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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토마토 Dec 07. 2024

못 생긴 당근의 맛

   -왠 당근이 이렇게 못 생겼어?

   시댁에 다녀오는 남편의 손에 들린 당근이 든 봉지. 울퉁불퉁 서툴게 생긴 당근들이 봉지안에 가득했다. 내가 아는 길고 매끈한 당근은 하나도 없었다. 이게 뭐지? 이거 먹는건가? 

   남편이 의심많은 나에게 한마디 건넸다. 

   -엄마가 먹어라고 주던데. 

   남편은 늘상 그렇듯 시어머님이 챙겨주는 걸 그냥 받아왔을 뿐이라고 변명아닌 변명을 했다. 나는 우리가 다 먹어내지 못할만큼 넘치는 채소를 시댁에서 가져올 때 남편에게 먹을만큼 조금만 가져와야지, 하고 불만섞인 말을 하곤 했다. 그랬기에 남편은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걸 강조했다. 



 

  못 생긴 당근을 잠시 쳐다보다가 문득 몇달 전 일이 생각났다. 봄이었나, 여름이었나, 시어머님께 당근즙 짜먹는다고 얘기했더니 시어머님은

 -이번에 당근 심어서 너희들한테 줄게.

  그 대화는 아주 짧았고 몇초도 안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몇달 사이 시어머니는 밭에 당근을 기르셔서 손질까지 한 뒤 봉지봉지 싸주셨던 것이다. 나는 그 때 내가 했던 말이 생각나 시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랬더니, 시어머님은

 -밭에 빨간무시(당근) 많으니 언제든 말해라. 챙겨줄게.

  하고 짧고 담백한 답을 하신 뒤 전화를 끊었다. 아들 둘 시어머님의 답은 스무자를 잘 넘기지 않으신다. 


  



  당근을 다시 보니 일흔 중반의 시어머님 손길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느리 말 떨어지자마자 당근을 밭에서 척척 만들어내는 능력! 게다가 그 당근을 하나하나 손질까지 해서 보내셨다. 나는 시어머님의 부지런함의 반의 반도 못 따라가겠다.


  못 생긴 당근이라 외면했다가 그래도 한입 베어물었다. 시중에 나오는 당근처럼 잘 생기진 않아도 입에 한 입 먹으니 무척 달다. 나는 달달한 당근을 오래 씹으며 그 맛을 음미했다. 그리고 당근을 수확하느라 구부린 시어머니의 허리와 호미질하는 주름지고 거친 손을 마음속으로 어루만져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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