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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남 Jun 23. 2022

Ep 4. 드디어 프랑스에 떨어졌다

감정의 롤러코스터

살면서 혼자 해외를 가본 적이 없다. 내 나이는 한국 나이로 25살. 누구는 어학연수, 유학으로 일찍이 혼자 해외를 왔다 갔다 하는 게 익숙할 수 있어도 나에겐 이번 프랑스 어학연수는 도전이었다.


모르면 물어보기

싱가포르에 내려 환승하러 갈 때 어느 터미널로 가야 할지 몰랐다. 탑승권에도 어떤 곳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예전의 나였으면 혼자 끙끙 찾아보려 애썼을 텐데 환승시간 1시간 남짓 남았던 터라 혼자 해결하는 건 사치였다. ‘그래, 모르면 물어보자!‘ 사실 누군가에게 묻는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닌데 이상하게 나에겐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내가 너무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 건 아니다. 누군가에게 묻는 게 내가 모른다는 걸 인지하는 일이라 그런 나를 부정하고 싶은 욕구, 그리고 혹여나 상대방이 호의적인 반응이 아니었을 때 느낄 민망함을 애초에 방지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강하게 깔려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은 짓이다. 물론 자신의 귀차니즘으로 다른 사람에게 계속 질문하여 편하게 정보를 얻는 핑프(finger princess)까지 되라는 건 아니지만 내가 급할 때 타인의 도움으로 당장의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시간과 정신적 피로감을 줄일 수 있는 효율적인 행동이다.

그렇게 공항에서 직원에게 여권과 티켓을 보여주며 환승 터미널을 물었고 그 직원은 정말 친절하고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친절한 직원 덕에 자신감을 얻고 무사히 환승 구간에 도착하니 긴장과 피로로 위축되었던 마음이 안정되면서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딱히 재밌는 일도 없었지만 공항에서 느낄 수 있는 설렘? 같은 거였다.


싱가포르에서 실감한 한국의 위상


다시 싱가포르에서 프랑스로 가기 위한 탑승수속을 밟으면서 여권 검사가 시작되었다. 내 앞사람한테 한 직원은 프랑스는 무슨 목적으로 가는지 물어보면서 엄청 까다롭게 검사를 했다. 그래서 속으로 미리 영어 답변을 준비했고 내 차례가 되었다.

“Oh Korea? 안녕하세요~ “

어.. 엇? 방금 전까지 심각하게 검사하던 직원은 내 여권을 보더니 갑자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는 그냥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도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어색하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소심하게 준비한 영어는 마음속에 간직한 채 기분 좋게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제 돌아가기엔 멀리 온


비행기에 타니 내 주변엔 이제 한국인이 아닌 온통 프랑스인들이었다. 멍하니 앉아 그냥 사람들을 관찰하는데 옆 옆자리엔 친구들과 싱가포르 여행을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내 또래의 프랑스인들이 하하호호 웃고 떠들고 있었다.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이건 무슨 감정일까. 묘했다. 공허함에 가까운 멜랑꼴리 한 감정이었다. 이제 이곳은 더 이상 한국이 아니다. 밤이라 감정이 더 짙어진 탓일까. 정말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는 게 실감 나면서 여기엔 아무도 아는 사람도 없고 한국어로 도와줄 사람도 없고 그래서 내 편이 없는 기분이 들었다. 문득 또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내 주위 온통 프랑스 사람들을 보니 ‘잘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또 스멀스멀 올라온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12시간의 비행을 생각하니 한숨이 푹 나왔다.


지옥 같았던 6시간 (세 번째 파도)


처음 경험한 장시간의 비행은 나에게 너무 힘든 시간들이었다. 밤 비행기라 불 꺼진 비행기에서 쪽잠을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6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찝찝한 기분이 들어 다시 잠에서 깨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확 돋았다.


 맞다 20일이면  생리 주기지! 분명 비행기 짐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생리대를 기내용 가방에 넣어야지 생각했는데 완전히 잊고 수화물로 부친 것이다. 온몸이 굳어지면서 머리도 하얘졌다. 승무원한테 도움을 청해볼까 생각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승무원들도 이제 영어와 불어를 쓰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처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어떠한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아는 단어로 장황하게 설명하기도  민망했다. 그래서  자신감이 없어졌다. 화장실에서 휴지로 응급처치  6시간만 버텨보자는 생각이었다. 아랫배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허리도 아팠다. 억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시간 뒤에 눈이 떠졌다. 5시간이 남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무조건 잠을 자야 했다. 다시 눈이 떠지는 순간은 절망  자체였다. 나는 클래식 음악을 틀고 자기 위해 노력했으며  시간, 30 간격으로 잠과 사투를 반복하니 어찌어찌 나는 프랑스에 도착하게 되었다.


갑자기 울컥했다. 감격의 눈물이 아니었다. 몸은 아프고 몽롱하고 초췌해진 나의 상태와 급격히 떨어진 자신감, 온통 주변에 낯선 프랑스인들만 보니 마음속 어딘가 텅 빈 느낌이 강해졌다. 이제 믿고 의지할 건 나뿐. 약해지지 말자고 홀로 되뇌며 정신줄을 간신히 잡고 비행기에서 내렸다. 그래도 한편으론 내가 프랑스에 왔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공항에서 (4번째 파도)

공항에서 느낀 감정은 낯설고 무서움이었다. 지금 글을 쓰며 그때를 회상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워낙 프랑스 가기 전 사람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서 특히 소매치기 썰을 많이 들은 터라 나도 모르게 프랑스에 대한 편견이 매우 많이 부풀려져 있는 상태였다. 공항에서 유심칩을 바꿔 끼는데 옆에 짐을 두지도 못하고 꼭 껴앉고 긴장상태로 유심을 바꾸던 게 생각난다. 옆에 사람만 와도 깜짝 놀라고 수화물도 못 찾아서 이리저리 헤매질 않나 유심칩을 겨우 꼈는데 신호가 터지질 않아 또 가슴이 철렁하고..(결국엔 비행기 모드를 몇 번 껐다 켰다를 반복하니 작동이 되었다) 친구랑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이 제일 많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또 공항은 복잡해서 처음 써보는 우버는 어떻게 불러야 할지 막막해서 급하게 검색을 해 블로그에 누군가가 써놓은 프랑스 여행 루트를 그대로 따라 했다. 우버를 어느 터미널에서 불러야 하는지 사진까지 자세하게 올려놓으신 그분은 정말.. 생명의 은인이다. 그렇게 우버를 부르고 나니 또 미션 하나를 성공한 기분이었고 그 대가로 난 프랑스에 온 설렘을 다시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아침 8시. 내가 부른 우버가 도착하니 공항에 마중 나온 친구처럼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빨리 프랑스를 보고 싶은 기대감에 몸이 살살 간질거렸다. 피로도 순간 싹 잊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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