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편은 모두 영국에서 산지 14년이 된다. 서로 모르는 사이로 7년을 살았고, 사귀는 사이로 3년 반을 살다가, 결혼한 부부로 4년을 살았다. 남편은 한국에서 다니던 첫 직장을 2년 만에 그만두고 영국으로 들어와 영국에서 새로이 취업을 하여 일을 하던 직장인이었고, 나는 영국에서 길고 긴 시간을 박사학위 하나 따 보겠다고 고군분투하던 중에 남편을 알게 되었다. 우연히 만나서 함께 해 온 3년 반의 연애 끝에 2017년 봄 우리는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의 결혼은 서로가 원했던 것이기는 했지만, 우연이 만들어낸 총합이었다. 박사학위 심사 직전, 나의 아버지께서는 심한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셨는데,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당장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여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부모님께 힘이 되어드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돈도 없고, 직장도 없었지만, 결심도 서지 않고 아이디어도 없던 우리였건만, 주변의 소중한 친구들이 기꺼이 돕겠다고 나서 주었고, 그 덕에 우리는 우리만의 뜻깊은 스몰웨딩, 셀프 웨딩, 참여 웨딩을 만들었고, 두고두고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추억을 남겼다.
우리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개인적이고 행정적인 이유에서 영국에서 결혼을 하는 편이 수월했기 때문이었다. 박사 유학이 끝나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구직활동을 할 예정이었던 터라 영국에서 직장생활 중인 남편과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우리는 결혼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갈 때 돌아가더라도 쫓기듯이 돌아가지 않기 위해 영국 내 합법적 체류가 가능하도록 나의 비자를 학생비자에서 남편의 비자에 동반되는 가족 비자로 비자를 변경해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영국에서 결혼을 하는 게 신속하고, 비용도 저렴했다. 게다가 남편과 나 모두 셋째라 한국에서 치러지는 전형적인 결혼식에 대한 가족의 압박이 없었다. 심지어 나의 아버지께서는 수술로 몸이 성치 않으신 상태였으므로 나는 이렇게 결혼하는 것이 부모님께 재정적인 부담도 드리지 않으면서 내가 온전히 독립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마침 우리의 이런 상황을 알고 있던 친한 친구 넷이 적극적으로 우리 결혼을 돕겠다고 나서면서 우리는 우리만의 결혼식을 기획하였다.
영국과 같이 기독교 전통을 가진 나라에서는 대개 교회 (종교적) 결혼식, 비종교 결혼식의 경우 시청 결혼식, 일반 장소 결혼식 중 본인이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영국에서 10여 년을 학생 신분으로만 살다가 막상 결혼을 하려고 알아보다 보니 영국이 결혼에 대한 제도가 꽤나 까다로운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국은 한국보다 혼인율이 낮은데, 여기에 이 까다로운 혼인제도가 한몫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먼저 어디서 결혼을 하든 결혼 전에 반드시 ‘결혼 예정’ 임을 시청에 신고하고 공지해야 한다. 신랑 신부가 구청에 가서 언제든 혼인을 등록할 수 있는 한국의 혼인 등록제도와는 상당히 다르다. 영국에서는 적어도 결혼식 28일 전에는 시청에 본인들이 결혼할 것임을 신고하여야 하고, 이 때는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느 장소에서 몇 시에 결혼을 할 것인지 상세히 밝혀야 한다. 즉, 결혼식장이 미리 예약된 이후에 이 신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결혼 신고 자체를 위해서도 이 신고를 위한 ‘약속’을 미리 잡아야 한다. 예약된 날에 담당 공무원을 만나서 가짜 결혼이 아닌 진짜 결혼을 한다는 것을 인터뷰를 통해 확인 받음으로써 그 신고가 접수된다. 그럼 그 날로부터 28일간 시청에서 해당 결혼에 대한 공지를 하게 되며, 그 기간 이후에 결혼식이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공지된 결혼 정보는 누구든 시청에 와서 요청에 따라 열람할 수 있다. 이 점이 흥미로워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인터넷도 없고 전화도 없던 옛날에는 개인들의 혼인 상태를 알아보는 일 자체가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이런 제도를 운영했는데, 그 제도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라 했다.
시청 결혼식이라 하여 한국에서 혼인신고하듯 서류만 작성하여 제출하는 형식은 아니다. 시청 결혼식에서는 시의 공식 ‘등록관’이 주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원하는 규모의 내빈을 초대할 수 있으며, 드레스와 양복을 차려입고 결혼반지도 주고받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증인들이 결혼식에 함께 참석하여 결혼 증명서에 서명을 함으로써 서류상의 결혼이 완성된다.
시청이나 교회에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결혼식장을 빌려서 결혼하는 것도 가능하다. 영국은 한국처럼 ‘예식장’이나 ‘웨딩홀’이 있는 건 아니다. 호텔, 레스토랑, 유명 문화재 등 여러 형태의 장소에서 결혼식을 할 수 있는데, 단 결혼식 진행을 위한 ‘면허’를 가진 장소들이어야 한다.
결혼‘면허’를 갖기 위해서는 면허등록비용도 지불해야 하지만, 소방안전 등의 문제로 여러 건물 규정이 단체 행사 진행에 적합한 곳으로 인증을 받은 곳이어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옥스퍼드 지역을 예로 들면 옥스퍼드의 오래된 시청 건물도 이 면허를 갖고 있고, 옥스퍼드 인근의 처칠 생가로 유명한 영국 내 3대 귀족 중 한 가문이 현재까지도 실제 거주하고 있는 블래넘 팰리스 (Blenheim Palace) 같은 궁전에서도 결혼식을 할 수 있다. 엄청난 비용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나와 남편은 영국 옥스퍼드에서 만나 이곳에서 연애를 했지만 결혼식은 인근 도시 스윈든에서 ‘시청 결혼식’으로 진행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세례 받은 교회여야 하는 등 여러 조건이 있어서 우리에게는 맞지 않았고, 결혼 ’면허’를 가진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진행하기에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영국에서는 민간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결혼이라 하더라도 ‘식’ 자체를 해당 장소에서 진행하고자 할 경우 시청의 (결혼) 등록관을 포함한 담당자가 출석하여 시청 결혼식과 동일한 절차를 진행하여 혼인을 등록하게 된다. 그런 경우 장소 대여료와 식음료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이 등록관 파견비용 자체에만 백만 원 이상이 소요된다. 우리는 조촐하고, 큰 비용이 들지 않는 결혼을 원했기 때문에 그런 결혼식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옥스퍼드가 아닌 스윈던 시청에서 결혼한 것은 단순히 옥스퍼드 시의 경우 대기기간이 길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4년 전 3월 어느 금요일 오전에 스윈던 시청 결혼식을 진행했다. 우리가 결혼한 장소는 신랑 신부 포함 딱 20명만 수용 가능한 방이었다. 평일 하루 기꺼이 휴가를 내고 축하해주고자 하는 가장 가까운 지인만을 초대하여 그야말로 ‘스몰’ 웨딩을 진행했다. 양가 부모님은 연로하시고 장시간 비행이 힘드셔서, 또 형제자매들은 학교를 다니는 조카들 때문에 한국에서는 올 수 있는 가족이 없었다. 대신 영국에서 직장생활 중인 남편의 누나와, 미국에서 직장 생활 중이던 나의 남동생이 그 여자 친구를 동반하여 우리 결혼에 가족 대표로 참석했다.
시청 결혼식은 생각보다 근사해서 모두 놀랐다. 우리가 빌린 방의 사용료는 120파운드, 한화로는 18만 원가량이었다. 그러나 그 방안에는 생화로 된 꽃장식도 되어 있었고, 창 밖의 가든에서는 결혼식 후 사진도 촬영할 수 있었다. 입장, 퇴장, 결혼서약서 서명 절차 등에서는 우리가 준비해 간 음악을 틀어줬다. 또한 결혼서약 전 우리의 가까운 친구들이 우리의 결혼을 축복하는 좋은 글귀를 읽어주는 시간도 가졌다. 이 모든 것이 시청 결혼식 절차에 포함된 것이었다.
부모님이 부재한 상태에서 결혼식을 올리다 보니 나는 남동생의 팔짱을 끼고 식장에 입장했다. 이날 내가 입은 드레스는 인터넷에서 구입한 “저가 웨딩드레스”라 10만 원대에 구입하였고, 신랑의 예복은 아웃렛에서 구입하였다. 내가 신을 웨딩슈즈는 경매사이트를 통해 1500원 남짓에 중고 웨딩슈즈를 낙찰받았다. 반지는 결혼 석 달 전 둘이서 처음으로 함께 한 해외여행이자 약혼여행이 된 스페인 여행 중 작은 도시의 보석상에서 가느다란 실반지를 구입했다. 결혼식을 올린 후 한국에 가족들을 만나러 가기로 했기 때문에 신혼여행은 생략했다(영국 내에서라도 짧게 신혼여행을 다녀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신혼여행을 가지 않은 것이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결혼 후 두 번의 출산으로 여태껏 여행다운 여행을 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결혼 준비는 말이 셀프이지 ‘가내수공업’이나 다름없었다. 결혼 당일 메이크업은 화장을 잘하는 친구가 직접 해줬고, 머리는 자기 머리를 스스로 잘 만지는 친구가 고데기로 컬을 만들어줬다. 웨딩부케와 신랑을 위한 웨딩 코르사주도 친한 언니가 직접 만들어줬다. 결혼식 오전에 진행된 시청 결혼식 후, 결혼식에 초대한 이들에게는 인근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대접하고, 결혼식에 초대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는 칼리지 룸을 빌려 저녁 리셉션을 준비했다. 칼리지에서는 감사하게도 대관료 한 푼 내지 않는 무료 룸을 사용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우리 결혼을 칼리지 입구 화면에 내걸어줬다.
이 리셉션을 위한 파티상은 결혼식 나흘 전부터 친한 동생과 둘이서 매일같이 준비했다. 돼지고기 수육, 유부초밥, 컵케잌, 각종 술안주용 과일, 야채 등을 모두 직접 준비하고, 일부는 구입하기도 했다. 거기에, 리셉션에 오신 한국인 언니들이 서너 가지 음식을 준비해오시면서 음식상은 더 푸짐해졌다. 음식 진열은 화장을 해 준 친구가 해주었는데, 다들 음식 진열이 훌륭하다며 이 친구의 미적 감각을 칭찬했다.
우리는 웨딩케이크도 직접 꾸몄다. 아무 장식 없는 케이크를 구입하여 우리 부부의 결혼식 차림을 본뜬 설탕공예 모형을 주문하여 신랑 신부의 인형을 올렸다. 거기에 함께 할 장식으로 나는 유튜브로 ‘설탕공예’를 열심히 연습하여 장미꽃 장식을 직접 만들어 올렸다(웨딩케이크는 한국의 친한 동생이 결혼선물로 해주었다. 천사 같은 소중한 친구).
친한 동생은 파티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라 그이는 각종 주류와 안주를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알려줬고, 구입한 주류로 직접 칵테일 주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의 남자 친구는 와인 애호가라 우리 결혼식 리셉션에 내놓을 와인을 골라줬고, 리셉션 중에는 직접 와인을 서빙해주기까지 했다.
음식을 접시에 내어 놓을 때도 친한 친구들과 동생들의 도움이 매우 컸다. 친구나 후배들이 대부분 학생들이라 우리는 철저히 결혼 선물이나 부조는 받지 않는다고 미리 선언을 해 둔 터였고, 선물을 굳이 해주고 싶다면 돈 말고 ‘시간’으로 선물해달라고, 파티 전에 한두 시간만 미리 와서 파티 준비를 도와달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을 축하해주고자 하는 이들은 저녁의 드링크 파티를 함께 준비하며 서로 담소를 나눴고, 나도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파티 준비를 했다.
우리의 이런 결혼을 우리는 ‘스몰웨딩’, ‘셀프 웨딩’, 그리고 ‘참여 웨딩’이라 불렀다. 비용을 적게 들인 작은 규모 결혼이라 스몰웨딩이고, 드레스 구입부터 저녁 파티상 준비까지 모두 직접 했기에 셀프 웨딩이었으며, 이 모든 과정에 친한 친구들과 지인들의 도움이 컸기에 그들의 참여가 중요했던 참여 웨딩이었다. 신혼여행도 생략한 우리 부부에게는 마법처럼 허니문 베이비가 찾아왔다. 출산 직후 영국 병원에서 내어주는 식빵 토스트에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 그 토스트 빵을 먹고 아이를 열심히 키운 나는 첫째 돌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를 가졌고, 그 둘째가 어느새 돌이 지나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이가 되었다. 다음 글에서는 영국에서의 임신과 출산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