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남은 이 시점
이토록 안 설레는 여행은 처음일 것이다.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 일에 그저 지쳐서 이러는 걸까. 처음 가보는 세상이기에? 분명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가 비행기 표를 사줄 때 금문교를 보게 될 거라며 신이 나있던 나였는데.
여행 책자를 사고 될 되로 돼라 라는 마음으로 가방과 캐리어를 미리 쌌다. 그가 사준 이코노미 티켓을 가지고 난 일주일 뒤에 공항에 향하겠지. 그에게도 말했지만 그가 내 세상을 넓혀준 건 너무나도 고맙다. 나는 미국에 처음 가본다. 내가 가보지 못한 세상을 보여주고 알라딘의 A whole new world처럼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에요. 내가 전혀 몰랐던 눈부신 곳]이 될 수 있을까?
여전히 세컨더리 룸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고 이젠 거의 확정적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하며 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서 잔고증명서를 만들고(여행 비자인데 잔고 증명이 필요한 나라는 처음이다.) 입국을 무사히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월급이 들어왔지만 어느새 100만 원가량 밖에 남지 않았고 입국 거부를 당하지 않으려면 돈이 필요했다.
그가 미국에서 경비를 모두 내줄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입국은 나 스스로 해야 한다. 그와 나는 여자친구와 남자친구 관계지 그는 내 슈가 대디가 아니다. 그렇지만 미국에 사는 분의 조언으로는 남자친구를 보러 왔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입국 심사 때 오히려 나을 거라고 했다. 내가 비자 신청할 때 지인 정보로 마이클을 이미 기입했기 때문에 무슨 관계인지 물어볼 것이라면서.
아무튼 여러 가지의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입국 심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하고 있었다. 남자친구를 보러 왔다 하면 돌려보내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걱정이 한가득 생겼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돌아갈 리턴 티켓이 있다는 것과 나는 꼭 한국에 돌아가 일을 해야 하는 스케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는 점이다.
회사에서 계장님과 이사님이 연애 사업은 잘 돼 가냐고 물으셨다. 예전만큼 마이클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걱정해 주셨는데 그와 별개로 나는 일에서 계속해서 실수를 하고 있었다. (큰 실수는 아니었지만)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거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맞아서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 얘기와 별개로 나는 비행기에서 잠에 들지 못하는 편이었는데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와 한강의 책을 넉넉히 챙겼다. 비행기에서 읽으려고. 노트북은 짐이 되기에 가져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지만 긴 비행시간 동안 나는 타이핑이 하고 싶을 것이다.
카메라는 두 대 챙겼다. 아버지의 카메라와 폴라로이드를. 수십 롤의 필름을 챙겼고 금문교를 환상적이게 담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호텔 체크인 시 초코파이 정이랑 참 붕어빵 과자를 프런트 직원들에게 주려고 챙겼다. 같은 프런트 직원으로서 과자를 받으면 좋았기 때문에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고 한 행동인데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어제는 미국에 다녀오면 맛있는 과자와 초콜릿 같은 걸 사 오라고 주임님한테 들었다.
그가 드디어 호텔을 물어보더니 다운타운에 있어서 자기 차로는 주차가 불가능한 지역이니 우버나 택시를 타자고 했는데 처음엔 지하철을 타자고 해서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샌프란시스코를 가서 네일을 오랜만에 했다. 속눈썸펌도 하려고 한다. 머리도 잘랐고. 차근차근 모든 게 준비가 되어가는 듯해서 뿌듯하기도 하고 기대를 해보기로 했다. 그가 꽃을 들고 공항에서 기다려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