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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근 Oct 21. 2023

대리기사 사고 소식에 200명의 동료들이 벌인 일

노모모시고 열심히살던 A기사의 사고..코로나에 수입줄었지만 성금줄이어

이 포스팅은 오마이뉴스에서 20년 12월 4일에 기사화되었습니다. 

매거진 정리 작업을 위해 추가하였습니다.  




잠자는 몇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일하는 대리기사가 있었다. 부산경남에 어디 한둘이겠는가마는, 편의상 그를 'A기사'라 하겠다.


사업실패로 인한 자택경매, 월세방, 막대한 빚을 갚기 위한 밤낮 없는 노동, 거기에 병세가 악화돼 하루 몇 시간씩 돌봐야하는 노모까지. A기사는 벼랑 끝 대리기사의 표본이었다.


지난 10월 14일 오후, A기사는 근교에 사는 노모를 돌보러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교차하던 트럭과 그대로 충돌했다. 다행히 의식은 되찾았지만 몸은 여러 군데 수술과 치료가 필요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든 하루 20만 원의 매출을 올려야했고(야간근로가 포함된 장시간 노동임에도 30% 이상 되는 경비와 수수료를 제외하면 순수입은 대폭 줄어든다), 어떤 날은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다른 알바까지 해야만 간신히 지탱이 되던 그의 삶은 그렇게 무너졌다. 그의 돌봄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그의 노모의 삶 역시 눈이 먼 채로 징검다리를 건너듯 위태로워졌다.


'벼랑 끝 대리기사'의 표본 A기사... 하지만 밝았던 그


들어놓은 보험 하나 없으면서도 A기사는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밝게 생활하던 사람이었다. 낮 콜부터 시작해서 아침 출근 콜까지 일하는 덕에 나름의 노하우를 갖게 된 그는 활동하는 대리기사 밴드에서 '오지탈출'에 관한 문의가 올라오면 하나하나 댓글을 달아주고, 콜 타는 노하우도 아낌없이 전수해주었다.


노동조합에서 대리기사들의 사회적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천막농성을 한다는 얘기를 듣자 명절에 부모님 드릴 홍삼과 수중의 돈을 관계자에게 선뜻 내놓았다고도 한다. 2억 빚 있는 놈이 30만원 없다고 뭔 일 있겠느냐, 껄껄 웃으며 말이다.  


부산·울산·경남 대리기사 3800명이 가입돼 있는 한 '대리기사 밴드'에 그의 사고가 알려지자 안타까워하는 동료 기사들의 댓글이 계속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분석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대리기사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수입은 70퍼센트가 줄어들었다. 동료의 사고 소식은 안타깝지만, 그들 역시 코로나 이후 반쯤은 실업자 신세였던 것이다.


사회적 안전장치 없는 대리기사들


대리기사들은 대부분 고용보험에도, 산재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다. 심지어 건강보험조차 가입 안 돼 있는 기사가 13.5퍼센트나 된다는 조사결과도 있었다. 대리업체에 수수료는 꼬박꼬박 내지만, 스스로를 위한 사회적 안전장치는 전혀 마련하지 못한 대리기사들은 A기사를 포함해 부지기수일 것이다. 반면, 사채의 유혹은 그들 삶 깊숙이 침투해있다. 심야시간 그들을 실어 나르는 셔틀버스 정류장 주변에서 급전, 일수 명함을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두 해 전, 부산의 한 대리기사가 반평생을 함께 해온 부인의 암이 재발하자 부인과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야기는 드물게 기사화되기도 했지만,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돼있는 그들의 삶은 가족이 중병에 걸리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등의 악재 한 방에도 무너져 버릴 만큼 그 기초가 약하다.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일수를 찍고 있는 것은 알았는데, 많이 힘든지 어느 날부터 모든 연락을 끊더라고요."


대리기사 밴드에서 오래 활동했고, A기사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던 한 50대 대리기사는 그런 일들은 예전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 같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가다 결국 연락이 두절되고야 마는 그들. 그들은 이제 어디로 흘러가게 되는 걸까. 모두가 코로나로 더욱 어려워진 지금, 누가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대재난상황에 정부조차도 세수부족으로 곤혹을 치르는데.


A기사를 도운 200명의 동료들


▲  A기사가 활동하는 대리기사 밴드의 정모. 코로나 이전의 단란한 한때.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대리기사들이 그 일을 해냈다. 아무도 도울 수 없어 보이던, 동료 A기사를 그들이 합심해서 건져 올린 것이다.


동료 중 하나가 A기사의 계좌번호를 올리며 성금을 보내자고 호소하자 기사들이 호응하기 시작했다. 대리운전 고객에게 받은 팁을 성금으로 내겠다는 기사부터 매일매일 얼마씩을 보내겠다는 기사, 그날 수입 전부를 내놓겠다는 기사 등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돕겠다고 나섰다. 그와는 별개로 일요일에 쉬지 말고 콜을 타서 그 돈을 모아 전달하자는 모금운동도 일어났다.


이틀 뒤 거동도 불편한 A기사가 감사의 글을 대리기사 밴드에 올렸다. 그의 글에는 그의 계좌로 성금을 보낸 156명의 이름들이 길게 리스트를 이루고 있었다. 이 성금은 최소 수백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  A기사가 자판을 두들겨 적은 그의 구원자 리스트


▲  A기사가 올린 감사글


얼마 뒤, 일요일에 쉬지도 않고 그를 위해 콜을 탄 34명의 기사들도 그날의 수입을 모두 모아 그에게 보냈다. 천막농성 중인 노동조합 측에서도 수십 명의 조합원이 하루 날을 잡고 속칭 전투콜을 타서 그에게 성금을 전달했다. 모금 운동에는 다른 대리운전 밴드의 기사들도 조용히 동참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월세도 내지 못해 병든 노모와 함께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릴 뻔한 한 대리기사를 코로나로 수입이 70퍼센트나 떨어졌다는 동료 기사들이 구해낸 것이다. 막막함에 병상에서 홀로 울었을 한 대리기사의 눈물을 그의 동료들이 합심해서 닦아준 것이다. 동료들 덕분에 A기사는 수술을 잘 마치고 회복 중에 있다.


A기사는 12월 2일 밴드에 다시 글을 올려 본연의 자리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한편, A기사 모금운동이 벌어졌던 대리기사 밴드에서는 큰 수술을 앞둔 한 동료기사의 딱한 처지가 알려지자 다시 모금운동이 일어났고, 아직 정상 몸이 아닌 A기사도 어떤식으로든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20만 대리기사 중 산재 가입자 13명... 대리기사 위한 사회 안전망은 언제   


대리운전업이 시작된 지 20년도 넘었지만, 현재 전국 20만 대리기사 중 산재보험 가입자는 13명에 불과하다. 2020년 국정감사에서 제도 개선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고, 정부가 대리기사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고용보험 가입도 추진하고 있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아 보인다.


시민들을 안전 귀가시키는, 우리 사회에 필수적인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을 위한 안전망은 가지지 못한 대리기사들. 코로나까지 덮쳐 더욱 망연자실해있는 그들에게 이제는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 생기기를, 그리고 그것이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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