁먹은 그를 조롱하며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지는 거래. 상상하지 말아 봐. X 나게 용감해질 수 있어.”

 그의 말처럼 이 영화가 현실이라는 상상만 하지 않는다면, 우린 용감하게 웃으며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웃어라, 온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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