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서울, 극장도시의 탄생

서평

by 백경

군부가 설계한 거대한 무대 위에서 88올림픽이 열렸다.

성공적인 공연을 위해 무대에 누구를 올리고, 누구를 배제할지, 그 기준은 군부가 정했다. 공연은 성공으로 끝났지만, 그때 만들어진 기준이 사람들 안에 내면화되어 지금까지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외국인은 곧 관객이고, 연출자는 군부, 배우는 국민들이다.

올림픽이라는 대형 이벤트가 잡히면서, 한국은 외국인 관객에게 “우리가 얼마나 선진화되었는가”를 보여줄 기회를 얻었다. 선진화의 기준은 군부의 시선이고, 군부정권은 관객의 시선에서 보기 부적절한 것들을 무대 밖으로 치우기 시작한다.


도시는 과시적으로 연출된다. 토지 재개발에서 시작해, 한 개인의 행동과 말투까지, 보여지는 모든 것이 동원된다. 이 과정에서 ‘민주’, ‘민중’, ‘민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결국 87년에 직선제를 이루어낸다. 잠시 공연이 삐걱거리는 듯하지만, 88년 올림픽은 결국 성공적인 공연으로 마무리된다.


저자는 이 시기를 가리켜 ‘88년 체제’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체제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를 ‘공연적 생존주의’로 설명한다. 한국 사회에서 K-무엇으로 대표되는 것들은 대부분 이런 공연계약에 기초하고 있으며, 사회를 묶어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하지만 수많은 갈등과 분열 앞에서 ‘공연계약’은 매우 취약하다.

관객의 시선, 세계의 시선에 맞춰 계속해서 공연을 이어가려 할수록, 무대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은 더 늘어난다. 우리는 여전히 공연계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저자는 “공연계약에서 사회계약으로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우리 앞에 진지하게 올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