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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남 Aug 04. 2022

Ep5. 유럽에 처음 온 한국인이 본 프랑스

낭만이란 


공항 밖으로 나와 마주한 첫 프랑스는 시크하게 담배를 물고 큰 개를 끌고 걷는 한 프랑스 여자였다. 그다음 여자 밑으로 바닥 곳곳에 떨어진 담배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이곳저곳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사람들. 무표정. 비단 그 여자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 프랑스에 있구나’


외국 냄새가 물씬 풍겼다. 내가 느낀 프렌치 시크는 남들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아무렴 어때?”라는 마인드에서 나온 당당함과 자유로운 정신이었다. 




나의 실전 프랑스어



우버 안에서 난 그동안 한국에서 배운 프랑스어를 써먹을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난 불어를 쓸 일이 없었다. 학교에서도 딱히 쓸 일이 없었다. 가끔 프랑스 교수님에게 메일 보내는 정도였다. 그래서 언어교환 어플, 프랑스어 회화수업, 스터디로 불어로 말하는 연습을 했다. 한국에 있으면서 프랑스에서 현지인과 불어로 대화하는 상상을 자주 하곤 했다. 고대하던 일이 진짜 현실이 되었고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먼저 말을 걸었다.


« C’est la première fois que je suis en France HAHA J’ai hâte de découvirir à Paris » 

제가 프랑스는 처음이에요! 파리 여행이 기대가 되네요 


아저씨와 몇 마디 하면서 입을 트고 나니 프랑스에 온 게 점점 실감 나기 시작했다. 아저씨의 불어는 너무 빨라 중간중간 알아듣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앞으로 열심히 불어 실력을 키워야겠다는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우리가 흔히 아는 파리의 건축 양식은 오스만 양식



우버를 타고 프랑스 시내 쪽으로 들어오자 내가 알던 프랑스,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서만 보던 익숙한 클래식한 파리의 건축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흔히 우리가 보는 건물들은 19세기 중세시대에 머물러 있던 정리되지 않은 파리의 모습을 나폴레옹 3세와 남작 오스만이 손잡아 싹 갈아엎은 계획도시의 모습이라 한다. 그때의 건물양식이 현재까지 머물러 있는 아름다운 파리의 모습을 실제로 보니 얼떨떨했다. 건물 하나하나 발코니의 장식들까지 섬세한 디테일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내가 예약한 에어비앤비 앞에 도착했다.


크고 무거운 대문 



집은 과거 귀족이 살았는지 크고 웅장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 알려준 대로 대문 앞에서 코드를 눌렀다.

삐이- 소리가 났다. 분명 문이 열렸다는 소리다. 

어라?

근데 문이 열리지가 않았다. 안 그래도 짐도 많고 무거운데 문은 또 왜 열리지가 않는지.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다시 힘을 내어 밀어보았다.

간신히 열렸다. 문제는 캐리어를 들고 들어가기가 버겁도록 몸하나 가 들어가자마자 닫혀버렸다. 문이 이렇게 무거운 것도 나에겐 낯선 일이었다. 



컬처쇼크 엘리베이터 


내가 묶었던 숙소는 오스만 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오래되고 클래식한 건물에 있었다. 대문을 열고 중정을 지나 또 다른 건물로 들어가니 빙글빙글 나선형을 이루는 계단들, 그리고 위로 깔린 빨간 카펫. 그리고 나무로 만들어진 엘리베이터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한두 사람만 들어갈 것 같은 작고 오래된 엘리베이터는 오히려 이질 감 없이 그 건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영화에서만 보던 프랑스 옛 엘리베이터를 직접 탄 소감은 이거 잘 작동하긴 하는 건가 또 탈 때 삐그덕 대는 나무 소리에 약간 불안과 의심을 품었었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을 땐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프랑스>가 생각나면서 그동안 한국에서만 살았던 내가 갑자기 너무 다른 세상에 와 잠깐 비현실 세계에 들어온 묘한 기분도 느꼈다. 


내가 꿈꾸던 파리의 가정집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나는 에어비앤비가 슬로건으로 내민 이 철학이 참 좋다. 내가 추구하는 여행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남았던 여행의 조각들은 현지 감성 잔뜩 낀 골목길, 관광객 전혀 없는 카페, 식당이었다. 그 지역 고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현지인들 사이에서만 풍길 수 있는 문화를 경험할 때 내가 일상에서 더 벗어난 느낌을 준다. 온전히 다른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으로 꿈틀거리는 나의 모험심이 여행을 더 설레게 해 준다. 


그래서 파리 숙소를 정할 때 이 점을 제일 일 순위로 두고 골랐다. 물론 돈이 많지 않은 학생의 신분으로는 가격도 엄청 따졌지만.. 그렇게 며칠을 거르고 걸러 고른 내 숙소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10분 거리 8구에 위치한 영국인 가족의 집이었다. 그리고 2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숙소에 들어가기 위해 열쇠로 문을 여는 것부터 나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했다. 열쇠 꾸러미의 찰랑이는 소리와 뻑뻑하게 들어가는 열쇠에도 나는 신선한 즐거움을 느꼈다. 숙소에 들어서니 검은 고양이가 나를 반겨주었다. 고풍스러운 가구와 몰딩, 약간 삐그덕 거리는 나무 바닥, 오래되어보이는 피아노, 좁은 복도와 방들이 전형적인 프랑스 가정집이었다. 그리고 테라스 창문으로 보이는 또 다른 클래식한 건물까지. 내가 상상하던 파리지앵의 모습을 완벽히 충족시켜주는 집이었다. 25년 한국에서만 살면서 늘 보던 회색 빛의 직사각형 건물들, 늘 비슷비슷한 한국의 집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었다. 벽 이곳저곳 붙여진 가족사진들은 이 집의 온기를 더했다. 낭만 있고 따뜻한 집이었다.



낯설고 신기한 눈빛으로 집을 둘러보고 있자 호스트가 도착했다. 엄마 나이대로 보이는 호스트 아주머니는 환한 미소로 맞이 해주시며 간단히 집 설명을 해주셨다. 다음 날 가족 바캉스를 가기 때문에 4일 동안 내가 이 집에 혼자 지내야 했는데 그동안 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게 내 미션이었다. 내 집처럼 편하게 지내라고 강조하며 장시간 비행에 지친 나에게 따뜻한 차와 마들렌을 대접해주셨다. 



따듯한 차를 몇 모금 마시자 하루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나는 점점 방안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더니 스르륵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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