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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근 Nov 25. 2023

김성수의 만개, 정우성의 포효

살인마들을 위한 서사 따위는 없는 '범죄 액션 스릴러' <서울의 봄>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성수 감독의 최고 역작이 나왔다. <비트>에서 결핍과 방황의 청춘상을 보여줬던 정우성은 26년 후 우리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참군인상을 <서울의 봄>에서 완성했다. 


김성수 감독은 발군의 스타일리스트다. 1990년대 <비트>와 <태양은 없다>에서 불멸의 청춘을 담아냈고, <무사>를 통해서는 피가 튀고 살이 터지는 고려 무사들과 몽고군의 전투를 스펙터클하게 구현했다.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성적을 내다가 입소문을 타고 다운로드 시장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긴 <아수라> 역시 이제는 중견이 된 스타일리스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김성수 감독의 대표작들


영화 <서울의 봄>의 원형은 쿠데타 군이 9시간동안 권력을 찬탈해가는 이야기였다. 김성수 감독은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쿠데타 군을 진압하려던 군인이었고,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은 그렇게 구체화되어 갔다. 

악이 승리하는 나쁜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악과 선이 시종일관 치열하게 맞붙은 영화가 된 것이다.

실제로 영화는 빈틈없는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정통 역사극보다는 스타일리스트 감독이 그동안 다뤄온 범죄, 액션, 스릴러적 요소를 군사 쿠데타에 이물감 없이 녹여낸 팩션이다.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을 비롯한 소수의 참군인들이 범죄집단스러운 쿠데타 세력을 막기 위해 141분 내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무책임하고 무능한 당대의 군수뇌부와 정부 관료들이 12.12의 9시간 동안 어떻게 간교한 쿠데타 세력에 권력을 허망하게 내주는지 짚어주는 교훈점이 있어 어떤 역사 다큐보다 텍스트로 삼을만하다.  

네이버영화 스틸

또한 이 영화의 미덕은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살인마들을 위한 서사 따위는 이 영화 어디에도 없다. 오로지 사익으로 뭉친 악의 집단에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던 참군인들이 주인공이다.

자기 안위에만 몰두하던 정부와 군 고위인사들이 어리석은 판단의 연속으로 쿠데타 세력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긴 시점에도 쿠데타 진압을 위해 얼마 남지 않은 부하들을 이끌고 이순신동상 아래를 지나던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그가 이순신장군을 올려다보던 장면 그리고 쿠데타 군에 계류된 국방장관에 의해 직위해제를 당한 뒤에도 오로지 악의 무리를 향한 일갈을 위해 무수한 총구를 앞에 두고도 바리케이드와 철조망을 타 넘으며 혈혈단신 나아가던 장면은 그래서 더욱 가슴 시리다. 

네이버영화 스틸

군부독재세력들이 복권하고 숭상하고 때론 동일시하던 이순신은 사실 국가와 백성을 한 번도 배반한 적 없는 충의 사신이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사익을 위해 동료와 국민을 학살한 자들은 결코 선으로 둔갑되거나 충의 사신으로 기억될 수 없다. 사죄와 반성 없는 악은 영원히 악일 뿐이다. 


사회정화라는 미명아래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져오며 수많은 억울한 죽음과 피해자를 양산했던 부랑아 부랑인 수용소. 쿠데타 세력이 집권했던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정책적으로 권장까지 했는데 얼마나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어느 정도의 희생자를 냈는지 우리는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악의 세력이 드러나게 저지른 일보다 드러나지 않게 저지른 일이 너무 많다. 

그들에게 영혼을 말살당한 이들은 아직도 폐인으로 살아가고 목숨마저 뺏긴 원혼들은 여전히 한지를 떠도는데 우리는 그 위에 집을 짓고 정신없이 살아가느라 우리 시대 지도자들의 이념이 선을 지향하는지 악을 지향하는지조차 분간하지 않는다.  


"진짜 저랬다고?"

영화관을 빠져나오며 믿기 힘들다는 듯 청춘 커플이 등 뒤에서 내뱉던 탄식이 기억난다. 

'영화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 했던가. 

지난 시대 아직 비추지 못한 어느 한 구석을 비추는 영화가 또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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