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몇 번 짧게 이야기했지만, 딱히 글을 내려놓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모든 글을 그냥 내던질 수는 없다.
분명, 좋은 글인데도 불구하고, 또 아직 포기하기엔 이른데도 불구하고 글을 접고 싶은 경우는 생길 거다.
요즘 인터넷 작가들 사이에서 ‘내 글 구려 병’이라고 불리는 증상이다.
굳이 자신이 저 상태에 있음을 인터넷에 올리는 거라면, 그저 위로받고 싶다는 이유로 넘겨짚겠지만, 실제로 저런 증상은 혼자 적을 때도 큰 장애물로 다가온다.
일반적으로 다른 작품을 접한 직후가 심하다.
그렇다면 다들 이유야 눈치챘겠지만, 다른 작품과 자기 작품을 비교하니 생기는 일이다.
솔직하게,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이 아무도 안 보는 비주류 소설들을 읽어보며 비교하는 거라면 신경 쓰지 않겠지만, 대부분 출판, 혹은 계약된 작품들과 비교하고 있다.
비교하여 배우려는 건 좋지만, 거기서 꺾이는 건 도무지 이해해줄 수가 없는 일이다.
그 사람이 가진 게 무엇이었든, 분명 굉장한 걸 지녔기에 출판이나 계약이 된 것일 테다.
예나 지금이나 그냥 글을 쓰는 사람을 데려오지 않는다.
글을 좀 못 쓰더라도 엄청난 아이디어가 있거나, 그 반대의 경우를 데려가기 마련이다.
그렇게 팔리기 시작하는 게 소설인 건데, 내 글이 구려 보인다니. 참 이상한 일이다.
글을 쓴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서 나오는 글보다 현재 기성 작가인 사람이 적는 글이 훨씬 좋은 건 당연한 일 아니한가?
난 8년째 글을 써가며 주요 작품인 성장 소설은 단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심심해서 가끔 적은 웹소설로는 딱 한 번 계약을 따봤다.
나는 출판 소설로 글을 배웠고, 번역체를 일부러 쓰는 엇나간 고집이 있다.
이런 고집을 지니고 계약하는 데 걸린 시간이 무려 8년이라는 것이다.
만약 처음부터 소설을 계획했고 웹소설로 열심히 공부했다고 하더라도, 극단적으로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누구누구는 그냥 쓰니까 잘 되더라’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글을 얼마나 오래 읽었는지도 말해주길 바란다.
글도 많이 안 읽는 사람이 글을 잘 쓰는 건 불가능하다.
읽는 것 또한, 아주 커다란 공부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다. 여기까지 한 소리는 전부 ‘남과 비교하며 생긴 증상’의 이야기다.
이제 혼자 적다가 이런 증상이 나타날 때를 이야기해보자.
우선, 자신이 생각해도 아직 버릴 때가 아니라면 선택지는 두 가지가 있다.
어린 애라도 맞출 수 있다. 그냥 쓰거나, 잠시 멈추거나.
이건 사람마다 다르고, 내 경우에는 작품마다 다르다.
두 경우 모두 효과적인 치료가 될 수 있는데, 결국 글이 쓰기 싫어지는 일은 흐름이 끊겼거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 변심이란 것이다.
무작정 적는 때에는 잃어버린 흐름을 되찾기에도 좋고, 무엇보다 적다 보면 자신이 쓰고 싶었던 내용 따위에 스스로 자극받는 경우가 많다.
정말 그런데도 내 글이 재미없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이 든다면, 메모지를 하나 붙여두길 바란다.
‘재미없던 부분 #N’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그곳에 왜 재미가 없었는지, 자기 관점에서 최대한, 이 부분이 중요한데, ‘최대한 자세하게’ 적어두어라.
그리고 그저 적는다. 그 부분은 내버려 둔 채로 글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잊지는 않는다.
다음 날부터는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는 시간을 가진다.
언제나 머리는 ‘메모지의 편’을 먼저 들어주도록 노력하고, 만약 하나라도 반박하는 것에 성공하면 그날은 다시 그저 쓴다.
그러다가 만약 정말 불가능하다. 그렇게 결론이 도출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때 그만두어도 늦지 않는다.
원래는 퇴고 때에 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후에 말하겠지만 퇴고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면 아예 뜯어고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할 수 없으며 그 부분이 계속 머릿속을 어지럽힐 바에야 그 글을 그만둬라.
그 글을 끝까지 적고 싶다면, 다시는 그런 망상의 늪에 빠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한다.
대개는, 자기 말이 틀린 걸 스스로 증명하며 ‘반박하지 못해도 언젠가 고칠 수 있어.’를 깨닫기 마련이지만, 그렇지 못하겠다면 그 글은 거기서 끝이다.
하지만 착각하지 마라. 이건 내가 말한 ‘글이 손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아니다.
이건 그냥 내가 쓰기 싫어서 안 적는 것이라는 걸 잊지 마라.
글을 내려놓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해서, 그게 습관이 되라는 건 아니다.
우발적인 이식증은 살면서 한 번쯤 겪어보기 마련이지만, 그걸 평생 갖고 가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글을 쉬어가는 건 말 그대로, 글을 쉬는 거다. 얼마나 잡을지는 마음대로 정해도 좋다.
나는 심할 때는 2주씩 쉬기도 하고, 평균적으로는 3일 정도 쉰다.
쉬는 기간, 글을 아예 잊어버리고 다른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내 경우엔 게임과 다른 글을 쓰는 일에 해당했다.
되도록, 그 글은 무조건 잊어둔다,
그리고 돌아와서 그 글이 정말 어땠는지 읽는다. 여전히 구리다면, 조금 더 ‘작가’의 입장보다 ‘독자’의 입장에서 읽히게 된다.
정말로 그렇게 된다. 때로는 평소에는 아예 상상하지 않은 게 떠오르기도 하고, 확실한 개선 방법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 것들을 메모지에 상세히 적어두고 곧바로 다시 작업에 몰두한다.
퇴고 과정에서 그 메모지를 바탕으로 글을 수정해나간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사실, ‘내 글은 우선 최고다.’라는 마인드로 글을 적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쉽진 않다. 다른 이가 칭찬해도, 자신이 비관적이라면 쉽게 달아오지 않는다.
저런 마인드로 글 한 편을 통으로 끝낸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경험일 것이다.
그래도 우선적인 목표로 설정해두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한다.
딱 한 번 저 흐름을 잡아 글을 써본 적이 있는데, 1시간에 1만 자는 우습게 적었었다. 완성품도 그럭저럭 괜찮은 편.
창작은 결국 흐름을 잡는 사람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내가 계획적 글쓰기를 하든, 영감의 글쓰기를 하든, 그것과 관계없이 잘 써지는 순간을 잘 잡는 자가 좋은 글을 쓰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슬럼프다.
이전의 것들이 자괴감에 가까운 감정이라면, 슬럼프는 감정이 바닥난 것에 가깝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무조건 쉬는 방향으로 가다듬기를 추천한다.
나는 엇나간 놈이라 오히려 안 써질 때 무작정 적는 편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절대 좋은 글이 적히지 않는다.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산만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이 될 수 있다.
슬럼프를 어떤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구태여 표현하자면 나는 이 말을 하는 편이다.
영감이란, 마음의 샘물을 이용해서 오선지를 짜내는 과정이다.
여기서 샘물은, 반만 무한인 자원이다.
대가 없이 계속 차오르지만, 너무 많이 써버리는 날에는 바닥을 긁게 될 것이다.
마음이 바닥나면 누구나 힘들다.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어디까지 써도 되는지’ 자신이 직접 알고 있어야 한다.
이른바, 컨디션 관리라는 거다.
우선 쓰라고 내가 매번 말하지만, 목숨 걸고 적으라고는 하지 않았다.
걱정은 무시하되, 지칠 때는 쉬어라.
아직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시기라는 뜻이다.
그리고 쉬는 동안 간단한 구상을 해라.
다른 작품을 짜도 좋고, 막힌 부분이 있다면 그걸 구상해도 좋다.
슬럼프는, 글이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되도록 ‘멈추는 것’은 하지 말자.
명심하자. 슬럼프까진 몸이 보내는 ‘경고’다.
그냥 잘 안 적히네…. 라고 넘어갔다가는 자칫 번아웃으로 번질 수도 있다.
번아웃은 ‘발화’한 거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전에, 자기 몸은 자기가 알아서 관리하자.
섬뜩한 이야기로 마무리 지은 감이 있지만, 여기서 요약하겠다.
남의 글이랑 비교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에서라도, 그런 생각은 하지 말자.
내 글이 돌연 구려 보이고, 글을 쓰기 힘들 정도로 심각하다면 제시해준 방법이나 자신만의 노하우로 호흡을 가다듬자. 결승선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은 원래 지치는 법이다.
슬럼프는 무조건 관리하자. 자신만의 특이한 방법도 좋다. 뭐든 자신을 관리하자.
번아웃은, 절대 안 된다.
번아웃으로 글을 접은 사람을 여럿 봤다.
실제로 나도 반년 정도 글을 내려두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닥 끔찍한 건 아니었다.
그냥 하루 한 편 적었고 좋아하는 글을 자기가 직접 적었다.
그런데도 글을 접을 정도라면, 그건 그냥 자기 관리 대실패다.
오늘이야말로 정말 건필하길 빌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