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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후 Sep 08. 2021

코로나 시대, 꿈을 이루기 딱 좋을 때

그렇게 생각의 전환을 배우다

바로 이런 이모티콘처럼 여유롭게 시작하는 아침. 


빽빽대는 알람도 없고, 늦을까봐 조마조마하는 출근길도 없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고요한 그 시간 속에서, 나는 평화롭게 차 한잔을 두고 밝게 비쳐드는 햇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생각했다. 


‘와···. 솔직히 나 백수인 거지, 지금?’


<스크룬하이>를 쓰기 시작한지 3개월이 조금 넘었을 시점이었다. 하루 종일 글쓰기에 몰입하며 나름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진행되는 속도도 너무 느린 것 같았다. 게다가 늘 알 수 없는 답답함에 한숨 쉬는 게 습관이 되었다. 2020년 7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약 5개월만에 4권 분량의 초고를 완성했으니, 열심히 달려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딱 그 중간 지점, 즉 3개월 정도가 되었을 때, 내 인내심에는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집중도 잘 안 되고 뭔가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 속 어딘가가 고장 난 것이 분명했다. 검색해 보니 한국인들의 국민 병이라는 홧병 같았다. (두 손의 새끼 손가락을 마주치고 가슴을 쳤을 때 아프면 홧병이라는 걸 인터넷에서 주워 들었다. 믿을만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맞던, 아니던 간에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았다. 작가로서의 역량에 대한 한탄을 넘어서서, 도대체 무엇이 그리도 내 마음을 답답하고 허하게 만들었는지. 

‘나 이제 알았어. 열심히 일해도 급여가 없다는 건 참 쓸쓸한 일이라는 걸.’


아무리 좋아하는 글쓰기지만, 몇 달간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것은 참 허망한 일이었다. 현실적인 계획이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원래 계획대로 사는 것으로 유명했던 내 인생이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싶기도 했다. 물론 이 일을 시작 했을 때 심리적 고충이 따를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막상 빠져나가기만 하고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통장의 잔고를 보며 갑자기 너무 불안해졌다. 몇 개월 동안은 눈 딱 감고 생활할 만큼을 비축해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줄어드는 숫자를 보니까 내 혈액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스크룬하이>를 위해 몇 개월은 투자하기로 마음 먹고 있었지만, 한번 찾아온 불안함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날은 이런 우울한 짧은 글로 심정을 메모해 두기도 했다. 무슨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패러디라도 하는 것처럼. (뭐야, 이거. 지금 보니까 진짜 슬프잖아….)


<젊은 작가의 슬픔>    

 

글쓰기는 한여름 꿈결

가난함은 한스런 현실

고달픔에 한줄을 쓰고 

굶주림에 한줄을 쓰고     


종이속의 한줄기 글은

마음속의 한줄기 눈물

꿈이라는 한곳을 보며

헤메이는 한량의 인생     


살아있는 한줄기 마음

꺼질세라 한숨도 참고

젊음이란 한때란 말에

발걸음엔 한시름 느네



그때 즈음 나는 이상한 자기 합리화를 하는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내가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을 가지고 ‘남탓’을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코로나가 탓이었다. 만약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그냥 유학 중이었던 나라에 남아, 다니던 직장에 소속되어 살고 있었을 테니까. 그랬다면 이렇게 진지하게 글을 쓸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마찬가지로 이렇게 불안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 뿐인데, 당시는 마치 내가 온 세상 사람들 중 제일 가는 루저라도 된 것처럼 힘들었다. 그나마 그 비참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더 열심히 쓰고, 그리는 것을 선택해서 다행이었다. 하기로 한 일은 끝맺음을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한 성격이라, 아마 도중에 <스크룬하이> 집필을 그만뒀다면 나는 더 깊은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한 달 정도가 더 지나자, 우울한 불안으로 나날을 보내는 것이 너무 지겨워질 때가 찾아왔다. 이제는 익숙한 감정이 되어버린 그 번데기 속에서 나올 때가 된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사람의 마음이 너무 힘들면 살짝 미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마도 내가 조금 그러지 않았나 싶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는 게 내 신념이기에, 살짝 과하게 무리수를 두어서라도 긍정의 파워를 끌어들였다. 

‘코로나 시대? 하하, 꿈을 이루기 딱 좋은 때네! 자, 생각을 해 보자. 코로나 아니었음 내가 이렇게 한국으로 쉽게 돌아올 수 있었겠어? 우리 나라에서, 우리 말을 쓰고, 우리 글로 책을 쓸 생각이나 했겠냐고. 어찌보면 이건 아주 큰 선물이야! 언제나 쓰고 싶어하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절호의 기회잖아! 이제부터 글만 쓰지 말고, <스크룬하이>와 관련된 여러가지를 해 볼 거야! 음악도 만들고, 그림도 그리고, 그래, 옷도 만들어야지! 좋았어. 유학 중에 못했던 거 다 할 거야. 사람이 한 번 살지, 두번 사냐고. 내일 죽더라도 후회없는 인생을 살아야지!’


그렇게 오로지 나를 위한 (혹은 나의 부모님까지 포함하여 우리 가족을 위한) 스크룬하이 티셔츠도 디자인했다. 아무도 모를 것이고, 한 장도 팔리지 않을 것이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쇼핑몰에 등록도 했다. 음악에는 전혀 문외한이었지만 작곡 앱을 서로 비교해 가며 테마 곡들도 만들기 시작했다. 결국 그 모든 활동은 코로나 시대의 방콕 일상을 살아내는 나만의 방법이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내 마음은 불안함을 즐기고, 불확실함을 기대감으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익혀갔다.


 단순하게 만들어본 오버사이즈 티셔츠


(만약 스크룬하이 셔츠랑 포켓을 구경하러 가고 싶다면 눌러 봐도 좋다.)


이 모든 것을 하며 내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기본적인 것이었다. <스크룬하이>를 쓰기 시작했던 초심을 잃지 않는 것. 글쓰기를 원했던 그 간절함과, 내가 이 길을 선택하며 가졌던 믿음을 잊지 않는 것. 처음 그 마음으로, 즐겁고 감사하게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 물론 그런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습관이 되기까지는 꽤 어려웠다. 하지만 그 마음가짐 덕분에, 원래 혼자 잘 놀았던 나는 글쓰기와 더불어 혼자 ‘더’ 잘 노는 사람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내 마음이 점점 생각의 전환에 익숙해 질 때 즈음, 어렸던 보리얀도 어느덧 이렇게 성숙해졌다. 



그렇게 한동안 열심히 글을 써 나가던 중, 기가 허해져서였을까? 어느날 뜻밖의 존재와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그게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니었으나, 분명 우리가 사는 세상에 있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어휴, 다시 생각해 봐도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진다. 어쨌거나 삶은 언제나 놀라운 일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다음 글에서는 그 괴이한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아직까지도 후덜덜하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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