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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글방 Feb 22. 2022

고립을 사는 사람들

[단비글] '섬'

*'섬'을 주제로 한 작문 중 업로드 날짜가 지나 올리지 못했던 글입니다. 


세계 최대 경매회사인 소더비의 국제 부동산 사이트(Sotheby’s International Realty)에서는 ‘섬(island)’을 판매한다. 북아메리카 카리브 제도의 섬나라 바하마, 미국 뉴욕주의 도시 뉴로셸, 호주의 그레이트 케펠 등에 속한 섬들이 판매 목록에 있다. 금액은 비싼 물건이 8천만 달러, 한화로 9백 억 원 정도다. 가장 저렴한 물건이 한국돈 14억 원 정도로, 서울 강남4구의 아파트 한 채 가격이다. 


재력가들 사이에서 섬 쇼핑이 유행한 지는 오래 됐다. 2015년에 중국의 광주일보는, 2년 새에 중국 ‘수퍼리치’ 사이에서 개인용 섬을 구매하는 유행이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인 수퍼리치들은 ‘도주연맹(島主聯盟)’이라는 ‘섬 소유자 동호회’를 꾸려 섬을 탐방하고 구입한다. 그전에도 이미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 빌 게이츠, 관광 사업으로 유명한 버진 그룹 설립자 리처드 브랜슨 등 세계적인 재력가들 사이에서 섬 쇼핑은 흔한 일이었다. 한국에서도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06년에 전라남도 여수의 모개도를 구입해 화재가 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개인용 섬 시장은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았다. 캐나다의 개인용 섬 판매·대여 업체 ‘프라이빗 아일랜드’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개인용 섬 임대 문의가 폭증했다. 이는 미국 상류층 사이에서 개인용 벙커나 대피소 수요가 증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인 듯하다. 사회적 접촉에서 멀어지기 위해 ‘고립을 구입하는’ 것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상류층의 고립과 사회적 약자들의 고립은 같지 않다. 상류층에게는 고립이 ‘웃돈을 줘서라도 사고싶은 것’인데 반해, 사회적 약자에게는 ‘기를 쓰고 피해야 할 무엇’이 된다. 이들에게 고립은 곧 죽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몇 주, 혹은 몇 달을 사회에서 고립돼 홀로 지내면서도 생계와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자원이 없다. 장기 휴가는 퇴사 이후에나 가능한 비정규직들이나 간병인의 도움 없이는 화장실 가는 것조차 어려운 장애인들은, 감염 위험이 있더라도 사회와 가깝게 지내는 편이 생존에 유리하다. 


이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 ‘액체 현대’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액체 현대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화로 인해 20세기 후반부터 나타난 사회구조적 특징으로, 사회 시스템의 유동성이 강해지면서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 많아지는 형태로 나타난다. 사회 구조가 매순간 한계를 맞닥뜨리는 팬데믹 상황에서 개인의 책임을 중시하는 액체 현대의 특성은 더욱 견고해진다. 재력이 있는 이들은 ‘섬’이라는 자기만의 사회로 도피하고, 그럴 수 없는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액체 현대의 물결에 휩쓸려 사라지지 않도록 고군분투한다. 


바우만은 액체 현대 시대에 ‘우리는 각자 존재하고 나는 홀로 소멸하게 된다’고 말했다. 바우만이 빌 게이츠나 이건희였다면, 이 문장은 달라졌을 것이다. '액체 현대 시대에 우리는 각자 존재하고, 당신들은 홀로 소멸하게 된다'라고.



                                                                                                                                                               by 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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