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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하는 기이이린 Oct 18. 2021

3년 동안 준비한 공무원을 떨어진 그날의 기억

공무원 준비하는 분들, 공무원 준비하셨던 분들이 읽으면 좋을 이야기.

나는 지난 3월, 3년 동안 도전한 법원직 공무원 시험에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사실 마지막 시험을 끝냈을 때부터 불안한 감이 있었다. 마지막 시간에 치는 형사소송법 문제를 풀면서부터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해에는 형사소송법 문제가 욕 나오게 어렵게 나왔다. 가뜩이나 긴장한 상태의 나는 말을 배배 꼰 지문들을 보고 숨이 턱 막혔다. 말이 이해가 안 돼서 한 두 번 더 읽다 보니 시간은 금방 훅 가버렸다. 잠시 후 못 푼 문제들은 한가득인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확인하자 내 긴장은 더더욱 극도의 상태로 바뀌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남은 문제들을 정말 숨도 못 쉬면서 풀어제꼈지만, 그 와중에도 머리는 점점 새하얘지고 잘 돌아가지를 않았다. 결국 날림으로 남은 문제를 다 풀어버린 나는 멘붕에 빠진 채 시험을 마쳤다.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다짐한 시험이었는데 이렇게 끝나니 아쉬움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법원직 시험은 오후 3시 40분에 시험이 끝난다. 아직도 시험이 끝났을 때의 분위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2월 말, 아직은 서늘한 바람, 탁 트인 하늘, 나뭇잎 하나 없이 앙상한 나무들, 웅성거리며 교문을 나서는 수많은 수험생들, 학원 선생들, 수험생을 기다리는 많은 부모들... 시험을 잘 봤더라면 아름답고 후련한 기분으로 풍경들을 바라볼 수 있었겠지만, 시험이 망한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던 나는 복잡해진 머리와 무거운 가슴을 안고 풍경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나는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은 그야말로 지옥 같았다. 정말 이 날이 오기만을 바랬었는데, 후련한 마음으로 집에 가고 싶었는데, 가슴이 돌로 누른 것처럼 너무나 답답했다. 한숨이 절로 나오고 속이 타들어갔다. 그저 복잡한 머리와 천근만근 무거워진 마음을 안고 무거운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그날따라 이상하게 연락이 오래 끊겼던 형과 친구에게 오랜만이라고 카톡과 전화가 왔다. 도저히 오랜만이라고 웃으면서 인사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모든 연락을 모조리 씹어버렸다. 그러자 가슴은 더 답답해졌다. 1시간 반이 넘게 지나고 집에 도착했을 때에도 가슴이 답답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대충 그냥저냥하게 봤다고 대답한 뒤 밥은 안 먹겠다 하고 방에 쳐박혔다. 내 머릿속에는 최대한 빨리 잠들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다. 가슴이 너무 무거워서 자고 나면 좀 괜찮아질까 싶었다.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싶지도 않았다. 공무원을 3년 동안 준비하면서 남은 친한 사람들도 몇 없었지만, 그  몇 없는 사람들의 연락마저도 모두 무시하고 나는 방 안에 혼자 누워만 있었다. 머릿속은 온갖 행복 회로와 불안감으로 가득 차서 부글거렸다. 넘치는 머릿속을 최대한 억제하며 겨우 새벽에 잠들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도 그 답답한 마음이, 부글거리는 생각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시험을 치르고 발표까지는 약 2주~3주 정도의 텀이 있었다. 시험도 끝난 김에 사람들에게 연락도 하고, 아니면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고, 뭐라도 하면서 널널한 시간을 즐기고 싶었지만 마음이 진정이 안돼서 도저히 즐길 수가 없었다. 불안함으로 마음이 꽉 차 버려서 뭘 해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책을 다시 필 용기도 없었다.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달렸던 시험이기 때문에 더더욱 공부를 더 할 기운이 없었다. 나에게는 3년 동안 공부하면서 친하게 지낸 사람도 일절 없었다. 그래서 시험에 대해 이야기할 상대도 없었다. 내가 결과를 기다리며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가채점을 하고 학원 채점 사이트만 하루 종일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수험생들이 점수 등록했나, 예상 커트라인이 1점 올랐나, 떨어졌나 만 하루 종일 쳐다보며 때로는 희망 회로도 태우고, 때로는 절망에도 빠지며 지냈다. 롤러코스터처럼 감정이 요동쳤다. 버틸 수 없을 거 같으면 최대한 잠을 자려고 노력했다. 그런 시간들이 2주 동안 이어졌다.


2주 넘게 아무것도 안 하고 불안에만 떨며 지냈던 시간들을 버티다 보니 힘도 너무 빠지고 화도 났다. 조금 용기도 생겼다. 될 대로 되라지. 신경 쓰지 않기 위해서 억지로 게임도 받고 유튜브도 틀었었는데 다 20분 이상 집중할 수가 없을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결국 다시 학원 사이트를 켜고 덜덜덜 떨며 새로고침을 시작했다. 이상하게 보고 있으면 보고 싶지가 않은데, 끄면 보고 싶었다. 예상 커트라인이 0.5점이라도 내려갔을까봐. 그 희망 회로 때문에 하루 종일 노트북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머리가 타버릴 때까지.


그리고 발표날이 되었다. 필기 발표는 보통 오후 6시~7시에 났다. 그날은 정말 심장이 터질 거 같이 긴장이 되었다. 시험 날에도 극도로 긴장했었는데, 그것보다 더 긴장되는 것 같았다. 그냥 하루 종일 심장 부여잡고 학원 커트라인 예측 사이트에서 새로고침만 하루 종일 눌러댔다. '제발'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수천 번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밥이고 뭐고 '제발'만 외쳤다. 믿는 신도 없었지만 간절히 기도했다. 마음속에 남아있는 거대한 불안이 현실이 될까봐 너무 무서웠다. 가채점 결과도 예상 커트라인과 1점 정도 차이가 났다. 희망 회로가 미칠 듯이 불탔다. 제발이라고 아무에게나 빌었다. 3년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기를 정말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결국 결과는 2문제 차이로 탈락. 작년에 이어 올해도 1점 차이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힘이 쭉 빠지는 기운은 평생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 불안한 마음이 결국 현실이 되었을 때 닥쳐오는 거대한 절망이란... 남은 1%의 희망 회로가 탁 꺼져버리자 그때부터는 정말 견디기가 힘들었다. 3년간 쏟아부은 시간이 사실 없는 것만 못한 쓰레기 같은 시간들이었다고 생각하니 더 답답했다. 부모님한테는 뭐라고 말하고, 내 인생은 앞으로 어쩌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진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했는데.. 이렇게 끝나다니. 그저 괴로웠다. 온갖 복합적이고 부정적인 감정들이 내 온몸을 타고 흘러갔다.


"그렇게 끝내고 싶었는데...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수도 없이 외치면서 공부했었는데. 한 번뿐인 인생인데 3년이나 썼으면 돌아갈 길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쪽팔려서 누구 만나지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버티다 보면 결국은 빛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슴이 숨쉬기 힘들 만큼 최고조로 답답해졌다. 온갖 괴로움, 미안함, 한심함과 같은 생각들과 감정들이 나를 짓눌렀다. 가장 컸던 것은 자괴감이었다. 솔직히 팽팽 놀다가 시험에 떨어졌으면 이렇게 자괴감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근데 나름 열심히 해보겠다고 했는데, 놀고 싶은 거 꾸역꾸역 참으면서 최소 하루 10시간씩 공부하려고 버텼는데, 그럼에도 시험에 떨어지는 걸 보면 나는 얼마나 빡대가리인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 사람들은 그래도 1~2년 열심히 해서 공무원 하나 둘 합격하던데, 왜 나는 안 되는 것일까? 물론 다른 사람들은 직렬도 다르고 경쟁률도 달랐겠지만... 하지만 임용 시험도 아니고 9급인 법원직 공무원이면 3년 안에는 직렬과 상관없이 결과를 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았다. 긴장 때문에 멘붕 한 것도 결국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과 조건은 똑같았을 뿐이다. 어떤 것도 다 핑계일 뿐이었다. 그냥 나는 빡대가리인 것이다. 나름 열심히 3년을 쏟아부었는데도 안 되는 건 결국 내가 빡대가리인 것밖에 더 되나? 그냥 그런 생각만 계속 들었다. 자괴감이 심하게 들었다. 하루 종일 내 대갈통을 왜 이렇게 딱딱할까를 생각했다. 


결국 그렇게 밥도 거르고 방에 처박혀서 하루 종일 자괴감가 싸우다가 잠들었다. 그때의 기분이 아직도 간간히 느껴진다. 내 3년을 통째로 쓰레기통에 가져다가 처박았다는 것을 느꼈을 때의 그 자괴감이란... 어떤 사람들에게는 별 일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때 당시 나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었기에 그의 실패에 느끼는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결국 자책만 하다가 억지로 잠에 들었던 것이 그날의 마지막 기억이다. 


현재는 그 일이 있은지 6개월도 넘게 지났고, 나는 아예 다른 길로 진로를 틀었다. 글쎄, 사실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아직 취직하지 못했다. 대학교 졸업부터 하기로 생각하고 마치지 못했던 막 학기를 다니고 있다. 다른 진로를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 중이지만 취업난은 코로나로 인해 내가 공무원 시작할 때보다 훨씬 안 좋아졌다. 나는 취업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다시 공무원 공부를 하러 돌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솔직히 돌아갈 자신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나이는 차는데 내가 이뤄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아무것도 안 되면 공무원으로 돌아가야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모르겠다. 그냥 다 모르겠다. 내 미래는 나 자신도 알 수가 없다.


요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매년 늘어가고 있다. 솔직히 문과생들은 다 공무원 준비를 한 번씩은 생각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공무원 준비생들 중 1~2년 내에 합격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솔직히 나보다 오래 공부하는 사람도 꽤나 있고, 그럼에도 합격하지 못하는 사람도 몇몇은 존재한다. 솔직히 내가 공무원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나는 절대 그런 사람들이 안 될 거라고 자신했다. 근데 그렇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참 무서운 세상이다.


앞으로 공무원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감정들, 그리고 공무원을 포기한 후의 내 감정들, 삶,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브런치에 작성해보고자 한다. 내 브런치 글들을 읽으면서 공무원 준비할 때에 내가 했던 멍청한 짓들, 실수들 꼭 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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