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바다보다 좋은 지극히 주관적인 10가지 이유
나는 산을 좋아한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이어폰을 귀에 꽂고 집을 나선다. 숲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을 걸으며 가장 좋아하는 나의 비밀장소로 간다. 때로는 기분 좋은 음악을 들으며 때로는 주변의 작은 소리들에 귀를 기울인 채.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에게는 산이 더 좋은 지극히 주관적인 10가지의 이유가 있다.
우리 가족은 주말이 되면 아침마다 집 근처의 산으로 소풍을 간다. 가까운 곳에 산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18개월 된 우리 조카는 어른들 틈에 걸어서 산속의 계단을 올라가곤 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예쁜지 지나가던 등산객의 발걸음을 멈추기 일쑤였다. 지금도 조카들이 오는 주말만 되면 잔칫날처럼 소풍 갈 준비에 가족 모두가 즐겁다. 산이 좋을 수밖에 없다.
산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산책로를 걷다가 우거진 숲 속으로 들어가면 나무들이 뿜어내는 맑은 공기와 에너지에 압도된다. 힘들고 기운 없는 나에게 기운을 내라며 말을 거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아카시아의 향과 가슴속까지 파고드는 소나무 향이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준다. 매일 산에 올 수밖에 없다.
푸르름의 상징인 산의 초록색도 좋다. 나무의 종류마다 초록색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멀리서 산을 보았을 때 조화로운 초록의 향연은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새순의 파릇함도 아름답고, 여름의 길목의 그 싱그러운 초록색도 아름답고, 가을과 겨울로 가는 길의 색 바랜 초록마저 아름답다. 나무들이 파란색이나 빨간색이 아닌 것이 참 다행스럽다. 온통 파랗거나 빨간 산이 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니 말이다.
산에 가면 지저귀는 새와 친구가 될 수 있다. 물론 새는 나를 모른다. 나 혼자서 새와 친구가 되는 거다. 내 귀에 꿀꿀거리면서 우는 새가 있어서 돼지새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새의 지저귀는 소리로 이름을 찾지 못해서 아직도 이름은 모르지만 나에게는 영원히 돼지새다. 그 새소리가 새벽부터 들리면 기분이 좋아지며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그 새에게 인사를 한다. 산에 가면 얘들의 소리를 계속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산속을 걸으면 아이디어가 솟아난다. 걷기의 영향일 수도 숲의 영향일 수도 있다. 둘 다의 영향일 수도 있겠지. 숲으로 가는 산책로를 걷기 시작하며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새와 벌레들이 우는 소리, 뺨을 스쳐 지나가는 부드러운 바람소리, 작게 속삭이는 사람들의 말소리까지 다양한 소리들이 나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아이디어들이 터져 나오고 그것들이 제멋대로 연결되어 조합하기 시작한다. 이것 또한 산에 가는 이유이다.
산에 가면 꼭 하는 중요한 의식이 하나 있다. 바로 햇빛멍이다. 쏟아지는 햇빛을 멍하니 쳐다보는 것. 햇빛멍을 할 때면 세상의 모든 근심이 사라지고 나만의 세상이 된듯한 착각마저 든다. 태양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야심찬 포부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불멍처럼 그저 좋을 뿐이다. 숲 속의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하는 햇빛멍은 나를 위로해준다. 위로받고 힘을 얻는다.
산만큼 사계절의 변화를 뚜렷이 알려주는 것도 없다. 어느덧 변해버린 나뭇잎의 색과 따스해진 바람, 씩씩하게 흐르는 시냇물, 하나 둘 피기 시작하는 색색의 꽃들에서 봄이 성큼 왔음을 알게 된다. 무작정 숲으로 가는 산책길이 무더워지기 시작했다고 느낄 때쯤 여름이 왔음을 깨닫고, 울긋불긋해진 단풍과 하얗게 변해버린 산을 보며 가을과 겨울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이토록 아름다운 사계절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는 산이 좋을 수밖에 없다.
산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산에서 만나는 좋은 만남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 좋은 산을 나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일종의 동지애. 직접 인사하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이 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산의 이곳저곳을 누빈다는 즐거운 마음이 그것이다. 산에 나 혼자라면 무서울 텐데 함께 있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해지지는 않더라도 그분들께 보내본다.
산이 바다보다 좋은 지극히 주관적인 마지막 이유는 바로 정상에 올랐을 때의 성취감과 감사함이다. 산을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정상에 올랐을 때 해냈다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 산을 오르면서 힘든 것은 참는 것도 배우고 인내의 끝에 다디단 행복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서 탁 트인 전망을 보는 순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된다. 이 아름다운 것을 보게 해 주심에 감사, 무사히 정상에 오를 수 있음에 감사, 건강을 주심에 감사, 좋은 사람들을 주심에 감사 등 감사할 제목들이 끊이지 않고 나온다. 이쯤 되면 산에 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산이 좋은 이유를 잔뜩 열거했지만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벌레들이다. 벌레들은 좋지 않다. 슈퍼 거미에게 물려서 스파이더맨이 되면 어쩌나 무섭다. 나무들도 개미와 거미 등 온갖 곤충들이 자신의 몸을 기어 다니고 심지어 구멍을 내기까지 하면 별로이지 않을까? 하지만 나무들은 그런 곤충마저 조화롭게 함께 살아간다. 산을 보면 나무들, 새, 풀과 바위, 바람과 해와 비, 곤충과 사람들까지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점점 혼자인 것이 편해지고 있는 시대. 산을 보며 조화롭게 사는 것에 대해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도 나는 나만의 지극히 주관적인 이유를 갖고 산에 간다. 숲 속 길을 걸으며 나의 돼지새와 대화를 시도해봐야겠다. 혹시 아는가. 그 새가 꿀꿀거리며 대답을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