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꺼내는 여정
요즘 '빛을 꺼내는 여정'이라는 워크숍을 한다. 제목부터 추상적이라 참여자들이 그림을 배우는 줄 알았어요, 글을 배우는 줄 알았어요 말한다. 내가 기획한 워크숍은 각자가 원하는 도구를 탐색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꺼내어 표현해 보는 시간이다. 글, 그림, 사진, 오브제 등 무엇으로 표현해도 좋고, 이야기는 모두 다르고, 각자의 속도와 방식은 존중받는다. 여정의 핵심은 완성이 아닌 과정이다. 과정에는 한 가지 도구로 무언가를 완성까지 갈 수도 있고, 매주 다른 도구를 탐색해 볼 수도 있다. 그러면서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워크숍은 단순히 그림이나 글, 사진을 배우는 자리가 아닌, 각자가 자기만의 도구를 통해 나만의 빛을 꺼내보는 여정이다.
나만의 빛을 어떻게 꺼내야 할까?
난 질문의 답을 아이의 놀이에서 찾았다. 어린아이는 감각으로 세상을 탐구한다. 어떤 아이는 촉각이 발달하여 피부에 닿는 미세한 느낌을 느낄 수 있고, 또 다른 아이는 청각이 발달하여 조그마한 소리에도 놀랄 수 있다. 아이만의 감각을 따라가다 보면 자기만의 즐기는 놀이가 보인다.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를 맡는 모든 것이 다 놀이다. 휴지각의 휴지 뽑는 감각이 좋아 계속 뽑는 아이,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이 신기해 계속 만지며 노는 아이, 버튼을 누르면 나오는 소리가 재미있어 계속 누르기를 반복하는 아이. 모두 자기만의 놀이를 한다. 즐기면서 노는 시간, 그 순간이 바로 나만의 빛이다. 누군가에게는 노래가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춤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글을 쓰는 시간이 된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계속하고 싶은 놀이. 그것을 하는 순간이 본래의 나이고 그게 곧 나의 빛이다. 다 큰 어른인 우리도 아이처럼 감각으로 놀다 보면 나만의 놀이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감각을 깨워 나에게 적합한 도구와 주제를 선택해 보자.
1차 감각 : 받아들이기 "나는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지?"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나의 몸을 거쳐 내 안에 들어온다. 지구에서 사람으로 태어나 이상, 내 몸을 거치지 않는 것은 없다. 내 몸이 가지는 1차 감각이 곧 세상을 받아들이는 창구다. 1차 감각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오감과 운동감각, 언어・사고가 있다. 오감은 무엇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는 것을 말한다. 운동감각은 몸을 움직이며 공간과 거리 그리고 균형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언어・사고는 받아들인 감각 정보를 단어, 이미지, 상징으로 바꾸는 기능이다. 즉, 1차 감각은 인간이 세상을 경험하고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기본을 말한다.
시각 (눈) : 빛을 감지하고 형태, 색, 공간을 인식하는 감각
청각 (귀) : 소리의 높낮이, 리듬, 세기, 진동을 감지하는 감각
촉각 (피부) : 압력, 온도, 질감을 느끼는 감각
미각 (혀) : 맛을 느끼는 감각
후각 (코) : 냄새를 인식하는 감각
운동감각 (근육, 관절) : 몸의 위치, 근육 상태를 감지하는 감각
언어・사고 (뇌) : 감각 정보를 해석, 분석하고 언어로 변환하는 기능
우리는 기본적으로 감각들을 분절하여 느끼지 않고, 총체적으로 느낀다. 그럼에도 개인마다 특정 한 감각이 유독 잘 느끼기도 한다. 비 오는 창밖 풍경이 있다고 해보자. 누구는 회색빛 하늘을 보고, 누구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젖은 흙냄새를 맡기도, 차가운 공기를 느끼기도 한다. 어떤 이는 찬 공기로 인해 몸을 움츠리기도 하고, 다른 이는 '비가 내리네' 언어로 바로 인식하기도 한다.
2차 감각 : 해석하기 "나는 색으로 기억하고, 너는 소리로 기억해."
1차 감각이 단순히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를 보고, 귀에 들어오는 소리를 듣는 것이라면, 2차 감각은 보고 들은 것을 해석하는 과정이다. 이때 감정이 연결되고 이것이 반복되면 경험이 형성된다. 아까와 같이 비 오는 창밖 풍경이 있다고 해보자. A는 빗소리의 리듬에 주목하고, B는 창밖의 회색빛에 집중한다. C는 흙냄새를 맡고 옛 기억을 떠올린다. 각 세 명은 몸에 들어오는 순수한 감각에 의미를 붙이면서 A는 청각 지각, B는 시각 지각, C는 후각 지각을 포착한다. 여기에 빗소리가 외로움 같다, 회색빛 풍경이 편안하다, 비 냄새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등 나만의 개인적인 감정이 연결된다. 개인적인 지각과 감정이 연결되어 반복되면 그것은 나만의 경험으로 축적된다. 나는 늘 비가 오는 날에 외로워. 비는 나에게 쉬어가는 신호야. 바로 이 지점이 나만이 가지는 빛이다. A는 비가 오는 날의 외로움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고, B는 비에서 느끼는 쉼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고, C는 어린 시절 기억으로 글을 쓰고 싶을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이는 곧 나만의 주제와 동기가 된다. 나는 무엇을 담으려고 하는가, 나는 왜 그것을 표현하려고 하는가. 두 가지 질문이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결국 2차 감각은 내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 존재인지 드러나는 과정이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지각하는지가 곧 내가 어떤 주제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왜 표현하려고 하는지 보여준다. 이것이 나만의 빛이자, 나만의 놀이다. AI가 모든 것을 앞선다고 해도 나만의 빛-놀이만큼은 결코 대신할 수 없다. 아마도 나만의 놀거리는 미래 시대에 꼭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자,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향일지도 모른다.
3차 감각 : 연결하기 "경험이 나, 타인, 환경과 어떻게 연결될까."
3차 감각은 경험을 맥락 속에 위치시키는 과정이다. 지금 경험은 어제의 기억과 이어지고, 내일의 선택과도 연결된다. 비가 오는 날을 떠올려 보자. 어제의 비를 보는 나는 외로웠지만, 오늘의 나는 고요함을 느낀다. 내일의 나는 비 오는 날에도 괜찮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을지도 모른다. 비가 내리는 같은 사건이라도 연결 속에서 의미가 달라진다. 2차 감각에서 온 경험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3차 감각은 연결의 감각을 가질 때 나라는 서사의 흐름을 보게 된다. 연결은 나로 끝나지 않고, 타인과 환경의 관계까지 확장한다. 비 오는 날의 외로움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외로움 이야기를 나누면, 그것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 다른 사람과 공감할 수 있다. 내가 느낀 이야기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경험은 관계적 의미로 확장된다.
결국 3차 감각은 개인의 경험을 나의 이야기로 정리하고, 동시에 나의 이야기를 타인과 공유하며 관계적 의미로 확장하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공감이 생기고, 나의 빛은 모두의 빛으로 이어진다.
4차 감각 : 창조하기 "경험들을 모아 어떤 통찰과 새로운 의미를 만들 수 있을까.”
4차 감각은 경험을 넘어 관계의 패턴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창조하는 감각이다. 내 경험과 타인의 경험 그리고 사회적 맥락이 서로 엮일 때 우리는 더 큰 그림을 보게 된다. 그림 안에서 반복된 패턴을 읽어내고, 통찰을 얻는다. 나의 경험을 너머 모두가 느낀 외로움은 단절이 아니라, 사실 연결을 갈망하는 마음이었어. 이런 깨달음이 바로 통찰이다. 통찰은 곧 새로운 창조로 이어진다. 비 오는 날의 외로움과 위로를 노래로 만들고, 글을 쓰고, 움직임으로 표현할 때 경험은 단순한 기억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여는 창작물이 된다.
즉, 4차 감각은 통찰을 발견하고, 창조로 이어지는 감각이다. 우리는 경험을 다시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5차 감각 : 존재하기 “나는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5차 감각은 나와 너를 넘어 존재로 살아가는 감각이다. 나는 단지 개인이 아니라, 더 큰 흐름 속에 놓여 있음을 자각한다. 내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경험과도 이어지고, 나아가 생명과 우주 전체와도 연결된다. 비 오는 날 창밖 풍경은 이제 더 이상 나만의 외로움이 아니다. 내가 느낀 외로움, 네가 느낀 외로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외로움은 결국 하나의 파동이다. 비는 개인의 사건이 아니라, 자연 전체와 연결된 공통의 리듬이 된다. 나는 단지 외로운 개인이 아니라, 흐름 속에 놓여 있는 존재의 일부임을 자각한다. 5차 감각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경험을 하나의 큰 맥락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래서 더 이상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존재하느냐' 그 자체가 의미가 되고 빛이 된다.
좀 더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꽃은 '잘 피어야지'라고 애쓰지 않는다. 햇빛을 받으면 피고, 비가 오면 고개를 숙인다. 햇빛과 비를 느끼는 것이 1차 감각이고, 피고 싶은 충동이 2차 감각이다. 꽃은 그냥 햇빛과 바람과 공기를 느끼고 피는 자체로 존재한다. 이것이 5차 감각이며, 피고 지는 자체가 이미 표현이고 창조다. 아이가 블록을 쌓으면서 놀 때 난 이것으로 탑을 완성해야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는 눈앞의 블록이 재미있어서 만지고(1차 감각), 그냥 하고 싶어서 해본다(2차 감각). 놀이의 순간 자체가 이미 충분하고 완전하다(5차 감각). 즉, 5차 감각은 다시 1차 감각의 순수한 느낌과 2차 감각의 하고 싶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만, 다시 돌아갈 때는 의식적으로 '그 자체가 충분하다'는 것을 아는 상태다.
결국, 존재로 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하든 행위가 이미 나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자각이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은 내려놓고, 억지로 꾸미지 않고 나답게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곧 빛이 된다.
한 사람의 창조 과정
1차 감각 - 입력
창밖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2차 감각 - 지각
빗소리가 쓸쓸해. 마치 내 마음 같아. - 감정이 개입되어 외로움이라는 경험으로 각인된다.
3차 감각 - 맥락
비 오는 날의 외로움은 나만이 아니라,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거구나. - 개인적 경험이 공감 가능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4차 감각 - 창조
외로움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을 바라는 마음이구나. - 깨달음을 바탕으로 빗소리를 따라 피아노 곡을 만든다.
5차 감각 - 존재
나는 곡을 만드는 사람이기 전에, 비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 자체가 이미 표현이야. - 곡을 쓰지 않아도 괜찮고, 곡을 써도 괜찮다.
감각을 따라가면, 나의 빛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아이가 노는 것처럼 감각을 따라가다 보면 나만의 놀이를 발견할 수 있다. 놀이가 곧 나의 빛이고, 세상과 이어주는 도구다. 눈앞의 풍경을 느끼고, 하고 싶은 마음을 따르고,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며, 새로운 의미로 창조해 내고, 결국 존재 자체로 살아가는 것. 단순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빛을 발견한다. 빛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결국 빛을 찾는 여정은 나만의 놀거리를 찾는 일이며, 그것은 곧 내가 살아갈 미래의 방향성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