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교양 피디, 앞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지향해야 할까
유튜브 <오느른>은 MBC 최별 PD가 서울살이를 접고 김제시 죽산면에 있는 폐가를 구입하면서 시작한 농촌에서의 일상을 콘텐츠로 만들었다. 폐가를 조금씩 살만한 공간으로 바꾸는 영상과 시골 마을에서 보내는 소박한 일상 브이로그를 통해서 성장했고, 현재는 32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채널이 되었다. <오느른> 채널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첫째, 영상 전체를 아우르는 아름다운 풍경과 톤 앤 매너, 둘째, 브이로그로 하나씩 쌓아온 서사. 셋째, 휴머니즘이다.
밝은 톤으로 기분을 좋게 만드는 순수한 영상을 선호하는 시청자는 언제나 존재한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복잡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오느른>과 같은 힐링 콘텐츠의 수요가 더욱 커졌다. <오느른>은 삶에 지쳐있는 사람들을 재충전해준다. 따뜻하고 평온한 시골 풍경은 잠시 생각을 멈추고 휴식을 하도록 해준다. <오느른>에는 풍경이 담기는 롱샷이나 익스트림 롱샷이 많이 쓰인다. 노랗게 물든 논, 초록빛 작물들이 심긴 밭, 형형색색 길가에 핀 꽃들이 담긴 장면을 보고 있으면 죽산면의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게 된다. 풍광이 걸리는 촬영 구도를 주로 사용한다는 것은 <오느른>이 일반적인 개인 유튜버들의 브이로그와 구별되는 연출 방식 중 하나다. 흔히 볼 수 있는 우리나라 농촌 풍경이 카메라 앵글 안에서 더욱 아름답고 특별해진다. 아름다운 시골의 경치를 품는 영상미에는 서사가 따로 필요 없다.
<오느른>은 방송사의 브랜드나 기존 프로그램 형식을 빌리지 않고 브이로그 유튜브로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운영자인 최 PD가 일상 속 경험과 이야기를 풀어놓는 개인 브이로그 유튜브 형식이다. 그녀도 대형 방송사에 속해 있지만, 훨씬 가깝고 친숙하게 느껴진다. 하루하루의 일상과 고민을 담은 이야기를 보여주었고, 2년간 축적된 이야기는 하나의 서사가 되었다. 여유롭고 인심 좋은 마을 공동체, 그 속에 한데 섞인 PD들. 사람들 간의 관계가 도시에서보다 더 친밀함을 보여준다. 브이로그에 출연하는 최 PD 및 스태프들은 죽산면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풍경에 더 큰 애정을 품게 된다. 구독자들은 PD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이 보여준 것 너머의 이야기, 그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팬이 되었다. 지역 소멸이라는 사회 문제 해결을 꿈꾸는 PD들의 삶은 어떤 구독자들도 함께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가 되었고, 팬들이 능동적으로 지지하게 만들기도 했다. 처음부터 MBC 채널에서 이런 콘텐츠를 방송했다면 지금 같은 팬덤이 형성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오느른>의 휴머니즘은 거창한 게 없다. 어느 순간 우리는 그녀가 아버지와 나누는 담소를 보며, 종일 힘겹게 일하고 난 다음 직접 가꾼 재료들로 요리해 먹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이렇게 사소한 일상의 행복을 발견하게 된다. <오느른>은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놓치게 되는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인식하게 한다.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먹고 자고 일하고 그 안에서 자신,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이라는 당연한 이치를 다시 깨닫게 한다.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삶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PD로서 커리어를 이끌었던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개척하는 최 PD의 삶을 보면서 ‘한 편의 청춘드라마 같다’는 댓글이 많다. <오느른>은 청춘을 누리는 세대에게는 자신만의 인생의 가치를 돌아보는 시간을, 이미 지난 청춘을 추억하는 이들에게는 청춘들의 열정을 바라보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선물한다.
이렇게 <오느른>은 제작자의 역량이 감성 브이로그의 형식과 만나 시너지를 발휘했다. <오느른>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외면받고 있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사회에 더 영향력 있는 변화를 만들기 위해 배울 점은 무엇이 있을까. 첫째, 사람 냄새나는 따뜻한 영상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조금 더 시청자들에게 가까이, 같은 눈높이로 다가가 보자. 둘째, 일부 시청자들과 소통하며 그들을 적극적인 팬으로 만드는 게 콘텐츠의 힘이자, 새로운 가치 창출 방식이 될 수 있다. 현재 뉴미디어 생태계는 내로우 캐스팅을 넘어 마이크로 캐스팅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오랜 기간 한 인물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인물의 인지도를 쌓고 그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게 효과적이다. 프로그램의 중심이 되는 인물의 페르소나를 매력적으로 부각하고, 그 인물의 서사를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드는 것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꾸준히 얻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오느른>을 통해 단순히 위안을 받는 시청자들도 많지만, 그 유튜브는 같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실질적으로 지역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시사교양 PD들이 개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여 하나의 분야를 정해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는 것도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나아갈 방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사교양 PD의 역할이 직접 현장에서 변화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이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스트로 변화하는 건 어떨까 생각해봤다.
#언론인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