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사슬이 풀리던 날
엊그제는 내 신발이 끊어진 날이었다. 걷고 있다가 보니 그렇게 되어서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아서 그와 말도 잘 안 하고 나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내 수중에는 돈이 없었고 신발을 사려면 적어도 5만 원은 필요할 테니 말이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집에 가겠다고 하니 그는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설명을 안 한 것도 있지만) 나는 신발이 끊어졌으면 당장 신발을 사러 가자라고 생각하는 남자와 데이트했으면 했다. 내가 많은 걸 바랐던 걸까?
그래서 서러워서 호텔에 돌아와 울게 되었는데 (슈펜에서 싼 걸 내 돈으로 사서 돌아옴) 그는 나를 앉혀놓고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자기한테 보내는 야한 사진들을 다른 사람들한테도 보내냐고 왜 그러는 거냐고 그래서 그냥 attention이 얻고 싶어서 그러는 거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보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나를 10대 소녀처럼 아빠가 된 것처럼 설교를 했는데 그의 진심은 느껴졌지만 나는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다. 숨고에 등록도 되어 있는. 나는 인스타그램을 나 예술의 표현 방식으로 사용하는 거고 요새는 그 피사체가 마이클일 뿐이다. 필름을 직접 현상하고 사진에 진심인 내 자신을 그 자신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가 자신의 목숨과 내 카메라를 바꿀 거냐고 당장 자기를 살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냐는 말에 나는 내 카메라는 아빠가 준 것이고 네가 암에 다시 걸리면 돈을 벌어서 너를 치료해 줄 것이지 내 카메라는 팔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랬더니 충격받고 상처 받아보였다. 사람 목숨보다 내 카메라를 소중하게 여겨서?
설명할 순 없지만 내가 21살에 카메라를 들고 멜버른에 갔을 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그렇지만 사진 찍는 건 일연의 행위가 아니다. 잠시 동안의 순간의 캡처이고 나는 그걸 알고 있다.
어쨌거나 그는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 나를 일반적이지 않은 여자애로 생각한다는 건데 남자들한테 DM을 받고 야한 사진을 올리고 얄팍한 관심을 얻는 그런 존재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욕망의 대상이 되고. 내가 그랬나? 그래서 화가 나서 카톡 프로빌 배경 화면을 내 인스타그램을 캡처해서 올려놨다.
그는 나를 멋대로 오해하는 부분들이 있다. 내 자존감을 올려주는 [너는 책도 좋아하고 음악도 정말 많이 알고 사진도 찍고 예술적이고 글을 쓰는 그런 아이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는 예쁜 사진들과 글들을 공유해 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 (이건 다른 친구가 해준 말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아도 나는 비가 내리면 빗속에서 같이 춤을 춰 줄 남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그를 잃고 싶다는 욕심으로 그의 인생에 들어가면 나는 메말라 죽지 않을까. 그와 함께 하면 내가 세상을 볼 수 있을까? 그가 그렇게 해줄까?
어제는 계속 울고 있는 나에게 그가 커들을 해줬다. 오늘 집에 돌아와 혼자 자니 없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고 아침인사 하나 없는 그가 원망스러웠다.
그를 때리고 신발을 걷어차며 헤어짐을 통보했다. 쇠사슬이 풀리는 느낌이었고 그래서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아님 인연의 빨간 실이 끊겼거나. 겨우 마지막 한 줄 매달려 있는 상태에서 그에게 매달렸다. 그는 그걸 받아줬고. 결핍을 채워주는 사람이라 놓을 수가 없었던 나 자신이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