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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당 Mar 20. 2021

이 사회를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맥거핀과 같은

김영하 작가의 <빛의 제국>

    Kindle에서 영문판으로 읽어서 읽는데 거의 한 달 꼬박 걸린 책.

영문 제목은 [Your Republic is Calling You]인데,

왜 한국 제목을 놔두고 이렇게 바꾸었을까 궁금하다

김영하 작가가 르네 마그리트 후손들한테 작품 저작권료까지 지불하면서 이 책 표지에 ‘빛의 제국’ 그림도 갖다 썼다는데 비하인드가 궁금하다.


   이 책은 단 이틀의 시간을 아주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각 목차들이 시간별로 나눠져 있고 그 속에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이틀 동안 겪는 사건들과 자신의 이야기들이 나열되어 있다. 메인 플롯은 주인공 ‘기영’을 중심으로 흘러가게 된다. 기영은 40대 남성, 작은 독립영화 납품 회사를 다니는, 간첩이다.


김영하는 경계에 선 기영의 입장을 십분 이용해
우리의 욕망이 어떤 방식으로 이 도시에서 작동하는지 엿본다.

그가 곧 북으로 복귀해야 하는 간첩 신분이라는 건
이 사회를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맥거핀’에 가깝다.

    기영이 간첩으로서 한국에 있으면서 해야 하는 것은 평범함을 공부하는 것, 특출 나지도 못나지도 않을 것, 즉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인생의 절반을 한국에서 살았지만, 그는 늘 공허함과 낯섦을 느끼고 절대 그들과 같은 사람으로서 섞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이방인’의 삶은 존재한다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간첩’이라는 독특한 꼬리표를 가지고 있는 기영의 심리에 주목하게 되는데, 사실 그의 꼬리표가 다소 우리가 생각하는 범주에 맞지 않다 뿐이지, 그가 느끼는 이방인으로서의 이질감은 다른 등장인물과 비슷하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우리 역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항상 낯섦과 결핍을 느끼고, 냉혹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이중적인 모습을 가지고 살고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의 마리도, 현미도, 철수도, 저마다의 숨겨진 스토리가 있고 상황 따라 자신의 모습을 다 다르게 내보이는 것처럼, 기영 역시 그저 간첩이라는 하나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김영하 작가는 그런 기영의 모습을 통해 한국 사회를 아주 차갑고 메마른 눈빛으로 묘사한다.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

    하늘은 뭉게구름이 떠 있는 한 낮인데, 아래쪽은 빛이 들지 않아 어둑한 풍경을 보여준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을 서로 조합시킴으로써 현실에선 존재할 수 없는 광경을 나타낸다. 기영이 느끼는 정체성의 아이러니를 정확하게 관통하는 그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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