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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하는 기이이린 Oct 19. 2021

내가 처음 공무원 준비를 시작했던 이유

공무원 준비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은 글.

3년 전 처음으로 공무원 준비를 시작했을 때, 나는 대학교 3학년 2학기를 막 마친 상태였다. 겨우 인서울 턱걸이에 취업은 드럽게 안된다는 국문과 진학. 3학년 마칠 때까지 내 삶은 그저 전공 공부, 연애, 군대, 알바로 가득 차 있었다. 내 인생에 특별한 포인트는 아무것도 없었다. 끽해야 국토대장정 경험, 인벤 주관 게임 대회 본선 진출 정도? 취직에 대한 불안은 있었지만 어떤 걸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 삶이 이어졌었고,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았기에 더 겁이 났던 삶을 나는 살고 있었다.


취직에 대해 본격적으로 깊게 고민해본 때는 군대를 마치고 3학년 복학을 하면서부터였다. 그때 당시 취업 정보를 얻기 위해 간간히 취업 설명회나 강연회를 듣고는 했다. 그러나 그런 곳에 갈수록, 좋은 기업들이 요구하는 스펙들을 볼 수록, 나는 절망에 빠졌었다. 나에게는 좋은 학벌, 특별한 어떤 경험들, 장점들, 취직을 위해 준비한 노력들도 없었는데, 기업들은 그런 사람들을 요구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당장 하고 싶은 일도 딱히 없는데, 도대체 무엇부터,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하지? 막막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면 할수록 더 미궁에 빠지는 것 같았다.


과거의 내 자신이 참 한심스러웠다. 1학년 때부터 학교 공부만 할게 아니라 미래에 대한 고민도 진득하니 해볼걸. 내성적으로 굴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것들을 도전해보면서 알바 말고 더 새로운 경험들을 쌓아볼걸. 그러나 이미 시간은 지난 지 오래였다. 후회만 남은 늦은 현실을 어찌하겠는가. 그래서 매일 고민했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그때 바로 반짝였던 단어가 바로 '공무원'이라는 단어였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공무원은 나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했었다. 뉴스에서는 매달 높아지는 청년 실업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나는 취직 시장에서 가망이 없어 보였다. 아니, 없어 보인 것이 아니라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공무원을 준비하겠다는 내 의견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들도 하나 둘 공무원 준비를 알아보고 있었다. 인문대 나와서 스펙도 변변찮은데 뭔 취직을 한다고... 요즘 시대에... 소리소리 어지러운 이야기들이 내 귀를 맴돌았다. 뉴스에서 실업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더욱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일말의 의심조차 품지 않았던 것 같다. 아, 한국에서 내가 살아남으려면 결국 공무원밖에 없구나!


가족들도 내 의견을 반겼다. 특히 어머니는 내 결정에 아주 기뻐하셨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나에게 줄기차게 공무원을 권유하셨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틈만 나면 나에게 사회에 대한 겁을 주시곤 했다. 사회가 얼마나 치열한데. 너가 거기서 버틸 수나 있겠어? 기왕이면 쉬운 길로 가는 게 낫지. 공무원이 얼마나 좋은데. 어머니는 공무원이라는 타이틀을 매우 좋아하는 것 같았다. 기꺼이 내 공부를 위해 돈을 지원해주시겠다고도 말하셨다. 우리 집 가정 형편은 당장 내가 돈을 벌어야 할 만큼 위급하지 않았고, 어머니의 말씀에 공무원 공부가 더더욱 끌렸다. 살면서 한 번도 부모님에게 효도라고는 해보지도 못한 삶이었는데, 공무원을 하게 되면 부모님에게도 효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었다. 친척 형은 2년 전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내가 친척 형에게 공무원의 삶에 대해 물어봤을 때, 친척 형은 어깨를 으쓱했었다. 그냥 나쁘지 않아. 뭐 엄청 좋은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힘들지도 않다고 했다. 나름 만족하며 소소하게 살아가기 좋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었다. 많지 않은 월급. 과하지 않은 야근. 소소한 워라밸. 잘릴 일 없음. 무난히 버티는 삶. 이런 것들이 공무원 하면 나오는 키워드들 아니겠는가.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보면 볼수록 공무원은 괜찮은 직업처럼 보였다.


그땐 시험에 덜컥 합격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을까? 글쎄... 그래도 그때까지는 자신이 있었다. 나는 열심히만 하면 뭐든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공무원 쏠림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경쟁률이 매일같이 올라갔지만, 그래도 될 사람은 된다고 생각했다. 군대를 가지 않은 여자 선후배들은 한 두 명씩 일반행정직 공무원에 합격하는 이야기가 들려오곤 했다. 그들의 소식을 듣자 전의가 더욱 불탔다. 그래도 나는 내 스스로가 좀 끈기가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그때는 버틸 자신이 있었다. 수능 한 번 더보는 셈이지 뭐. 라고 생각했었다. 버티기만 하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공무원은 나에게 너무 적합한 직업인 것처럼 여겨졌다. 난 큰 꿈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꼭 하고 싶은 일이 아니면 안 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적당히 즐기면서 살면 그만인 사람이었다. 2년만 딱 죽었다 생각하고 공부만 하면 평생직장 얻고, 직장 얻은 후에는 나머지 시간에 글도 쓰고 게임도 하고 취미 즐기면서 살면 딱 적당한 삶 아닌가?라고 생각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공무원은 나에게 운명인 것 같았다. 이 길이 아니고서 더 좋은 길이 없을 것 같았다. 점점 확신이 생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무원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라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한 번 도전해보지 뭐. 할 수 있어. 강한 자신감이 들었다. 그렇게 공무원이 천직이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공무원 시장에 빠르게 진입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좁고 짧은 생각이었다. 물론 빠르게 붙었으면 정답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떨어진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전공이 별로라서, 문과라서, 학벌이 그리 좋지 못해서, 준비된 것들이 없어서 무턱대고 겁을 내고 공무원 길부터 찾아본 것은 참 짧고 좁은 생각인 것 같다. 공무원으로의 길은 생각보다 더 경쟁이 치열하고, 리스크도 크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은 생각보다 더 많이 필요하다. 물론 직렬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어디든 경쟁은 더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 값어치들은 들이는 노력에 비해 너무 보잘것이 없다. 솔직히 내가 법원직 공무원이 되기 위해 들였던 노력으로 다른 뭐라도 했으면 나름 안정적이거나 보수가 괜찮은 직장에(어쩌면 대기업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공무원이 그런 직장들을 제치고 들어갈 만큼 훌륭한 곳인가? 나는 사실 그 정도로 고평가 받을 직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무원은 단지 사회적으로 그저 적당히 살아가기 위한 직장이지, 신의 직장은 아니다.(물론 떨어져서 정신 승리가 있는 것도 있겠지만ㅎㅎ;) 그런데도 그 노력은 어마어마하게 필요하니, 참 안타깝다는 생각만이 든다. 그 시간을 다른 곳에 쏟았다면...이라는 후회가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맺힌 큰 후회가 되어버렸다.


공무원을 시작할 때에는 누구도 떨어질 일을 예상하고 시작하지 않는다. 그런데 떨어지고 난 뒤에 그 후유증은 생각보다 너무 크다. 공무원 공부는 사회에서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공무원을 등지는 순간 공무원 공부한 시간들은 그냥 열심히 노력해서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는 시간들이다. 내 인생에 텅 빈 시간이 생겨버리는 것이다. 그 리스크는 정말 떨어지고 나면 너무나 크게 느껴진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축적된 그 지식을, 그리고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사회에서는 공무원에 1점 차이로 떨어졌든지, 10점 차이로 떨어졌든지에 관심이 없다. 실패했으면 그냥 실패한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그 실패한 사람이라는 꼬리표는 생각보다 무게가 높다. 노력은 열심히 했는데, 실패하는 순간 한 것만 못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열심히 하지도 않고 PC방만 뺑뺑 도니까 인정 안 해주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공무원 시장에는 90%의 놈팽이와 10%의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90%의 열심히 하는 사람과 10%의 놈팽이가 있을 뿐이다.(내 기준에서는) 그런데 사회적 인식은 어째 90%의 놈팽이와 10%의 공부 잘해서 붙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 같다. 열심히 한 사람이라도 떨어지는 순간 놈팽이 꼬리표가 붙는 것이다. 공무원 공부의 인식 자체가 그렇다. 이것도 정말 큰 리스크다. 


그래서 공무원을 준비하는 분들은 정말 죽을 만큼 해서 빠르게 합격하거나, 아니면 빠르게 포기하는 게 필요하다. 솔직히 1~2년 정도 하고 포기하면 아주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취업시장에서의 시선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 충분히 재기할 수 있다. 그런데 3년 이상이 되는 순간부터 정말 무시무시하게 큰 리스크가 된다. 그때부터는 공무원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어진다. 취업시장 및 사회에서의 시선도 급격하게 나빠진다. 물론 직렬 따라 기간은 충분히 달라진다. 7급 이상, 임용고시 준비면 충분히 몇 년 더 봐줄 수 있다. 하지만 사회의 대부분은 공무원을 직렬로, 급수로 크게 나눠서 봐주지 않는다. 그 해 인원수를 많이 뽑았든 적게 뽑았든, 문제가 변별력이 있었든 없었든 사회는 그런 것들을 봐주지 않는다. 그냥 실패자는 실패자라고만 생각한다.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사회 인식이다.


이 글을 보는데 공무원 준비를 생각하고 있다면 정말 처절하게 했으면 좋겠다. 지독하고 역겨워서 눈물 흘리면서 했으면 좋겠다. 이게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2년간(직렬, 급수 따라 다름. 9급 일반행정직 기준) 안 되면 그냥 미련 남겨두지 말고 뒤돌아서 나가버렸으면 좋겠다. 그렇게 버틸 수 없으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순히 사회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이 두려워서, 해온 것이 없어서 공무원을 시작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나 같은 처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 꼭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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