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신문사에서 학생들을 위해 신문을 무료지원해 준다길래 나는 반 아이들 개수만큼 신문을 신청했다. 처음에는 신문을 같이 펼쳐 읽기도 했다가 점점 시간이 부족해져 집에 가져가서 부모님과 보라고 보냈다. 신문 뒤쪽 오피니언에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꼭 하나씩 읽으라는 말도 당부했다.
집에 갈 때쯤 되면 남자아이들은 신문을 꺼내어 방망이를 만들어 놓기도 해서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일단 일 년 동안 구독하는 것이기에 최선을 다해 나눠주었다. 그렇게 나눠주다 보니 호기심이 생겼다. 내 글이 신문에 실리면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효과가 있지 않을까? 사실 신문을 보기 전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 지방신문에 전화를 했다. 글을 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랬더니 생각보다 쉽게 메일주소를 알려주는 것이다. 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 사진까지 올리며 신문을 싣는다는 게 부담스러워 생각만 하다가 말았다.
그러다 최근 우리 반에 교육감님이 오시는 일이 생겼다. 학교에 교육감님이 오시는데 한 반에 가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6학년이고 부장반이다 보니 우리 반에 교육감님이 오시는 걸로 의견이 모였다. 교육감님은 아이들과 30분 이상 대화를 하신다고 했다. 나는 교육적으로 좋은 취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교실청소가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주말에 학교에 가서 혼자서 쓸고 닦고 식물도 좀 더 갖다 놓고 내 자리 주변도 정리했다. 그러곤 평소에 정리 좀 잘하고 살자, 하는 후회를 살짝 했다.
청소에 몰두하던 찰나, 교육감님이 아이들을 만나는 이야기를 신문기사로 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사실 이런 기회가 잘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급히 신문기사를 하나 썼다. 그리고 교육감님이 다녀간 뒤 신문사에 전화를 걸었고 글을 보냈다.
우리 반에서는 일기 쓰기와 책 읽고 기록하기를 하고 있다. 평소, 글쓰기 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에 조금씩 글 쓰는 습관이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담임인 나부터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난 월요일 신문기사가 나왔다. 기사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내가 최근에 꽂힌 회복적 생활교육과 교육감님 얘기를 엮어 쓴 내용이었다.
회복적 정의와 신뢰서클
여름방학 동안 울산시교육청에서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회복적 생활교육 연수를 받았다. 올해 필자는 학교폭력업무와 6학년을 맡게 되었고 아이들과 잘 소통하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다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연수에 참여하게 되었다. 연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되었고 교직생활하는 동안 더는 미뤄선 안 되는 연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회복적 생활교육이 얼마나 매력 있는 공부인가를 조금씩 깨달아가게 되었으며 내면의 회복의 시간을 가지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회복적 정의란 잘못된 행동이 발생했을 때 그 영향과 피해를 입은 대상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그 피해가 최대한 회복되도록 당사자의 자발적 책임과 피해자와 공동체의 역할을 부여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 회복적 정의를 통해 회복적 공동체를 만들고 학교의 회복적 문화를 만드는 것이 그 궁극 목표이다.
그 회복적 정의 안에 신뢰서클이 있다. 서클은 둥글게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이때 몇 가지 원칙이 있다. 토킹스틱을 가진 사람만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끼어들지 못하며 경청해야 한다. 또 서클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어야 하고 서클에서 나온 이야기는 비밀이 보장되어야 한다. 물론 둥글게 앉지 않고 회복적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서클은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신뢰서클에 흥미를 가지고 학생들과 해보고 있을 즈음, 우리 교실에 교육감이 방문하는 기회가 왔다. 교육감은 학생들의 질문을 듣고 이야기를 잘 나눈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는데 30분 정도 우리 교실에 머물 거라고 했다. 필자는 이때다 싶어 신뢰서클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의자를 둥글게 배치하고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필자는 학생들에게 신뢰서클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이야기하고 신뢰서클 시 유의할 점을 이야기 나누었다. 긴장하고 있던 학생들과 토킹스틱을 돌리며 간단한 서클 활동을 하자, 학생들의 표정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교육감이 교실에 들어오자 학생들은 처음엔 손을 드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이내 ‘옆 학교 옥동초에 아이들이 왜 많이 가는지 궁금하다’는 진지한 이야기부터 ‘교육감은 저녁에 뭐 드세요?’ ‘교육감이 되려면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몇 등 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활발하게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필자는 옆에서 지켜보며 무엇보다 교육감이 학생들의 이야기에 섬세하게 귀를 기울이는 모습과 학생들이 그런 교육감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아이 한 명이 자라기 위해서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어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학생들에게는 좋은 어른이 필요하고 좋은 어른을 만나야 한다. 좋은 어른은 지금 이 글을 쓰는 교사뿐만 아니라 부모님, 그리고 매 순간 학생들 곁에 있는 어른일 것이다. 오늘 학생들은 소중한 순간을 함께 한 어른을 만났고 나 또한 그런 어른으로 추억을 나누는 어른이고 싶다.
이 세상의 모든 위대한 것들은 서클로 이루어져 있다. 하늘은 둥글고 지구도 별들도 공처럼 둥글다고 한다. 엄청난 힘을 지닌 바람도 둥글게 회오리친다. 새들은 둥지를 둥글게 만드는데 어쩌면 그네들과 우리가 같은 신앙을 가졌기 때문이리라. 태양은 뜨고 다시 지기를 원을 그리며 하고 달도 같은 방식으로 원을 그리며 뜨고 진다. 계절의 변화도 순환을 생각하면 거대한 서클이니, 항상 자신이 지나간 곳으로 다시 되돌아온다. 사람의 일생도 결국 아이로 태어나 다시금 어린아이로 돌아오는 서클이니, 생명력이 움트는 모든 곳에는 곧 서클이 있다. -미국 원주민 Oglala Lakota의 위대한 추장. Black Elk, Hehaka, sapa(1863-1950)
필자는 미국 원주민이 남긴 명언을 마음 깊이 새겼다. 그리고 아이들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친구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다른 이의 말을 경청하는 방법을, 나의 이야기가 소중해지는 순간을, 또한 나를 지켜주는 어른들과 함께 하는 방법을. 출처. 경상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