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평론

by 백경

우리 모두 어쩔수가없다


*스포주의*


주인공 만수(이병헌)는 오래 다니던 회사에서 잘린 뒤 재취업 전선에 뛰어든다. 하지만 취업은 쉽지 않다. 제지회사에서 25년 일한 경력을 믿고 같은 업계에 지원하지만 연달아 미끄러진다. 그러다 자신과 같은 처지이면서 동시에 경쟁자인 범모(이성민), 시조(차승원)를 알게된다. 부인 미리(손예진)와 대화하던 중, 만수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치는 아이디어—살인. 경쟁자를 제거하면 자신이 뽑힐 수 있다는 생각. 그렇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자기합리화가 시작된다.


영화는 만수가 경쟁자를 제거해 가는 과정과 그 사이사이에 스며드는 기묘한 요소들을 겹겹이 쌓아 올린다. 나무, 콧수염, 권총, 할아버지, 회사의 자동화·AI 시스템 같은 디테일이 블랙코미디의 톤과 맞물려 불안을 키운다. 특히 “사람이 지나가면 불이 자동으로 꺼지는” AI 소등 장면들은 만수가 간신히 시스템 안으로 들어왔지만 언제든 다시 추락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관객은 웃음과 서늘함 사이에서 진동한다.


만수와 미리는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만수는 미리가 바람을 피우는 건 아닌지, 미리는 만수가 다시 술을 시작했는지 혹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딸은 ‘바이올린 천재’라는 말을 듣지만 가족 중 누구도 그의 연주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표면의 일상은 유리처럼 반짝이나, 그 아래엔 금이 쩍쩍 간다. 박찬욱은 가정의 균열과 생존의 공포를 ‘노노 갈등’(노동자 대 노동자)으로 비틀어, 구조조정과 자동화·알고리즘 채용 시대의 냉혹한 현실—“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떨어뜨려야 하는” 게임—을 집요하게 들이댄다.


그리고 만수는 결국 취직에 성공한다. 첫 출근 날, 그는 비명을 닮은 환호를 지른다. 승리의 환호인가, 파국의 신호인가. 영화는 해피엔딩을 가장하지만, 사실은 상처가 아물 기미조차 없는 비극에 가깝다. 가족의 마음속에 패인 구렁, 시스템 안쪽의 더 깊은 어둠은 그대로 남는다. “정말 어쩔 수가 없었나?”라는 질문이 엔딩 크레딧 뒤에도 질긴 메아리로 남는다.


개인적으로, “박찬욱이면 무조건 극장”이라는 다짐을 지킨 게 잘했다 싶다. 화면의 질감, 리듬, 소품의 상징이 극장에서 훨씬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다만 국내 관객 평은 호불호가 분명해 보인다. 해외 페스티벌과 비평가의 호평과 달리, 한국 대중 반응은 웃음의 온도와 윤리 감각에서 갈린 듯하다. 그 틈이야말로 이 영화가 던지는 진짜 불편함—‘우리 모두, 어쩔 수가 없다’는 핑계의 얼굴—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