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덕거리는 눈길에 익숙합니다
많은 한국의 청소년들이 흔히 밟는 루트가 있다.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이 루트를 청소년의 기본값으로 생각하기에 자퇴를 했거나, 비대학을 선택하거나 하는 등 정해진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그 사람은 누군가의 눈에 문제가 있거나 특이한 사람이 된다. 나 또한 바로 그 ‘문제가 있거나 특이한 사람’에 속한다. 내 인생이 틀어진(?) 건 중학교 입학을 앞둔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우리 동네는 아이들과 학원이 많은 주거 단지이다. 어릴 적부터 학원을 보내는 분위기 탓에 나도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부터 많은 학원들을 다녔었다. 영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유치원을 나왔고, 유치원이 끝나면 사고력을 키워준다는 수학 학원에 다녔다. 초등학생 때는 영어와 수학은 물론, 논술학원을 비롯한 많은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는 저녁 8시가 넘어서야 학원이 끝나는 날도 많아졌다.
개인적으론 조급함도 있었다. 내가 지금 학원을 다니고 싶지 않더라도, 학원에서 더 높은 레벨의 반에 들어간 학원친구, 벌써 중학교 선행하는 동네친구, 주변사람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니 여기서 내가 멈추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하지만, 너무 지쳐있었다. 어린 나이에 늦게까지 학원을 다니고, 매일 숙제에 파묻혀 지내기 지겨웠다. 조급한 마음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음에도 더 이상 학원에 다니기는 싫었다. 공부하기 싫다는 게 아니라, 학교가 끝난 후에 스스로 공부를 하든, 취미생활을 하든, 온전히 나의 시간으로 채우고 싶었다.
시간이 흘러 6학년이 되었고, 내가 틱이 온 것을 부모님이 알아챈 후 합리적인 이유로 학원에 가지 않게 되었다.(그 사실을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알았지만) 그렇게 원했던 나의 시간. 광활한 시간이 주어지고서야 내가 내 시간을 보내는 법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숙제와 학원이 아니라면 그 시간에 뭘 해야 하는 거지?' 나의 시간은 하루종일 TV를 보는 걸로 채워졌다.
그렇게 몇 달은 되었을 거다. 낭비하는 시간이 싫어지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들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던 무렵, 우연찮게 한 대안학교를 알게 되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기에 학원 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정규수업이 끝나면 학교에서 준비해주는 방과후 활동을 포함해 내가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도서관이 너무 멋졌다. 그래서 일단은 도전해보자는 마음으로 원서를 넣었고, 우연찮게 입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소식은 꽤 빨리 퍼졌다. 동네에서 자영업을 하는 부모님이 오가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어디 중학교 가요?’ 하는 질문에 대답을 하다 그랬던 것 같다. 생각지도 못한 보이지않는 따가운 시선을 우리 가족과 나는 받게 되었다. 대안학교에 입학하게 된 당시(2019년도 입학)만 하더라도 사람들의 인식 속 대안학교는 ‘사회 부적응자’나 ‘문제 있는 애들’이 가는 곳이었다. 가족들에게 직접 물어본 것도 아니고, 내가 그런 말을 직접 들어본 적은 없지만, 그 시선들은 아마 나도 '그런 사람'으로 인식이 된 것 같았다. 동네에서 꽤나 모범생인 이미지라 더 그랬을 것이다. 특히 내가 입학하게 된 학교는 사는 지역인 경기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 있었고, 대안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들어본 적도 없을 곳이었다. 더 낯설게 느껴졌다면 그런 이유였을 거다.
내가 다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건 나의 성적 때문이었다. 행동과 처지가 대안학교라면 놀기만 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2학년 2학기와 3학년 2학기 과학을 B 맞은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았다. (참고로, 우리 학교는 시험이 꽤나 어려운 편이다. 특히 과학은 심화문제집에나 나올 법 한 문제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2학년 때는 한 부서의 차장을, 3학년 때는 전교회장도 했다. 대안학교에 다녀도 ‘공부 꽤나 하고’ ‘전교회장 씩이나’ 했다는 게 '대안학교 애들이 놀기만 하는 건 아니네?’라는 식이다.
가장 많은 축하와 격려를 받은 것은 내가 ‘명문대를 보낸 이력으로 유명한' 대안학교에 입학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와~ 그런 학교에 입학을 하다니’
‘공부 잘하나보네?’
‘좋은 대학 가겠다’
많은 축하와 격려에도 나는 주변의 반응이 기쁘지 않았다. 내가 중학교 때 입학한 학교나, 고등학생이 되어 입학 한 학교나 똑같이 한국 교육 시스템의 대안으로 만들어진, 그저 하나의 ‘대안’학교다. 각 학교가 생각하는 대안의 의미는 다르고, 나를 비롯한 대안학교 학생들도 다양한 이유로 대안학교를 선택한다. 이상한 것은 현 교육 시스템에 문제의식을 느껴 만들어진 대안학교조차도, 새로운 공간에서 배움을 이어가고 싶어서 대안을 선택한 학생들도 결국 ‘입시 결과와 성적’을 통해 인정을 받는다. 사람들은 대안학교들이 지향하는 교육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그저 ‘명문학교’에 보냈다는 이유로 좋은 대안학교와 좋지 않은 대안학교를 평가한다.
나를 포함해 많은 청소년들이 ‘좋은 상급 학교로의 진학에 성공하였는가’로 평가 받는다. 대안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은 추가로 이중적인 잣대를 마주한다. 소위 좋은 상급학교를 가면 대안학교를 가도 입시 시스템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로 ‘대안학교 가도 좋은 학교 갈 수 있네’가 되고, 누구나 아는 그 학교들에 가지 않거나, 대학을 미루거나, 비진학을 결정하면 ‘대안학교라도 다를 게 없구나’ ‘역시 대안학교라 입시경쟁에서 떨어지는구나’라고 평가 받는다.
대안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다수가 접하지 않은 새로운 길을 걷는 우리기에 불안해보이거나, 현실과 동떨어지고 헛바람만 든 것처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는 대안과 현실 사이에서 극도로 불안하고, 입시와 대안교육만큼 거리 차이로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며, 헛바람도 들어 있다. 근데 그게 나쁜가. 저마다 생각하는 삶의 가치와 꿈은 다르고, 조금 ‘마이너한’ 경로를 택했을 뿐이다.
대안학교를 다니는 우리를 보는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입시 성적으로 우리를 평가하지 말아 달라는 거다. 우리들 다수는 전략적인 입시를 위해 대안학교 진학을 선택하지 않는다. 학교 공부 외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찾고 싶어서, 정답이라 불리는 루트 외에 다양한 길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입시 중심적인 교육을 피하고 싶어서 대안학교를 선택했다.
대안학교에서 내가 몸소 느낀 건 정말 다양한 교육이 있고, 길이 있다는 점이다. 그 다양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남들이 한다고 해서 당연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글쓴이
문제없는스튜디오 스토리에디터 두부
(<청소년 비건 브이로그>, 청소년 성예능 <우리도 한다>(2023 업로드 예정) 기획/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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