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는 기본이다. 교과서는 국가 교육의 기본 방향, 아동의 발달단계에 따라 성취기준이 설정되고 이에 따라 교과서 내용이 선정되고 구성된다. 교과서에 따른 참고서, 문제집, 방송 등은 교과서를 기준, 근거로 제작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교과서를 등한시하고 교과서 매개로 만들어진 부교재나 보조 교재에 더 의지하고 있다. 교과서는 국가에서 당연히 지급되고 돈 주고 사지 않아서 등한시하는 것이라고 우스개 소리로 하곤 했는데, 우스개 소리가 아니고 대부분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교과서를 기본으로 공부를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지 않다.
일단 공부의 기본자세를 갖춘 아이들은 선생님, 부모의 지도에 따라 충실하게 잘 익혔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공부에 관심이 없거나 잘못된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물론 선생님의 영향도 있다. 선생님이 교과서를 충분히 연구하지 않고 지나치게 활동, 흥미 위주로 할 경우 아이들이 학습내용을 왜 배우는지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게 된다.
부모님의 영향도 있다. 부모는 아이가 학교에서 배움에 충실하도록 협조하고, 저학년의 경우 과제를 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고 지원해주어야 한다. 가끔 , '공부로먹고 살 게 아니면 안 해도 된다'는 부모들을 볼 수 있는데, 아이가 어떤 길을 가던 민주시민으로서 기본 자질을 갖추기 위해서는 학교에서의 공부는 의무라는 것을 자녀들에게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학교에서의 교과서 중심의 수업을 등한시하게 된다. 나의 경험상 수업시간에 잘 들어 교과서 내용을 이해하고, 기본적인 과제를 충실히 이행하는 아이들은 평가 시 최소 80% 이상은 달성한다.
학력고사 수석, 수능 만점자들은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라고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설마? 하고 '어떻게 교과서만 공부하고 그렇게 시험을 잘 봐?'하고 믿지 않는다.
내가 보기엔 사실인 것 같다. 교사와 부모님의 교육을 통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잘 알고, 교과서로 기본 개념을 이해, 기타 다른 자료들을 통해 공부의 깊이를 더해 갔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물론 학습의 기본인 예습, 복습, 모르는 내용 질문하기, 심화하기 등을 충실히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나는 교사이고 학습에 관심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교과서 공부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고 사교육을 그만두게 두었는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둘째가 어느 날 학원 과제를 하는 데 내용이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당시 둘째가 다니는 학원은 강의로 내용을 먼저 듣고 담당 선생님들이 보충 설명해 주거나 질문을 받는 시스템의 학원이었다. 둘째가 문제를 푸는 데 어렵다고 하여 학원 교재에서 개념 설명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라고 하였다. 그래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교재를 살펴보았다. 나 역시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학원에서 만든 교재라는 것이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요약해 놓았을 뿐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이해하는 게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한데도 나 역시 교과서를 먼저 보지 않고 학원 교재를 먼저 살펴보았던 것이다. 학원 교재가 이해되지 않아 교과서를 살펴보았다. 교과서에서는 그림을 곁들여 개념을 너무 설명을 잘해 놓았다. 교과서의 개념 설명을 보고서는 내가 알고 싶었던 내용이 바로 이해가 되었다.
교과서를 보면서 알게 된 것은 둘째가 교과서를 살펴본 흔적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둘째의 교과서를 처음 보는 것 같다. 난 이때 깨달았다. 그동안 나도 그렇게 교과서를 강조해 놓고서는 정작 나 자신도 교과서를 등한시하고 있었다. 나는 나의 어리석음을 반성하면서 둘째를 다시는 학원에 보내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하였다(이 날의 일로 갑자기 결정한 것은 아니고 생각만 하고 있다가 교과서 사건? 이 결심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조금 늦더라도 둘째가 제대로 공부하는 것을 도와주기로 했다.
둘째는 학원을 여러 번 옮겼다. 그중에서도 그나마 재미를 붙여가고 있었고, 학원선생님도 잘 보살펴 주셨고아이가 학원을 그만둘 때 많이 아쉬워하셨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쉬움 없이 그만두게 하였다. 한편으론 둘째에게 정말 미안했다. 전 학원에서는 친구들 수준을 따라가지 못해 학원 선생님에게 혼나고 늦게까지 이해도 못하는 선행 학습을 한다고 힘들어했던 둘째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 주지 못했다. 늦게나마 둘째를 믿고 둘째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그나마 늦게라도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둘째가 늘 부모인 우리를 믿고 자신이 힘들 때는 언제든지 우리에게 얘기를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공부의 기본은 교과서이다. 교과서의 학습목표, 중심내용을 확인하고 어려운 것은 스스로 찾아보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질문하고 더 고민해 보아야 한다. 중요한 내용을 잊어버리지 않게 반복해서 공부하고, 다음 내용을 잘 이해하기 위해 미리 공부할 내용을 예습한다. 공부한 내용을 잘 익혔는지 문제를 풀어보면서 확인해 본다. 이 패턴이 공부의 기본이자 핵심이고, 지름길이다. 이 과정을 아주 지난하게 익혀가야 하는 게 정석인데, 쉽고 편한 것을 찾으려고 애쓴다. 공부를 40년 가까이하면서 느낀 것인데, 지름길은 없다.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것이 영어 공부를 하면서 이다. 난 영어에 관심이 많아 공부하려고 영어공부방법 책 수십 권, 영어 테이프, 영어 교재, 영어 잡지, 드라마로 공부하기, 테드 듣기, 원서로 공부하기, 암기하기 등 나름대로 무수한 시도를 해보았다. 결과는 실패였다. 교재나 방법을 선택할 때 늘 나의 기준은 얼마나 빠른 시간에 습득할 수 있는가였던 것 같다. 몇십 년간.
지금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하나의 교재만 제대로 익히고, 차근차근 나의 공부를 확장해 나갔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결과론이지만.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해 볼 생각이다. 많이 늦었지만 말이다.
둘째는 중2 첫 중간고사 시험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둘째에게 이야기했다. '노력은 너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설사 배신? 하더라도 실망하지 말라고 했다. 늦더라도 옥심 내지 않고 기본에 충실해서 교과서를 중심으로 개념을 잘 이해하고 차근차근 공부하다 보면 좋을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둘째와 천천히 욕심내지 않고 교과서, 수업 잘 듣기 등의 기본에 충실해서 공부를 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브런치에도 이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