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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직은 기령 Mar 31. 2022

안녕? 나는 지을쓰 어제까진 이든이었지.

이름이 생긴 아이. 그리고 엄마는 독방이 생겼지.

순간의 감상이란 마치 제철의 과일 같다. 하루 이틀 정도 매끈한 단어들로 후숙 되어 가다가 때를 놓치는 순간 생기를 잃고, 탱글함을 잃고, 제 맛을 잃어 간다. 오랜 시간이 지나 못 먹게 되어도 그 과일이었다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지만, 쪼글거리고 식감을 잃은 과일은 결국 음식물 쓰레기가 된다. 악착같이 감상을 기록하려는 이유.

새벽이 되면서부터는 잠에 들고 싶어서 눈물이 났다. 한 번 눈물이 터지니까 멈출 수가 없었고, 눈물은 이내 비관으로 이어졌다. 나는 아이를 키울 준비가 되기나 한 건가. 남의 집 남편 코골이 때문에 우는 주제에 누가 누굴 책임진다는 건지 겁이 나기 시작했다. 잠을 못 자서 피곤하고 짜증이 나면 울어버리는 깜냥으로 엄마 소리를 들을 자격이나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연신 눈물을 닦으며 불 꺼진 복도 구석을 귀신 마냥 걸어 다녔다. 아침이 밝자마자 간호사에게 가서, 1인실에 오늘도 못 가는 거면 그냥 하루 먼저 퇴원해서 조리원 가겠다고 말하기로 결심했다. 나 안 돌봐줘도 되니까, 여기선 더 못 있겠다고. 이 병원의 설계자는 인구 절벽 비관론자라도 되나, 1인실을 왜 이렇게 조금 만들어서 나의 출산 후기를 망치는 걸까 하는 생각까지 갔을 때, 다시 병원의 아침은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조금씩 부시럭대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오빠를 흔들어 깨워서 병실 옮길 수 있는지 물어보고 오라고 했다. 영문 모르는 오빠가 밤새 울어 퉁퉁 부은 내 눈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후다닥 간호사에게 가서는 10시쯤 1인실로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답을 들고 왔다. 그래 5시간만 참자. 5시간만 지나면 잘 수 있다. 그제서야 나는 이성을 되찾았다. 나는 아침 일곱 시부터 짐을 쌌다. 인간이란 도대체 뭘까. 고작 이틀, 1평 남짓한 병실 부스 안에 우리는 뜰하게도 살림을 차리고 지내고 있었다. 구석구석 정갈하게도 진열해둔 수건이며 옷가지, 물티슈와 텀블러 등등을 챙기며 산다는 건 정말 지리하고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을 먹고서부터는 그냥 침대에 걸터앉아 기다렸다. 간호사가 커튼을 열길래 이제 갈 수 있는 거예요? 하고 눈을 반짝였더니, 아니요 그전에 무통주사 빼드리려고요 하며 웃는다. 한 시간쯤 지나자 왜 그녀가 무통주사를 빼주며 웃었는지 알 수 있었다. 수술 통증은 남의 얘기라고 생각했던 나의 어제와 그제가 너무 미련하게 느껴졌다. 몸에서 주사 줄을 전부 떼서 후련한 것도 잠시, 사람들이 누누이 말하는 제왕절개의 후불 통증에 대해 뼛속까지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잘 안 붓는 체질인 줄로만 알았는데 3일 차가 되자 붓기도 시작되어서 손가락이 육수에 불은 오뎅 꼬치처럼 변했다. 사람들이 이래서 마약을 하는구나, 내가 마약 급의 무통주사를 이틀이나 꽂고 다녔구나 하며 도시락통 마냥 볼품없이 생긴 무통주사 박스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오빠는 내일 나를 조리원에 보내고 집으로 귀가하는 일정이었는데, 고통에 몸부림치는  보고서 그냥 두기엔 마음이 너무 안 좋았는지 목요일까지로 휴가를 연장했다. 불덩이같이 느껴지는 몸을 끌고, 마침내 한 층 위에 있는 1인실로 올라갔다. 아픈 와중에도 1인실은 너무 쾌적했다. 모든 건 상대적이라고 했나. 나에겐 이 1인실이 동남아의 6성급 호텔 같았다. 망고주스만 있으면 여기가 바로 방콕 만다린 오리엔탈이었다. 조금 오래되어 보이는 나무 가구마저 고풍스러운 세월의 흔적처럼 여겨졌다. 환희에 찬 채, 1인실의 하루를 즐기기 위해 가까운 카페에서 소금빵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배달시켰다. 먹으려고 일어나려면 뱃가죽이 꼭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게 느껴지는데도 소금빵은 맛있고 아아는 뼛속까지 아름답도록 시원했다.

쾌적함과 고통에 몸부림치며 침대에 누우려는데 오빠가 고생했다며 꼭 안아줬다. 그런데. 그의 정수리에서 유통기한 지난 조미김 봉지를 열었을 때에나 날 법한 쩐내가 났다. 나는 비로소 탈모인의 두피 상태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머리를 못 감은 건 똑같이 3일째인데 오빠의 두피는 지성인을 인증이라도 하듯 기름을 짜내고 있었다. 빨리 씻고 오라고 닦달을 했더니 오빠는 유난히도 뭉그적대며, 본인은 여기서 인생의 진리를 깨우쳤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못 씻고 있을 때에는(보호자는 다인실 화장실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집에 다녀오지 않는 이상 샤워를 하기 어렵다.) 간절히도 씻고 싶더니, 마음대로 씻을 수 있게 되니까 왠지 씻기가 귀찮다면서, 이런 게 바로 허영심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가지기 어려울 때엔 무리를 해서라도 갖고 싶은 것이, 마음대로 가질 수 있게 되었을 땐 꼭 필요치 않게 느껴진다고. 그래, 쩐내에서 뭐라도 깨우친 바가 있으니 헛되지 않은 유분이었다..

 오빠는 결국 씻으러 들어가고 나는 눈을 좀 붙이다가 이든이를 보러 내려갔다. 고새 이든이는 부기가 좀 빠져있었고, 한쪽 눈만 빼꼼 뜬 채 깊은 눈동자로 우리를 바라봤다. 계속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자서인지 왼쪽 눈만 뜨고 있는 상태였다. 몇 번을 보러 가도 왼쪽 눈만 뜨고 있어 그러려니 했는데, 어머님께 사진을 보냈더니 아가가 한쪽 눈을 왜 못 뜨냐고 신생아실 선생님한테 물어보라고 성화다. 결국 나까지 걱정이 옮아 신생아실 선생님께 콜을 했더니, 너무도 대수롭지 않게 원래 그런다고, 한쪽 눈만 뜨는 애도 있고 나갈 때까지 두 눈 다 안 뜨는 애도 있다면서 다들 자기 뜨고 싶을 때 되면 알아서 뜬다고 한다. 나는 그녀의 대수롭지 않음이 몹시도 부러웠다. 앞으로 아이를 키우며 맞닥뜨릴 수도 없는 의심마다 이렇게 걱정하며 살 수는 없지 않나. 어떻게 하면 조금 느긋해지고 초연해질 수 있을지, 그저 짬바만이 답인가 싶었다. 둘째를 낳은 엄마들은 첫째보다 훨씬 대충, 느긋하게 키우게 된다는데 둘째 계획이 전혀 없는 나는 이든이가 자라는 내내 매 순간마다 처음이고, 매 순간마다 절절 매고, 매 순간마다 허둥대는 모습으로 보여지면 어쩌지. 끝도 없는 고민들.

 그리고 이든이에게는 이름이 생겼다. 신 지을. 智乙. 지혜롭고 새처럼 높이 날기를.

아이를 낳기 전, 오빠와 아이 이름을 상의하다가, 내가 읊는 이름마다 퇴짜를 놓는 오빠에게 “아이는 내가 낳는데 왜 오빠가 감 놔라 배 놔라 해?”라고 물었더니 오빠가 본인의 지분도 반이 있다며 대뜸 반박했다. 그 말에 대꾸할 말을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태아의 개월 수를 셀 때 남편의 정자와 나의 난자가 만난 날 말고, 나의 마지막 생리일로부터 센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말인즉슨 아이는 나로부터, 온전히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거 아닐까? 이런 파워풀한 반론을 남편에게 굳이 펼치진 않았다. 그냥 인지상정으로다가 남편의 의견도 수용하여 이름의 가운데 자에 ‘지’ 자가 들어가면 예쁠 것 같다는 합의를 이뤘다. 그리고는 며칠 뒤 정윤이와 밥을 먹다가, 정윤이가 본인 선배 중에 지을이라는 이름이 있었는데 참 특이하고 예뻤다며 추천해준 이름이었다. 지안, 지원, 지율 등 수많았던 이름 후보를 제치고 지을이라는 이름에 마음이 꼭 사로잡혀, 아빠에게 ‘지을’에 맞는 한자를 맞춰봐 달라고 했다. 그리고서 대망의 오늘, 아빠가 카톡으로 파일을 하나 보내왔다. 엄청나게 각 잡힌 문서 양식으로, ‘지을’에 대한 성명학적 이름 풀이가 적혀있었다. 이어서 전화를 건 아빠는 흥분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이름에 쓸 수 있는 ‘을’ 자가 乙 자 하나뿐이라 어려울 줄 알았는데, 智 자와 붙여보니 엄청나게 좋은 이름이 됐다면서, 오행과 음양 그리고 사주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해 주었다. 그 문서를 가보로 삼고 싶을 정도로, 작명 타짜의 걸작이었다. 지을이는 운명적으로 지을이가 될 팔자였나. 나는 외할아버지와 아빠가 고심해서 지어준 기령이라는 이름을 좋아하고 아끼며 잘 써왔다. 열 달 동안 이든이로 불려 온 아가의 이름도 그 아가의 외할아버지와 엄마 아빠가 고심 끝에 지었다. 신지을. 우리의 첫 선물이니 좋아해 주고 아껴주기를.

 저녁을 먹고 침대 머리에 기대어 앉아 있는데 배 위가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하고 봤더니 쥐도 새도 모르게 내 젖꼭지에서 하얀 액체가 뚝뚝 배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젖이 돌기 시작한 거였다. 정말 나에게서도 우유, 아니 모유가 나오는구나, 인간이란 이다지도 한낱 짐승에 불과한 것을 그 동안 왜 그렇게 젠 체 하며 살았나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어디 가서 대학 얘기가 나오면 꽤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엄마 아빠가 사람들 앞에서, 내가 다니던 회사를 사명까지 굳이 거론하는 건 기분이 꽤 괜찮았다. 그런데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야. 나는 몇 평짜리 조그만 방에서 처음 보는 기계로 소처럼 젖을 짜게 될 운명이었던 것을! 잠시 비관해보았지만 그 또한 잠깐이었다. 환자복의 유두 부분이 동그랗게 젖기 시작해 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안 되었. 한편으로는 대자연의 섭리란 신비롭기도 하지, 누가 내 몸에 일러준 것도 아닌데 때가 되니 젖이 나오고 말이야 라고 놀라워하면서 초저녁부터 스르륵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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