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를 입지 않고 출근할 뻔했다. 다행히 대문 밖을 나서서 계단을 2칸 쯤 내려갔을 때, 바지 주머니의 휴대폰을 꺼내려다가 깨달았다. 발열내의를 입어서 바지를 입은 줄 착각했구나. 다시 집으로 들어가 바지를 입으며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다시 당연하게 일하고 또 잠시 누우러 들어오겠지. 눕기 전까지 미완의 일들을 걱정하겠지. 끼무룩 잠들고 알람 소리에 겨우 일어나겠지. 스트레스와 수면부족에 절여진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서겠지. 산업의 역군, 우리네 아버지의 삶이 이런 것이었을까. 나는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절대 저렇게 살지 않을거라 내심 다짐했더랬다. 하지만 나는 요즘 워라밸이 붕괴되다 못해 워워워에 잠식되어 버린 삶을 살고 있다. 누군가에 의해 통돌이 세탁기 속에 넣어져 마구 돌려지고 짓이겨지고 있다. 어지럽다. 이 말을 싫어하는데 자꾸 내뱉게 된다. ‘정신이 하나도 없어.’
이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느낌의 핵을 들여다보았더니 ‘내게 주도권이 없다.’라는 명제가 깊숙이 박혀있었다. 누군가 내 머리채를 잡고 이리 저리 끌고 다니는 것 같다. ‘주도권이 없다’는 명제를 둘러싼 감정은 ‘공허감’ 이었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언덕을 걸을 때면, 가슴 속 커다란 구멍에 바람이 숭숭 부는 기분이 든다. 내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방식은 이게 아니야. 러닝크루도 못 나가고, 누가 약속을 잡으려 하면 부담스러워지고, 빨래가 쌓여 있고,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마음의 여유도 없고, 영혼 없이 보람 없는 일을 하는 것. 이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 어떻게 벗어나야할지 모르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데, 날 설득하다 지쳐버렸다. 자꾸 현재에 집중하지 못한다. 불만을 가지고 짜증을 낸다. ‘이게 아닌데... 이게 최선이야?’ 라는 생각 풍선이 날 감싸고 있다. 이 목소리는 현실도피하고 싶은 핑계일까, 아니면 지금 내가 용기를 내고 다른 도전을 해야 한다는 신호인걸까.
만약, 후자라면? 난 내 깊은 영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다. 더 무서운 건, 내 진로에 대해 깊게 고뇌하다가도 내게 ‘익숙한’ 일을 하다보면 또 그 일이 주는 편안함에 나도 모르게 녹아든다. 지금 내 상황을 머리 깨지게 의심하다가 또 익숨함에 젖어들기를 쳇바퀴 돌듯이 반복한다. 내 깊은 고민은 일상에 매몰되어 버리고 옅어지다가 잊혀져 버리고 만다. 파도가 울룩불룩한 모래를 평평하게 밀어버리듯 일상의 파도가 내 개성과 욕망을 조용히 삼켜버릴까봐 공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