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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토마토 Dec 25. 2024

용기모자

-여성시대 라디오 출연의 영광을 준 교단일기

  2021년 초, 코로나가 한참일 때였다. 그날은 추웠고 바람이 불었다. 아이들은 중앙현관에서 발열체크를 했고 마스크를 낀 채 등교를 했다. 나는 그때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고 있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2020년 3월이 아닌 5월 말에야 학교에 왔던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 교사가 된 뒤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나 또한 혼란스럽고 힘들었었다. 학습꾸러미를 만들고 때맞추어 인쇄소에 책을 맡기고 배부하고 원격수업을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일 년 내내 이어졌고 그렇게 정신없이 일 년이 흘러갔다.


  그리고 2021년 1월 그날은 아이들이 오랜만에 등교하는 날이었고 2~3주 만에 아이들을 만난 날이었다. 2~3주 만에 만난 것이었지만 그날 하루 만나고 곧 그다음 주 종업식이었다.

  그날, 그 당시 MC였던 서경석 씨(지금은 MC가 김일중 씨로 바뀌었다.)가 읽어준 교단일기는 이랬다. 누가 내 일기 읽어주는 건 처음이었다. 참 고마웠다.  그리고 사연이 소개된 뒤 생애 처음 양희은, 서경석 씨와 인터뷰도 했고 전국방송도 탔고 선물도 풍성하게 받았다. 아주 신기한 경험이었다.



 

  2021년 0월 0일 날씨: 급식실 갈 때 바람이 많이 불었다.


  한 달 만에 아이들을 만났다. 헤어지기 전 12월 4일, 우리는 운동장에서 신나게 비사 치기를 했다. 아이들은 비사 치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다음에 또 하자고 했는데 그날이 마지막이 되었다. 오늘 아침, 아이들이 하나 둘 교실문을 들어오는데 참 반갑고 고맙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번주 등교는 오늘 하루뿐이라는 걸 모르는 아이들도 많았다. 내일 또 오는 줄 알고 있었다.


  전면원격수업 중이지만 종업식만큼은 서로 얼굴을 보고 헤어지기 위해 학부모님 동의하에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오늘 우리 반 반장은 우리 반의 마지막 번호 27번 000이었다. 1학년이어서 반장을 따로 뽑지 않고 번호대로 돌아가면서 인사를 했다. 반장은 인사를 한 후 미덕카드에서 원하는 카드를 선택해 친구들에게 말해주었다. 00 이는 용기라는 미덕카드를 친구들에게 말해주었다. 마침 '용기모자'라는 그림책을 읽어주려고 했는데 서인이가 용기미덕을 고르니 신기했다. 용기모자는 겁이 많은 주인공에게 할아버지가 신문지로 용기모자를 만들어준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주인공은 용기모자 없이도 용기를 내게 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게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형, 게임, 엄마, 아빠, 고양이. 아이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신나게 말했다. 다음 화상수업 때에는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것을 가지고 나오자고 했다. 그러자 엄마, 아빠가 용기를 준다고 한 아이들 중에 몇 명은 엄마, 아빠가 직장에 가시느라 집에 안 계셔서 화상수업에 못 나온다고 했다. 나는 가족은 바로 옆에 없어도 늘 용기를 주는 존재니까 괜찮다고 해주었다. 물건이나 반려동물이 있는 사람만 보여주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저마다 새 교과서와 여러 가지 짐을 챙겨 돌아가는 뒷모습이 짠했다. 처음 학교에 올 때만 해도 가방이 아이들보다 더 커 보였는데 어느새 자라서 혼자 제법 무거운 가방도 들 줄 알고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 다음 주 월요일이 마지막 만남이다.

  마지막 만남 뒤, 아이들과 나는 1학년 3반 교실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아이들과 만난 시간은 정말 짧지만 우리는 2020년을 함께 이겨낸 기억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나는 항상 00초 1학년 3반 친구들이 지금처럼 씩씩하고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기를 조용히 응원할 것이다.




  나는 라디오 사연을 들은 학부모님께서 학부모님 단톡방에 라디오 내용 녹음한 것을 올렸다는 것, 학부모님들끼리 함께 들으시며 울컥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학부모님, 아이들, 담임인 나까지 다들 너무 고생했던 일 년이었는데 라디오 사연만으로 조금이나마 힘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나는 아이들과 헤어질 때 라디오에 나온 교단일기를 넣은 문집도 나누어주었고 아이들 덕분에 방송 탔다고 학용품 세트도 선물로 주었다. 그렇게 헤어졌고 벌써 삼 년이 지났다.


  아이들은 저마다 각자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그 학교도 떠나와서 아이들을 오며 가며 보는 일도 없다. 하지만 날씨가 추워지니 그때 그 아이들이 보고 싶다. 훌쩍 커버려서 알아보기도 힘들 것이다.

모두들 각자의 용기모자를 마음속에 가지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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