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챌린지 진행 중
누구나 어떤 그릇은 크게 태어난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차곡차곡 큰 그릇을 메꿔주다 보면 어느새 조금씩 담기는 모습이 보인다. 힘들면 중간에 쉬어도 괜찮다. 꽉 채우지 못해도 괜찮다. 내가 당신이 우리가 알고 있으면 된다.
내가 당신을 만나게 된 이유는 나와 다른 세계를 배워보려고 만나게 된 거 아닐까.
그림이 너무 어둡게만 그려지는 것 같아 의식적으로 밝은 그림을 그려봤다. 캐릭터 사람은 정말 어렵다. 많은 노력이 필요.
이성적 선택
이성적 판단
수작업을 잘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재료는 상관없음을 깨닫고 좀 더 마음이 간 디지털 그림을 그렸다. 그림책을 시작한 요즘, 나만의 그림 무기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때와 달리 수작업이든 디지털이든 어떤 것을 해도 다 좋다. 그런데 현재 만들고 있는 이야기를 진행하다 보니 이 이야기에 자꾸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연필과 색연필이 자꾸 그려진다. 고민하다 연필을 다시 잡아봤다. 지나가는 풍경과 사물을 볼 때마다 어떻게 그렸더라고 생각한다. 기본기가 부족하다 느낀다. 다시 처음부터.
자꾸 딴짓하는 생각을 붙잡아 제자리에 앉힌다. 이걸 인지하고부터는 나 정말 딴생각 자주 하는구나 느낀다.
겨울 방학이다!!
조그만 바람에도 흔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살랑이는 바람에 몸을 맡긴다. 근육이 단단해졌음을 느낀다.
그림책을 보다가 정말 좋은 그림이 나오면 내가 한참 들여다본다. "그림이 좋다." 아이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엄마가 더 잘 그려" 이야기해 준다. 예전에 이 말을 들으면 내 안의 검열자가 '믿지 마. 다 거짓말이야. 너 기분 좋아지라고 해주는 말이야.' 같은 말을 했다. 지금은 아이에게서 이런 말을 들으면 "응. 고마워."라고 말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잠을 자기 전 두툼한 이불 안에서 오늘의 이야기를 하며 뒹굴뒹굴 잠이 오기까지 기다린다. 어제는 아이가 "엄마는 그림작가 해. 아니, 엄마는 그림작가야."라고 말했다. 예전에 이런 말을 들으면 또다시 검열자가 말한다. '그림으로 돈도 못 버는데 무슨 그림 작가야. 아니 그전에 그림으로 무엇인가를 한 적이 있어? 그냥 네 그림은 아무것도 아니잖아.' 이런 말을 나에게 한다. 그럼 난 그 말에 수긍하고 난 그림작가가 아니라고 부정했다. 지금은 아이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응. 엄마는 그림작가야."라고 말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매일 사고하고, 그 사고를 바탕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지금은 이런 나를 순수하게 받아들인다. "난 그림으로 무엇을 만들지 못했고, 그림으로 돈도 벌지 못하지만, 난 매일 사고하고 쓰고 그려. 이렇게 행하는 나 자신에게 '그림작가'라는 말을 해도 돼. 누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구나 받아들이면 돼. 누가 아니라고 하면 그 또한 그렇구나 받아들이면 돼. 내가 무엇이 되는 건 내가 결정해. 근데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어. 내가 무엇이 되는 것보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더라고."
아이가 나에게 온 건. 정말 큰 행운이다. 아니, 그보다 더더더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사랑이다. 나의 아이가 나의 아이를 치료해 주고 토닥여준다. 나의 아이로 인해 나의 아이를 조금씩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